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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최강희의 '이동국 포기'는 옳다, 그러나...

 

'사자왕' 이동국(33, 전북)은 지난 1월 23일 방송된 SBS 예능 프로그램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에 출연했다. 당시 이경규는 "이동국에게 월드컵이란?"이라고 물었다. 이동국의 답은 이랬다.

"아직 제가 이루지 못한 숙제인 것 같아요. 모든 큰 대회 때마다 항상 골을 넣었는데 유독 월드컵에서는 아직 골이 없어요. 그거는 제가 풀어야 할 숙제인데, 글쎄요. 기회가 된다면 한 번 더 나갈 수 있는 그런 기회를 얻을 수 있겠죠. 저는 국가대표 은퇴라는 그런 얘기를 하고 싶지 않아요. 축구를 시작하면서 마지막 축구화 끈을 푸는 순간까지는 국가대표에 대한 욕심을 가져야 하고, 월드컵에 대한 희망을 가져야 하고요. 2014년까지 제가 최상의 컨디션으로 뛸 수 있다면 도전해 보고 싶어요."

아마도 한국 축구 역사상 이동국만큼 월드컵 사연이 기구한 선수는 거의 없을 것이다. 황선홍은 네 번의 월드컵 도전 끝에 국민적인 영웅이 되었지만, 이동국은 네 번의 월드컵에 도전했거나 그 직전 단계에 있었지만 '국내용' 오명을 떨치지 못했다.

물론 이동국이 국제 경기에 강할 때가 있었다. 지난해 AFC 챔피언스리그에서는 최우수선수(MVP)와 득점왕을 동시에 거머쥐었다. 하지만 "이동국은 국제 경기에 약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가 월드컵에서 골을 터뜨리지 못한 탓도 있다.

이동국은 2010년 남아공 월드컵 16강 우루과이전 종료 직전에 결정적인 골 기회를 놓쳤다. 끝내 한국이 탈락하면서 많은 사람이 이동국을 비난했다. 월드컵 종료 후에는 감독이 바뀌면서 대표팀 엔트리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이렇게 그의 월드컵 도전은 끝나는 듯싶었다.

하지만 전북에서 절치부심 끝에 다시 태극 마크를 달았고, 자신의 부활을 도왔던 '스승이자 은인' 최강희 감독이 지난해 연말 대표팀 사령탑으로 부임하면서 최근까지 대표팀 주전 공격수로 활약했다.

그러나 이동국은 26일 발표된 대표팀의 이란전 원정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다시 그의 월드컵 도전에 위기가 찾아왔다.

이동국, 파란만장했던 대표팀 14년

이동국은 대표팀에서 14년 동안 A매치 93경기에 출전하여 29골 넣었다. 월드컵에서의 맹활약은 없었지만 1998년부터 지금까지 대표팀에서 롱런했다. 그는 지난 11일 우즈베키스탄 원정 엔트리에 포함된 선수 중에서 2000년대 이전에 대표팀에서 뛰었던 유일한 선수였다. 이동국은 온갖 실패와 시련을 겪었으나 월드컵에서 골 넣는 목표를 품으며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파란만장했던 이동국의 스토리는 1998년 프랑스월드컵부터 시작한다. 포철공고 졸업 후 당시 K리그 포항에서 발군의 골 결정력을 과시하며 당시 대표팀을 지휘했던 차범근 전 감독의 선택을 받았다.

월드컵 본선 2차전 네덜란드전에서 후반 32분 교체 투입했을 때는 이미 한국의 패색이 짙어졌다. 그는 후반 막판에 빨랫줄 같은 중거리 슈팅을 날리면서 한국의 무기력한 경기력에 답답했던 국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비록 한국은 0-5로 대패했지만 이동국은 대중들에게 '미래 한국 축구를 빛낼 유망주'로 부각되었고, 이는 K리그의 르네상스로 이어졌다.

하지만 이동국은 대중들의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했다. 근본적으로 혹사에 시달렸다. 각급 대표팀과 소속팀 경기를 병행하면서 에너지를 소모했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의 부진은 무릎 부상 뒤 충분히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경기에 뛰었기 때문이다. 그해 아시안컵에서는 6골로 득점왕에 올랐으나 오른쪽 무릎을 붕대로 감으면서 이룬 악전고투였다.

2001년 1월 독일 분데스리가 베르더 브레멘에 진출했으나 이렇다 할 활약을 펼치지 못한 것도 무릎 부상 후유증과 연관이 깊다. 슬럼프에 빠진 이동국은 2002년 한일 월드컵 최종 엔트리에 포함되지 못했다.

