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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마이클 오언 은퇴, 제2의 전성기는 없었다

 

'원더보이' 마이클 오언(34, 스토크 시티)이 2012/13시즌을 끝으로 은퇴한다. 현지 시간으로 19일 자신의 홈페이지를 통해 은퇴를 선언한 것. 1996년 리버풀에서 데뷔한 뒤 2004년까지 297경기에서 158골 기록하며 자신의 프로 인생 최고의 전성기를 보냈다. 그 이후 레알 마드리드(2004~2005년) 뉴캐슬(2005~2009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2009~2012년) 스토크 시티(2012~2013년)에서 뛰었으나 리버풀 시절의 포스를 재현하지 못했다. 올 시즌 스토크 시티에서는 7경기 출전(1골)에 그쳐 끝없는 내리막 길을 걸었고 결국 그라운드를 떠나게 됐다.

마이클 오언의 화려했던 시절

축구를 좋아한지 얼마 안된 사람들에게 익숙하지 않겠지만, 오언은 한때 세계 최정상급 공격수였다. 22세였던 2001년 리버풀의 미니 트레블(UEFA컵, 리그컵, FA컵 우승)을 이끌며 발롱도르를 수상했다. 그 해 잉글랜드 대표팀에서도 눈부신 활약을 펼쳤다. 2002 한일 월드컵 유럽 지역예선 라이벌 독일 원정에서 해트트릭을 달성하며 잉글랜드의 5-1 대승을 이끌었다. 당시 베컴(파리 생제르맹)과 더불어 잉글랜드 축구의 상징으로 꼽혔을 만큼 눈부신 성장을 이루었다.

오언의 전성기는 10대 후반부터 시작됐다. 1997/98시즌 프리미어리그 공동 득점왕(18골)에 올랐던 것. 1998년에는 당시 최연소의 나이로 잉글랜드 대표팀에 발탁되었으며 프랑스 월드컵 본선 16강 아르헨티나전에서 드리블 돌파를 통해 골을 터뜨리며 많은 사람들을 열광 시켰다. 1998/99시즌 프리미어리그에서도 공동 득점왕(18골)을 수상했으며, 두 시즌 연속 프리미어리그 득점왕을 달성했던 잉글랜드 국적 선수는 오언 이후로 지금까지 없었다. 2001년 리버풀의 미니 트레블 달성 및 발롱도르 수상에 이르기까지 10대 후반과 20대 초반에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다.

그러나 거듭된 시련

그러나 오언의 성장 곡선은 2000년대 중반에 꺾였다. 2004년 레알 마드리드 이적은 자신의 축구 인생의 최악으로 남을 선택이었다.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위해 레알 마드리드 이적을 결심했으나 로테이션 멤버로 전락했다. 39경기 출전 14골은 결코 나쁘지 않은 스탯이나 19경기에서 교체 멤버로 뛰었다. 붙박이 주전이었던 리버풀 시절보다 불규칙적으로 경기에 모습을 내밀었으며 측면 미드필더로 좌천되기도 했다. 공교롭게도 2004/05시즌 챔피언스리그 우승팀은 친정팀 리버풀이었다. 만약 자신의 개인 욕심을 버리고 리버풀에 그대로 남았다면 제라드와 더불어 챔피언스리그 우승의 꿈을 이루었을지 모를 일이다.

오언은 2005년 여름 이적시장을 통해 뉴캐슬로 둥지를 틀었다. 그러나 잦은 부상으로 경기력이 점점 떨어졌고 잉글랜드 대표팀 입지마저 위축됐다. 2008/09시즌 하반기에는 11경기 연속 무득점에 그쳤고 이는 소속팀의 챔피언십 강등 원인 중에 하나가 되고 말았다. 2009년 여름에는 자유계약 선수로 풀리면서 리버풀의 철천지 원수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입단했으나 주급 50% 삭감 계약을 감수했다. 그럼에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상징인 등번호 7번을 배정받으며 부활에 성공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가지게 했다.

퍼거슨호의 일원이 된 오언은 2009년 9월 20일 지역 라이벌 맨체스터 시티전에서 극적인 버저비터 골을 넣으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4-3 대승을 공헌했다. 그 해 12월 8일 챔피언스리그 32강 조별본선 볼프스부르크 원정에서 해트트릭을 달성하며 독일 원정에 강한 저력을 과시했다. 이때까지는 슈퍼서브로서 어느 정도 제 몫을 다했다. 그러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도 부상 악령을 이겨내지 못했다. 부상으로 신음하며 전력에서 이탈했던 시간이 많았다. 2011년 여름 소속팀과 재계약을 맺으며 퍼거슨 감독의 마지막 믿음을 얻었으나 2011/12시즌 4경기 출전에 그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떠나게 됐다.

오언은 지난해 여름 스토크 시티에 입단했으나 7경기에만 모습을 내밀었다. 프리미어리그에서는 6경기에 나섰으나 모두 교체 출전이었을 정도로 팀 내 주전 경쟁에서 밀렸다. 더 이상 프리미어리그에서 강렬한 존재감을 보여주지 못하면서 제2의 전성기를 되찾는데 실패했다. 오히려 현지 축구팬과의 트위터 설전으로 화제를 모았다. 한때 유럽과 세계 축구를 빛냈던 영웅의 초라한 말년이었다. 어쩌면 그의 은퇴는 예견된 수순이었는지 모른다.

마이클 오언에게 꾸준함이 있었다면?

오언은 오랫동안 전성기를 보내지 못했다. 10대 후반과 20대 초반에 화려한 시절을 보냈으나 20대 중반부터 30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거듭된 시련을 겪으며 과거의 명성을 회복하는데 실패했다. 너무 일찍 전성기가 찾아온 것이 독으로 작용한 것 아니냐는 생각을 할 수 있지만, 메시(FC 바르셀로나) 호날두(레알 마드리드) 같은 현존하는 최고의 축구 선수들을 떠올리면 결코 그렇지 않다. 서로의 나이와 전성기 연도를 떠나, 오언과 메시-호날두는 한 가지 두드러진 차이점이 존재한다.

오언은 메시-호날두에 비해 꾸준함이 부족했다. 꾸준함은 최고의 폼을 오랫동안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매 시즌마다 발전된 경기력을 과시하는 것이 꾸준함을 키우는 비결이다. 메시가 시즌을 거듭할 수록 많은 골을 넣었던 것, 호날두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시절과 달라진 것은 항상 진화를 거듭했기 때문이다. 반면 오언의 플레이 스타일은 단조로웠다. 최전방에서 빠른 순발력으로 상대 수비진을 두드리며 골을 시도하는 패턴에 너무 길들여졌다.(토레스 부진도 비슷한 예라 할 수 있다.) 뉴캐슬 시절부터 부상으로 신음하면서 발이 점점 느려졌고 이는 과거의 기량을 되찾지 못했던 요인이 되고 말았다.

만약 오언에게 꾸준한 면모가 있었다면, 경기를 풀어가는 패턴이 다양했다면, 유리몸으로 전락하지 않았다면 전성기가 오랫동안 이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더 이상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다. 그동안 재기 성을 위해 몸부림을 쳤으나 끝내 결실을 맺지 못한 오언의 은퇴는 많은 축구팬들에게 아쉬움을 안겨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