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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포기하지마. 일본전에서 동메달 따자"

 

한국과 브라질이 격돌했던 올림픽 축구 4강전. 후반 19분 레안드로 다미앙에게 실점을 허용하면서 스코어는 0-3이 되었고 사실상 패배가 확정됐다. 강팀 브라질을 상대로 0-3을 4-3으로 뒤집기에는 매우 역부족이었다. 그런데 후반 25분 박주영이 교체 투입 되면서 후배 선수들에게 "포기하지마"라고 외쳤던 입모양이 TV 화면에 잡혔다. 동료들에게 위축된 플레이를 하지 말라고 주문하면서 3~4위전 일본전이 남아있음을 일깨운 것 아닐까.

브라질전 패배는 어쩔 수 없었다. 런던 올림픽 5경기 연속 3골로 대회 최고의 공격력을 과시했던 브라질을 꺾기에는 두 나라 축구 레벨 격차가 벌어져있다. 한국이 동메달을 획득할 수 있는, 선수들이 병역 혜택을 받을 마지막 기회는 3~4위전 일본전 승리 뿐이다.

만약 한국이 일본에게 졌다고 가정해보자. 어떤 일이 벌어질까? 홍명보호는 국민적인 질타를 피해가지 못할 것이다. 선수들은 병역 혜택을 받지 못하면서 해외리그 진출 및 롱런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한국 축구 인지도 향상의 한계로 작용한다. 국민들은 '삿포로 참사'로 일컬어지는 지난해 8월 10일 A매치 일본전 0-3 패배의 악몽을 1년 만에 또 느끼면서 무더운 날씨와 더불어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다. 역대 최대 금메달을 바라보는 한국의 런던 올림픽 성적의 오점으로 남게될지도 모른다. 정말 끔찍한 시나리오들이다.

반대로 한국이 일본을 이기면 어떻게 될까. 홍명보호 일원은 국민적인 영웅으로 떠오를 것이며 박종우-김창수-이범영 소속팀 K리그 부산 아이파크는 '스타 마케팅'을 기대할 것이다. 선수들은 병역 혜택에 의해 해외에서 오랫동안 활약할 명분을 얻을 것이다. 프리미어리그 진출을 앞둔 기성용 몸값 폭등도 기대할 수 있다. 최근에는 맨체스터 시티, 아스널 영입 관심을 받고 있다. 스포츠 방송사들은 한국의 일본전 승리 혹은 그동안의 행보를 다룬 하이라이트를 장기적으로 방영할지 모른다. 야구 대표팀의 2008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 하이라이트처럼 말이다.

한국이 일본을 이겨야 할 이유는 여럿 있다. 개인적으로 이것을 강조하고 싶다. 한국이 아시아 축구 최강국임을 일본에 과시해야 한다. 실제로는 일본이 아시아 No.1이다. 지난 4번의 아시안컵에서 3번 우승했고 지난해 A매치 한국전에서 3-0으로 이겼다. 물론 한국 축구팬으로서 인정하기 싫다. 2010년 A매치 일본전 2연승까지는 한국 대표팀이 일본 대표팀보다 월등했다. 이제는 '한국<일본'을 '한국>일본'으로 되돌려 놓아야 한다. 런던 올림픽이 A매치가 아니라는 점에서 두 나라 축구 레벨이 달라지지 않을 것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국민들의 마음속에서 홍명보호의 세키즈카 재팬 격파는 '한국이 일본보다 축구를 더 잘한다'는 인식을 심어주기 쉽다.

이번 일본전은 홍명보호의 마지막 경기다. 국가 대표팀의 경우 지금까지 토너먼트 혹은 메이저 대회 본선 탈락, 아시아 지역예선 부진을 통해서 감독이 교체된 일이 잦았다. 그나마 핌 베어벡 전 감독은 자신의 한국 대표팀 마지막을 일본전 승부차기 승리(2007년 아시안컵)로 장식했지만 공식 기록상 무승부였다. 올림픽 대표팀 같은 경우에는 탈락만 반복했다. 그러나 홍명보 감독은 이전 대표팀 감독들과 다를 수 있다. 한국의 일본전 승리를 이끌면 마지막 경기에서 사상 첫 올림픽 동메달 입상이라는 쾌거를 달성하고 올림픽 대표팀 여정을 마무리한다.

홍명보호는 3~4위전에 대한 좋은 추억이 있다.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3~4위전 이란전에서 1-3으로 질뻔했던 경기를 4-3 대역전극을 펼치면서 동메달을 획득했다. 4강 UAE전 패배로 금메달 획득에 실패하면서 사람들을 실망시켰지만 이란전에서 화끈한 명승부를 펼치면서 민심을 회복했다. 그때 뛰었던 선수 중에 몇몇이 런던 올림픽 일본전 승리를 잔뜩 벼르고 있다. 만약 일본에게 밀리더라도 동점골, 역전골을 넣기 위한 불굴의 의지를 불태울 것이다. 선수들에게 절실한 병역 혜택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한국은 런던 올림픽 본선에서 짝수번째 경기에 강한 면모를 보였다. 1,3,5번째 경기였던 멕시코-가봉-브라질전은 모두 승리하지 못했다. 세 경기 모두 내용이 좋지 못했고 브라질전은 패했다. 2,4번째 경기였던 스위스-영국전에서는 웃었다. 스위스전 승리로 8강 진출의 토대를 마련했고 영국전에서는 승부차기 끝에 이기면서 4강에 올랐다. 일본전은 한국의 6번째 경기다. 이번에도 짝수번째 경기에 강한 모습을 보이면 일본전 승리는 현실이 된다.

런던 올림픽 한일전은 국민들 기억속에 남을 명승부가 연출 될 것으로 기대된다. 한국과 더불어 일본 선수들도 틀림없이 라이벌 의식을 느낄 것이기 때문. 두 팀 모두 서로에게 지지 않기 위한 필사적인 자세를 취할 것이다. 한국과 일본 선수들의 약점으로 체력 저하가 꼽히지만 라이벌전은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칠 정도로 뛰어야 한다. 승리욕이 강한 팀은 상대에게 밀리는 경기를 끝내 이기는 저력이 있다. 또는 압도적으로 이길 수 있다. 그 팀이 한국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