이동국이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선 때는 2004년이었다. 상무에서 재기를 위해 구슬땀을 흘리면서 당시 대표팀 신임 사령탑이었던 본프레레 전 감독의 눈도장을 받았고 아시안컵 4경기 4골로 대표팀 주전 공격수 자리를 되찾았다. 그해 12월 A매치 독일전에서는 세계 최고의 골키퍼였던 올리버 칸을 상대로 오른발 발리슛을 쏘아 올리며 한국의 3-1 승리를 이끌었고 국민적인 신뢰를 되찾았다.

본프레레호에 이어 아드보카트호에서도 발군의 공격력을 과시하며 2006년 독일 월드컵 본선에서 4년 전 한일월드컵의 아쉬움을 해소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이동국에게 예상치 못한 시련이 찾아왔다. 2006년 4월 K리그 경기 도중 전방 십자인대가 파열되면서 월드컵 본선 출전이 좌절됐다. 한일월드컵 좌절을 극복하기 위한 4년의 노력이 물거품됐다.
 
이듬해 1월 프리미어리그 미들즈브러에 진출했으나 무릎 부상 후유증에 시달렸다. 그해 여름 아시안컵에서는 조재진과의 주전 경쟁에서 밀린 끝에 무득점에 그쳤으며, 음주 파문에 휘말리면서 1년간 대표팀 자격정지 중징계를 받았다. 2008년 5월에는 미들즈브러, 12월에는 성남에서 경기력 부진으로 방출되는 시련을 겪었다.

내리막길에 빠진 이동국에게 부활의 손길을 내밀었던 인물은 최강희 당시 전북 감독이었다. 이동국은 최강희 감독의 믿음을 얻으며 예전의 기량을 회복한 끝에 2009년 K리그 21골로 득점왕에 오르면서 팀 우승을 이끌었다.

비록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 부진했고, 조광래 전 감독과의 전술적인 괴리감을 지우지 못했지만 전북에서는 꾸준히 펄펄 날았다. 지난해 연말에는 최강희 감독이 대표팀 사령탑을 맡으면서 다시 태극 전사가 됐다. 올해 2월 A매치 2경기에서는 3골 넣으며 자신의 건재함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렸다. 그러나 지난 11일 우즈베키스탄전에서는 골을 넣었으나 경기 내용이 좋지 못했고, 결국 이번 이란전 엔트리에서 제외됐다.

최강희 감독의 '이동국 포기'는 옳았다

결과적으로 최강희 감독의 이동국 포기는 옳은 판단으로 보인다. 대표팀 발탁은 어느 선수든 공정한 시선에서 이뤄져야 한다. 아무리 축구 실력이 다른 누구보다 월등하거나 감독의 신임을 받는 선수라도 컨디션이 떨어지면 대표팀으로 발탁해선 안 된다. 대표팀은 최정상급 기량과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는 선수가 모인 집단이어야 한다.

이동국은 33세 노장이다. 대표팀 벤치를 지키면 후배들 시선에 부담을 느끼기 쉽다. 최강희 감독도 이란전 명단 발표 기자회견에서 "베테랑 선수들은 절대적으로 경기력이 우선시 되어야 한다"고 언급했다.

이동국은 우즈베키스탄전에서 부진했다. 7월 이후 K리그 12경기에서 3골에 그쳤다. (이란전 엔트리 발표 이전까지를 말한다.) 반면 3~6월 K리그 14경기에서는 12골 기록했다. 체력적 부담과 그동안 많은 경기를 뛰었던 과부하 때문인지 무더위가 찾아오면서 평소만큼의 경기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더욱 이란 원정은 10만 관중이 운집하는 아자디 스타디움에서 진행된다. 그 경기장은 해발 1273m 고지대에 있다. 원정팀이 체력적으로 불리하다. 이동국처럼 컨디션이 좋지 못한 선수가 이란 원정에 참여하면 대표팀 전력의 불안 요소로 작용한다. 참고로 한국 국가 대표팀은 지금까지 이란 원정에서 승리한 경험이 없다. (올림픽 대표팀은 승리한 적이 있다.)

이동국의 대표팀 제외는 최강희 감독의 소신으로 보인다. 최강희 감독은 전북 사령탑 시절부터 이동국과 인연을 맺었다. 대표팀 사령탑 부임 이후에는 조광래 전 감독의 눈도장을 받지 못했던 이동국을 주전 공격수로 기용했다. 하지만 이동국이 우즈베키스탄전에서 만족스러운 모습을 보이지 못하면서 '최강희 감독이 이동국을 편애하는 것이 아니냐'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높았다. 물론 최강희 감독은 '이동국 대표팀 제외'를 결단하면서 여론을 의식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동국의 스승이 아닌 대표팀 감독으로서 마땅한 결정을 내렸을 뿐이다.

