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올드 트래포드의 벤치에서 껌을 씹으며 선수들을 지휘하는 모습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됐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가 지난 8일 구단 홈페이지를 통해 퍼거슨 감독의 은퇴를 발표한 것. 퍼거슨 감독은 "은퇴는 오랫동안 고민했었고 결코 가볍게 결정하지 않았다. 지금이 적절한 시기라 생각했다"며 맨유의 프리미어리그 통산 20번째 우승을 이끌고 은퇴를 발표한 것이 옳았다는 뜻을 내비쳤다. 그는 올 시즌을 끝으로 은퇴하며 맨유 이사 및 홍보대사로 활동할 예정이다.
퍼거슨, 27년 동안 38회 우승 이끌었다
퍼거슨 감독은 올해 72세의 스코틀랜드 출신 지도자로서 1986년부터 27년 동안 맨유 감독을 맡아 총 38회 우승을 이끌었다. 그 중에 프리미어리그 우승 13회, FA컵 우승 5회,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 2회, FIFA 클럽 월드컵 1회 등 수많은 대회에서 우승을 경험했다. 1998/99시즌에는 트레블을 경험했으며 2008년에는 유럽과 세계를 제패하며 맨유의 위상을 끌어올렸다. 올 시즌에는 맨유의 프리미어리그 통산 20번째 우승을 이루었다. 프리미어리그 통산 최다 우승 기록이다. 잉글랜드 최고의 클럽이 맨유인 것에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맨유 전성 시대'는 퍼거슨 감독의 업적이다. 그가 올드 트래포드에 입성했던 1986년은 맨유가 리그 내에서 그저 그런 모습을 보였다. 1960년대까지 잉글랜드와 유럽 무대를 평정했던 클럽이었으나 그 이후 강팀의 저력을 이어가지 못했다. 1973/74시즌에는 2부리그로 강등되었다. 퍼거슨 감독도 부임 초반에는 순탄치 못했다. 첫 시즌을 11위로 마친 것. 1987/88시즌에 팀을 2위로 도약시켰으나 1988/89시즌 7위, 1989/90시즌 13위에 그치면서 현지 팬들의 경질 압박을 받았다. 하지만 1989/90시즌 FA컵 우승으로 경질 위기를 모면했다. 1990/91시즌 UEFA컵 위너스컵에서는 FC 바르셀로나를 제압하고 우승의 기쁨을 누렸다.
퍼거슨 감독의 신화는 1992/93시즌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가 출범하면서 시작됐다. 라이벌 리즈 유나이티드 선수였던 에릭 칸토나 영입에 120만 파운드(약 20억 원)를 투자하며 전력을 보강한 것이 '신의 한 수'가 됐다. 프리미어리그 첫 시즌에 우승을 이끈 것. 맨유는 1966/67시즌 이후 26시즌 만에 잉글랜드 무대를 제패했다. 1993/94시즌에는 프리미어리그 2연패를 달성하며 이전 시즌의 성과가 반짝이 아님을 증명했다.
그 이후 라이언 긱스, 폴 스콜스, 데이비드 베컴, 게리 네빌, 필 네빌, 니키 버트 같은 우수한 유망주들을 육성하며 90년대 중반과 후반에 걸쳐 또 다시 프리미어리그 우승과 인연을 맺었다. 1998/99시즌 챔피언스리그 결승 바이에른 뮌헨전에서는 경기 종료 직전 톄디 셰링엄과 올레 군나르 솔샤르 득점에 의해 2-1 역전승을 거두면서 우승을 달성했다. 챔피언스리그와 프리미어리그, FA컵 동시 우승으로 트레블을 거두는 저력을 발휘했다. 이러한 업적에 의해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에게 기사 작위를 받았으며 '퍼거슨 경'으로 불리게 됐다.
