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는 발을 주로 이용하는 스포츠입니다. 머리로 헤딩하거나 손과 어깨로 몸싸움을 펼칠 때가 있지만 축구공과 신체 접촉이 많은 부위는 발입니다. 하지만 눈이 보이지 않으면 정상적인 플레이를 펼칠 수 없습니다. 일상 생활 또한 불편하죠. 잉글랜드 명문 클럽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살아있는 전설' 폴 스콜스는 2005/06시즌 도중 자신의 오른쪽 눈에 시력 장애가 생기면서 장기간 경기에 뛰지 못했습니다.
[사진=제32회 전국 장애인 체육대회 남자 5인제 축구 전맹부(B1) 8강에서 대전과 울산이 맞붙는 장면입니다. 시각 장애인(전맹) 선수들이 축구하는 모습입니다. (C) 효리사랑]
그렇다면 시각 장애인들은 어떻게 축구할까요? 그들이 축구를 즐기는 방식은 우리들과 달랐습니다. 일반인 도움 없이는 축구를 비롯해서 일상 생활을 보내기 어렵다는 것을 현장에서 느꼈습니다. 아마도 축구팬 중에 99%는 시각 장애인, 그 중에서 전맹 시각 장애인들이 어떻게 축구하는지 잘 모를 것으로 판단됩니다. 저도 몰랐습니다. 시각 장애인들의 축구 경기를 보며 가슴 아팠습니다.
[사진=대전과 울산 소속으로 전국 장애인 체육대회에 출전한 시각 장애인 선수들. 다른 장애인 선수들은 11명이 축구하지만 시각 장애인 선수들은 5명씩 한 팀이 됩니다.(골키퍼 1명은 비장애인) 각 팀마다 시각 장애인들의 활동을 보조하는 분이 계십니다. (C) 효리사랑]
경기도 일대에서 진행중인 제32회 전국 장애인 체육대회. 축구 블로거로서 장애인 축구 경기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축구 종목이 개최된 수원 월드컵 경기장 보조구장(이하 보조구장)에서는 청각-뇌성-전맹-약시 장애가 있는 분들의 축구 경기가 진행됐습니다.(지적 장애인들의 축구 경기는 수원 종합 운동장에서 진행) 보조구장에는 그라운드가 여러개로 나뉘어졌기 때문에 다양한 축구 경기를 볼 수 있는 장점이 있었습니다. 또한 수원 월드컵 경기장은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10년 동안 드나들었던 장소였습니다.
10월 9일 오후 였습니다. 보조구장에 도착하기 전까지 '장애인들이 어떻게 축구할까?'라는 궁금증을 가졌습니다. 평소 장애인 스포츠를 접할 기회가 부족했고, 장애인 축구는 지금까지 현장에서 봤던 기억이 아마 없었을 겁니다. 한달전에 막을 내렸던 런던 패럴림픽에서는 한국이 축구 종목에 참가하지 못했죠. 개인적으로 다양한 축구 경기를 봤다고 자부하지만 어디까지나 일반인 축구에 해당 될 뿐입니다.
[사진=울산 소속의 시각 장애인 축구 선수들이 동료의 손과 어깨를 잡으며 이동하는 모습. 골키퍼와 활동 보조를 하는 분들은 일반인입니다. (C) 효리사랑]
보조구장에 도착하면서 서로 몸을 밀착하여 어깨동무로 이동하는 분들을 봤습니다. 처음에는 '왜 전우조로 다니지?'라고 의아했는데 축구 유니폼 착용한 것을 보니까 시각 장애인 축구팀 이었습니다. 시각 장애는 전맹, 준맹, 약시로 구분되며 그 중에서 전맹은 빛 지각을 하지 못하는 분들입니다. 다시 말해서 앞이 전혀 보이지 않는 분들입니다. 제가 봤던 분들은 전맹 시각 장애인입니다. 함께 화장실을 나오는 모습이었는데 마음속의 충격을 받았습니다.
전맹 시각 장애인들은 보조구장에 있던 다른 장애인들에 비해서 활동이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앞이 잘 보이지 않아서 화장실이 어디있는지, 계단이 어느 쪽에 있는지, 누가 무엇을 하고 어떻게 생겼는지 자세히 볼 수 없습니다. 일반인과 함께 붙어 다니면서 이동해야 합니다. 개인 생활을 보내는 것도 쉽지 않을 겁니다. 아마도 컴퓨터와 스마트폰으로 인터넷을 이용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자신이 듣고 싶은 노래를 마음껏 듣는 것도 외부의 도움 없이는 힘들겠죠. 만약 자신의 눈이 잘 안보인다고 상상하면 시각 장애인 분들이 얼마나 힘든 삶을 보내는지 느낄 것입니다.
