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는 전통적으로 측면 스페셜리스트가 즐비했다. 차범근, 변병주, 김주성, 서정원, 고정운, 노정윤에 이어 지금의 박지성 같은 걸출한 윙어들이 지속적으로 등장했다. 전술적으로도 윙어들의 비중이 높았다. 측면에서 빠른 스피드로 질주하면서 전방 공격수에게 크로스를 띄우는 장면이 팀의 주 공격 루트였다. 그때는 지금에 비해 중앙 공격을 풀어가는 노하우가 부족했다. 기량이 뛰어난 윙어들이 끊임없이 등장했던 이유다.
그러나 지금의 국가 대표팀에서는 과거 대표팀에 비해 측면 공격의 퀄리티가 약해졌다. 9월 11일 우즈베키스탄 원정, 10월 17일 이란 원정에서 승리를 올리지 못했던 대표적인 공통점은 윙어들이 부진했다. 우즈베키스탄전에서는 김보경-이청용, 이란전에서는 김보경-이근호-손흥민-이청용이 제 역할을 못했다. 아시아 원정의 어려움을 감안해도, 아시아 팀을 상대로 A매치 2경기 연속 승리가 없는 것은 문제 있다. 측면 공격의 실종을 바로잡지 못하면 브라질 월드컵 본선 진출을 장담할 수 없다.
김보경-이청용 부진 아쉽다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한국의 2010년 남아공 월드컵 16강 진출 원동력 중에 하나는 측면 공격이었다. 박지성과 이청용이 좌우 측면을 휘저으며 팀의 공격 분위기를 끌어 올렸다. 두 윙어의 공통점은 프리미어리그에서 활동했다는 점이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두각을 떨쳤던 박지성의 기동력, 볼턴의 에이스로 자리잡았던 이청용의 정교한 볼 배급이 측면에서 어우러지면서 상대 수비를 괴롭히는데 큰 힘이 됐다. 그러나 지금의 대표팀에서는 윙어들이 2010년 박지성-이청용 조합 만큼의 파괴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최강희호의 측면 공격 약화는 1차적으로 김보경-이청용과 밀접하다. 두 선수는 소속팀의 벤치 멤버다. 선발 멤버로 자주 투입되지 못하면서 실전 감각이 떨어졌고 우즈베키스탄-이란전 같은 중요한 경기에서 위축된 모습을 보였다. 문제는 두 선수가 챔피언십리그(잉글랜드 2부리그)에서 뛰고 있다. 앞으로 소속팀에서 입지를 끌어올리지 못하면 대표팀 경쟁력이 약해질 것이다. 이동국의 경우 한때 전북에서의 경기력 약화와 우즈베키스탄전 부진(경기 내용상)과 맞물려 이란 원정 엔트리에 포함되지 못했다.
특히 김보경은 상대의 강한 압박에 맥을 못추는 단점을 아직까지 이겨내지 못했다. 런던 올림픽 본선에서 기대 만큼의 경기력을 발휘하지 못한 것도 이 때문이다. 챔피언십리그는 프리미어리그보다 거칠기로 유명하다. 자신의 기교로 상대 수비를 무너뜨리는 노하우를 길러야 한다. 이청용은 지난해 여름에 오른쪽 정강이 이중골절 부상으로 장기간 경기를 쉬었던 것이 지금의 부진에 큰 영향을 끼쳤다. 무엇보다 자신만의 개성을 되찾아야 한다. 본래의 경기력을 되찾기까지 긴 호흡이 필요할 것 같다.
그동안 최강희호 에이스로 활약했던 이근호는 이란전에서 평소 만큼의 파괴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지난 4일 사우디 아라비아 원정(AFC 챔피언스리그 8강 2차전, 알 힐랄전)-9일 제주전(K리그)에 이어 대표팀의 이란 원정에 참가하면서 역시차에 걸렸다. 이란전이 펼쳐진 아자디 스타디움은 해발 1273m에 위치한 고지대로서 선수들이 체력적으로 지치기 쉽다. 이근호의 경기력 약화는 예견된 결과였다. 손흥민은 소속팀 함부르크에서의 오름세를 대표팀에서 이어가지 못했다. 대표팀 입지 향상을 위해 이란전에서 임펙트가 필요했으나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게 됐다.
박지성 은퇴-이청용 부상만의 문제는 아니다
최강희호의 측면 공격 저하는 일시적 현상이 아니다. 홍명보 감독이 이끌던 런던 올림픽 대표팀에서도 측면 공격이 기대 이하였다. 올림픽 본선에서 윙어로 뛰었던 김보경-남태희-백성동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고 이는 원톱 박주영 부진으로 이어졌다. 8강 잉글랜드전에서 왼쪽 윙어로 뛰었던 지동원은 침체에 빠진 김보경을 대신했던 대체 자원이자 본래 공격수였다. 홍명보호는 결과적으로 3위에 입상했지만 윙어 부재의 약점을 지우지 못했다.
지금의 한국 축구는 경쟁력 넘치는 윙어가 부족하다. 김보경-이청용이 우즈베키스탄전에 이어 이란전에서 중용된 것은(이청용은 이란전에서 조커였지만) 다른 관점에서 판단하면 두 윙어의 팀 내 입지를 약화시킬 윙어가 없다는 것을 뜻한다. 올해 A매치에 뛰었던 경험이 있는 염기훈과 김형범은 최강희 감독의 눈도장을 받지 못했다. 올림픽 대표팀 멤버였던 조영철, 김태환, 서정진도 마찬가지. 이근호와 손흥민은 전문 윙어보다는 멀티 플레이어에 속하며 그동안 대표팀에서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했다 더욱이 손흥민은 그동안 대표팀 주전과 거리감이 있었다. 지동원은 선덜랜드에서 이렇다할 출전 기회를 얻지 못하는 상황이다.
대표팀에서 걸출한 윙어를 발굴하려면 선수들의 더 많은 국제 경험이 필요하다. 하지만 우즈베키스탄 원정, 이란 원정에서는 중요한 경기를 앞두고 평가전이 벌어지지 않았다. 현지에 적응할 시간이 넉넉한 이점이 있었지만 선수들이 실전에서 손발 맞출 기회가 적었다. 과거의 허정무호는 남아공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중동 원정을 치르기 전에 평가전을 가졌다. 그 과정에서 이청용-기성용 같은 신예들이 대표팀 주전으로 성장하면서 A매치에 적응했다. 반면 지금의 최강희호에서는 아직까지 영건의 성장이 두드러지지 못했으며 윙어 또한 마찬가지다. 물론 K리그 일정 무시하고 평가전 늘리자는 뜻은 아니다.
한국 축구에 경쟁력 넘치는 윙어가 부족한 것은 박지성 대표팀 은퇴, 이청용 부상만의 문제는 아니다. 특급 윙어는 마땅치 않지만 그 단계에 도달하거나 혹은 다시 도약하려는 윙어가 즐비하다. 최강희호가 브라질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고 싶다면 2010년 박지성-이청용 조합 만큼의 파괴력을 과시할 윙어 조합을 되찾아야 한다. 그것이 한국 축구의 새로운 고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