과연 이동국은 브라질 월드컵에 참가할까?

최강희 감독은 이란전 명단 발표 기자회견에서 이동국이 소속팀에서 잘하면 다시 대표팀으로 발탁할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했다. 하지만 최강희 감독은 자신의 임기가 2013년 6월 브라질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까지라고 못 박았다. 만약 최 감독 뜻대로 한국의 브라질월드컵 본선 진출을 이끌고 전북으로 돌아가면 새로운 감독이 대표팀 지휘봉을 잡을 것이다. 최 감독이 브라질월드컵 본선 지휘봉을 잡을 가능성도 있지만, 2014년 한국 대표팀을 이끌 지도자가 이동국을 발탁할지 아직 알 수 없다.

이동국은 2014년이면 35세다. 사실상 브라질월드컵이 현역 선수로서는 마지막 월드컵이다. 월드컵 최종 엔트리 23인에 포함되기까지, 그리고 본선에서 많은 시간 출전하기에는 체력적 한계에 시달릴 가능성이 있다. 또한 전북은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AFC 챔피언스리그를 병행할 것으로 보인다.(현재 K리그 2위) 2012년 32강 조별리그 탈락의 아쉬움을 2013년에 만회해야 한다. 이동국은 전북의 에이스로서 앞으로 많은 경기를 뛸 수밖에 없다.

만약 이동국이 브라질월드컵에 참가한다면 선발보다는 조커에 무게감이 실린다. 남아공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았던 두 경기에서도 조커로 투입했다. 하지만 그는 지금까지 A매치에서 교체 선수로 골을 넣은 경험이 많지 않다. 프리미어리그에서도 후반전 교체 투입이 빈번했으나 무득점에 그쳤다. 이동국은 후반전에 경기 흐름을 바꾸는 조커의 기질보다는 선발 선수로서의 경쟁력이 더 강했다.

그렇다고 이동국의 브라질월드컵 출전을 벌써 비관적으로 바라볼 필요는 없다. 2014년에도 꾸준히 몸을 관리하고 최상의 경기력을 유지하면 대표팀에 합류할 수 있다. 2010년 남아공월드컵 준우승팀 네덜란드에서 주장으로 활약했던 왼쪽 풀백 판 브롱크호르스트는 4강 우루과이전에서 강력한 왼발 중거리 골을 성공시켰다. 당시 그의 나이는 35세였다.

한국에서 이동국은 어떤 선수였나

이동국을 향한 사람들의 평가는 극과 극이다. 평소 K리그를 좋아했던 축구팬이라면 이동국을 현역 선수 중에서 한국 최고의 공격수로 꼽을 것이다. 그러나 K리그와 익숙하지 않거나 폄하하는 사람들에게 이동국은 비난의 대상이다. '이동국은 국내용'이라는 비아냥이 등장한 것도 이와 밀접하다.

실제로 이동국이 전북에서 골을 넣을 때 포털 뉴스 댓글에서 그를 비난하는 악플러를 흔히 볼 수 있다. 그가 대표팀이나 AFC 챔피언스리그에서 골을 넣었을 때도 마찬가지다. 오랫동안 안티팬이 쌓였기 때문이다.

이동국은 축구 선수로서 성공했다. 단지 월드컵 골과 인연이 없었을 뿐이다. '비운의 스타'라는 이미지는 그래서 생겼다. 예전에 비해 '대표팀이 K리그보다 더 중요하다'는 대표팀 중심주의가 어느 정도 해소되었지만, 대중적인 관점에서는 여전히 K리그보다 대표팀이 더 익숙하다. 이 때문에 이동국의 K리그 활약이 평가절하된 측면도 있다. 

이동국은 브라질월드컵에 출전해 골을 넣는 시나리오를 오랫동안 갈망했을 것이다. 그는 K리그에서 화려한 나날을 보냈고 대표팀에서 14년 동안 롱런했지만 축구 선수로서 모든 것을 이룬 것은 아니다.

이동국은 여전히 꿈꾸고 있다. 이란전 엔트리 제외는 그가 지금까지 겪은 시련에 비하면 별 거 아니다. 이동국의 꿈 실현은 개인적인 영예로만 머물지 않는다. 그가 월드컵경기에서 골을 터뜨리면 많은 국민이 환호할 것이다.

사자왕 이동국의 포효가 기대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