[사진=청각 장애인들이 축구하는 모습. 부산의 11번 선수가 동료에게 손짓으로 의사 표현을 했습니다. (C) 효리사랑]
보조구장의 인조잔디 구장에서 청각 장애인들의 축구 경기를 봤습니다. 11명이 한 팀을 이루면서 빨리 달리고, 상대팀 선수와 몸싸움 펼치고, 패스를 주고 받는 움직임까지는 일반인 선수와 똑같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소리를 들을 수 없었습니다. 동료들과 손짓을 하거나 수화를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반면 시각 장애인 선수들에게는 소리가 '매우' 중요합니다. 청각 장애인 경기를 더 보고 싶었지만 제가 취재하고 싶었던 대상은 시각 장애인 경기였습니다.
[동영상] 저의 두 손으로 스마트폰을 들면서 시각 장애인 축구공을 두 발로 다루었습니다. 시각 장애인 축구공은 일반 축구공과 달랐습니다. 경기를 뛰는 선수들이 축구공 위치를 파악하도록 축구공 안에 쇠구슬을 넣었습니다. 선수들은 축구공 쇠구슬 소리를 들으며 경기합니다.
[사진=대전 소속 전맹 시각 장애인 선수들을 보호 활동했던 송재성님 (C) 효리사랑]
보조구장의 풋살구장에서 대전 소속의 전맹 시각 장애인 선수들이 훈련하는 장면을 봤습니다. 경기 시작 한 시간 전에 미리 몸을 풀었죠. 대전 선수들이 잠시 휴식을 취했을 때 축구공 안에 무었이 들었는지 궁금해서 송재성님에게 다가가 질문했습니다. 송재성님은 대전 선수들을 보호 활동하시는 분으로써 제가 즉석에서 인터뷰를 요청했는데 승낙 하셨습니다.
-송재성님과 인터뷰-
Q 전국 장애인 체육대회에 임하는 소감을 듣고 싶습니다.
A : 시각 장애를 가진 장애인분들과 장애를 가지지 않은 비장애인분들과 어울려서 이렇게 운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장애에 대한 편견을 없애고 서로서로 어울려서 생활하는게 발전적인 요소가 되지 않나 생각합니다.
Q : 팀에서 어떤 역할을 맡고 계십니까?
A : 저희 대전 팀에서 선수들을 보호 활동 합니다.
Q : 봉사 개념인가요?
A : 봉사는 아니고요. 저희가 생활 시설인데 직원으로서 보호합니다.
Q : 골키퍼 가르치시는 것을 보니까 축구를 하신 것 같은데, 실제 축구 선수 경력이 있으신건가요?
A : 정식으로 배우지 않았고요. 예전에 시각 장애인 골키퍼로 잠깐 활동했습니다. 골키퍼는 시각 장애인이 아닌 비장애인 입니다.
Q : 그동안 근무하면서 힘들었던 점이 있었나요?
A : 힘들다고 느껴본 적은 없고요. 제가 장애인 분야에서 특히 시각 장애인 분들이랑 같이 지내온 시간이 많이 있어서, 친구중에 시각 장애인이 있어서 불편하고 그런 것은 없습니다.
Q : 제가 아까전에 보니까 어깨잡고 돌아다니는 시각 장애인 분들을 봤는데, 혹시 장애인 분이 없어지면 찾아야 하는 그런 경우는 있었나요?
A : 딱히 그런 경우는 없는데요. 이동할 때는 서로서로 매너라고 생각하거든요. 제가 길을 가는데, 길이 익숙치 않은 사람에 대해서는 길을 조금씩 알려주면서 걷는다고 생각합니다. 장애물이나 계단을 간단하게 알려주면 그분들도 잘 알아서 들었기 때문에 사실 그렇게 어려운 부분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송재성님의 지도를 받는 대전의 시각 장애인 선수가 웃으면서 축구공을 다루는 모습입니다. 비록 앞은 보이지 않지만 축구를 할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행복을 느꼈을 것입니다.
전맹 시각 장애인 선수들이 경기 시작 전 입장하는 모습. 얼굴에 안대와 보호 장비를 착용한 상태에서 비장애인 분들의 보호를 받으며 그라운드에 등장했습니다.
[동영상] 남자 5인제 축구 전맹부(B1) 8강 대전-울산의 경기는 이렇게 시작했습니다. 하얀색 유니폼을 입은 울산이 선축을 했지만 일반 축구 선수들처럼 동료와 패스를 주고 받는 플레이가 불가능 했습니다. 눈이 안보여서 동료 선수 위치를 파악할 수 없습니다. 오로지 자신이 직접 볼을 몰고 전진해야 합니다. 빠른 스피드로 돌파하거나 개인기를 부리는 것도 전맹 시각 장애인 축구에서는 보기 힘든 장면일 겁니다. 그럼에도 상대 선수를 제칠 수 있는 이유는, 상대 수비도 앞이 안보입니다.