2000년대 중반에는 고비가 찾아왔다. 베컴의 레알 마드리드 이적, 몇몇 이적생들의 경기력 저하로 전력이 약화됐다. 2003/04시즌 프리미어리그 무패 우승을 달성했던 아스널, 그 이후 프리미어리그를 호령했던 첼시의 아성에 가려졌다. 하지만 2006/07시즌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웨인 루니 같은 젊은 선수들의 맹활약에 의해 프리미어리그 우승 트로피를 되찾았다. 2007/08시즌에는 프리미어리그와 챔피언스리그를 동시에 제패했으며 2008년 12월에는 일본에서 FIFA 클럽 월드컵 우승을 달성했다. 2008/09, 2010/11, 2012/13시즌에도 프리미어리그 1위를 확정지으면서 대회 통산 20번째 우승의 영광을 누리게 됐다.
퍼거슨, 한국 축구에 잊지 못할 세계적인 명장
퍼거슨 감독은 한국 축구와의 인연이 깊다. 2005년 여름 이적시장에서 박지성을 영입했던 것. 당시 박지성은 네덜란드 PSV 에인트호벤 소속이었으며 2004/05시즌 챔피언스리그 4강 AC밀란전에서 골을 넣는 강렬한 활약을 펼쳤다. 팀을 챔피언스리그 4강으로 발돋움 시켰던 저력이 퍼거슨 감독의 선택을 받았던 계기가 됐다. 잉글랜드 진출 초기 '마케팅용'이라는 현지 여론의 곱지 않은 시선 속에서 퍼거슨 감독의 신뢰를 얻으며 프리미어리그에 성공적으로 적응했다. 맨유에서 7시즌 동안 205경기에서 믿음직한 활약을 펼치며 명실상부한 아시아 최고의 선수로 발돋움했다.
박지성이 맨유에서 보냈던 7시즌이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2006년과 2007년에 걸쳐 두 번의 큰 부상으로 오랜 시간 동안 경기에 뛰지 못했고 2007/08시즌 챔피언스리그 결승 첼시전에서는 18인 엔트리에서 제외됐다. 이에 퍼거슨 감독은 "박지성을 제외한 것은 나의 감독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결정이었다"며 박지성을 위로했다. 그 이후 박지성은 맨유에서 살아남기 위해 분발하며 2008년 FIFA 클럽 월드컵 결승전, 2008/09시즌과 2010/11시즌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 선발 출전했다. 특히 첼시와 AC밀란, 아스널 같은 빅 매치에 강한 모습을 보이며 퍼거슨 감독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줬다.
이러한 박지성의 저력은 한국 축구의 인지도가 향상되는 효과로 이어졌다. 박지성이 잉글랜드 무대에 도전하기 이전의 한국 축구는 유럽 빅 리그에서 성공했던 선수가 드물었다. 차범근이 독일 분데스리가를 호령했던 1980년대 이후 유럽 무대를 뜨겁게 달궜던 한국인 선수가 없었던 것. 박지성이 PSV 에인트호벤에 이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성공했던 효과에 의해 여러 명의 한국인 선수들이 잉글랜드 클럽들과 계약을 맺었다. 그 중에 이청용과 기성용 같은 2002년 한일 월드컵 이후의 세대들이 프리미어리그에서 성공적인 활약을 펼쳤다. 퍼거슨 감독이 박지성을 신뢰한 것이 한국 축구의 국제 경쟁력 강화에 도움이 됐다.
퍼거슨 감독은 2006년 또 다른 한국인 선수 영입에 관심을 나타냈다. 이듬해 국내 TV 방송사와의 인터뷰에서 그 선수가 박주영임을 밝혔으나 영입은 성사되지 않았다. 그 무렵에는 당시 박주영과 같은 소속팀(FC서울)이었던 기성용의 맨유 이적설이 제기됐으며 2009년에 사실인 것으로 판명됐다. 퍼거슨 감독은 한국의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을 이끌었던 거스 히딩크 감독과 더불어 한국 축구에 잊지 못할 세계적인 명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