전맹 시각 장애인 축구 경기는 전후반 25분씩(하프타임 10분) 진행됩니다. 한 팀당 5명씩 출전하며 그 중에 1명인 골키퍼는 비장애인이 맡습니다. 일반 축구장 규격의 그라운드가 아닌 풋살구장을 비롯한 작은 규격의 그라운드에서 경기합니다. 심판은 3명(주심 : 2명, 대기심 : 1명)으로 구성 되었으며 주심 2명은 윗쪽과 아래쪽을 맡으며 경기를 진행합니다. 만약 축구공이 골대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골 라인 바깥으로 향하면 그라운드 가운데에 있는 중계석에서 "??골킥"(??는 팀 이름)이라고 선언합니다.
또 하나의 특징은 비장애인 분들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감독은 그라운드의 가운데에서, 선수 보호를 하는 가이드는 골대 뒷쪽에서, 골키퍼는 골대 앞에서 전맹 시각 장애인 선수에게 지시할 수 있습니다. 제가 경기를 봤을 때는 감독과 가이드의 지시가 계속 이어졌습니다. 선수가 어느 쪽으로 움직여야 하는지를 일일이 말해야 합니다. 감독의 지시 사항을 들으면 '4m', '6m' 같은 거리 단위의 말을 많이 합니다. 숫자는 골대와 볼 사이의 거리를 뜻합니다.
전맹 시각 장애인 축구 경기에서는 터치라인에 펜스가 설치됐습니다. 두 손으로 스로인을 던지는 모습을 볼 수 없습니다. 종목 특성상 경기가 신속하게 진행되도록 펜스가 놓여졌습니다. 다만, 코너킥은 있습니다. 평소에는 1명이 상대 진영에서 볼을 다루어도 되지만, 코너킥 때는 2명의 선수가 필요합니다. 키커의 볼을 받아줄 선수가 있어야 하죠.
[동영상] 전맹 시각 장애인 축구 선수들의 경기 장면입니다. 동영상 3분 30초부터는 울산의 골 장면이 시작됩니다.
대전은 전반 중반까지 0-2로 밀렸습니다. 공격을 맡은 4번 선수가 추격골을 넣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지만 울산 수비가 3명이나 들어왔습니다. 공격수로서 상대 수비의 몸싸움을 견뎌야 하는 어려움이 있죠. 과연 4번 선수는 악조건을 극복할 수 있을까요?
대전의 4번 선수가 마침내 만회골을 넣었습니다. 추격의 기쁨도 잠시...
울산의 5번 선수가 추가골을 넣으면서 울산이 3-1로 앞섰습니다.
전맹 시각 장애인 축구에서는 전후반마다 작전 타임이 있습니다. 일반인 축구와 다른 모습입니다. 울산은 전반 막판에 1골 추가하며 4-1로 전반전을 마쳤습니다.
대전은 후반전이 되자 작전을 바꿨습니다. 더 이상 실점하지 않기 위해 수비수 2명이 서로 악수를 하고 붙어다니면서 상대 공격을 저지했습니다.
대전의 감독님이 후반전 작전 타임때 4번 선수의 어깨를 두드리며 격려하는 모습. 비록 팀은 지고 있었지만 감독님은 선수들을 신뢰했습니다.
대전의 4번 선수는 후반전에 2골 넣으며 해트트릭을 달성했습니다. 울산이 후반전에 1골 추가하면서 팀은 3-5로 졌지만 4번 선수의 해트트릭이 위안이 되었을 것 같습니다.
대전과 울산 선수들은 종료 후 인사를 하고 악수를 하면서 경기를 마쳤습니다. 두 팀의 승패가 정해졌지만 실질적으로는 장애를 딛고 운동에 도전하는 모든 선수들이 승자였습니다. 전맹 시각 장애인 선수들에게 축구는 삶의 희망 이었습니다. 이분들에게 축구는 무언가를 이루거나, 힘든 환경을 극복하거나, 긍정적이고 활기찬 일상을 보낼 수 있는 절대적인 존재였을 겁니다.
전맹 시각 장애인 축구 선수들을 보면서 안타깝고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한편으로는 이분들이 앞으로 오랫동안 행복한 삶을 보내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포스팅을 읽는 많은 분들도 저와 같은 마음이겠죠. 저는 경기 시작전에 눈물을 흘릴 뻔했습니다.
*저는 대한 장애인 체육회 블로그 기자단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