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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2008년 야구 금메달, 2012년은 축구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최고의 장면을 꼽으라면 한국 야구 대표팀의 금메달 획득이었다. 쿠바-일본-미국 같은 야구 강국들을 물리치면서 9전 전승을 거둔 것은 한국 야구 사상 최고의 국제적인 성과가 아닐까 싶다. 이승엽이 4강 일본전에서 8회말 역전 홈런을 터뜨리며 합법적인 병역 브로커로 떠올랐던, 허구연 해설위원이 "대쓰요", "G.G. 사토 고마워요", "아~, 더블 플레이! 더블 플레이! 고엥민! 고엥민!"라고 외친 장면은 4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다. 많은 사람들은 한국 야구의 금메달에 열광했고 그 여파는 '롯데의 돌풍과 맞물려' 프로야구의 국민적 인기로 이어졌다.
 
반면 축구 대표팀은 베이징 올림픽에서 웃지 못했다. 본선 1차전 카메룬전에서 1-1로 비겼으나 2차전 이탈리아전에서 0-3으로 패했다. 특히 이탈리아전 졸전으로 축구 대표팀에게 국민적인 지탄이 쏟아졌으며, 3차전 온두라스전에서 1-0으로 이겼으나 8강 진출에 실패하면서 한동안 여론의 비아냥을 들어야했다. "축구장에 물 채워라. (박)태환이 수영해야 된다"라는 말이 유행했을 정도. 한국 축구 자존심이 상처를 받을 수 밖에 없었다.
 
축구팬 중심의 시각에서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야구와 축구 성적이 비교되는 것은 안타깝다. 축구 대표팀이 이탈리아전에서 패하더라도 끝까지 최선을 다해서 싸웠다면 적어도 놀림을 피했을지 모를 일이다. 2007년 U-20 월드컵 본선 탈락 속에서도 담대한 경기를 펼치면서 여론의 박수를 받았던 전례를 떠올리면 말이다. 당시의 축구는 야구에 비해서 올림픽 메달 가능권은 아니었다고 판단되지만, 그래도 강팀에게 물러서지 않는 투혼을 발휘했어야 마땅했다.
 
2012년 런던 올림픽은 4년전의 아쉬움을 만회할 최적의 기회다. 더욱이 이번 대회는 야구가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지 못했다. 축구가 국민들의 엄청난 관심을 끌 것으로 예상된다. 많은 사람들은 축구 대표팀의 첫 올림픽 메달 획득을 바라겠지만, 현실적으로 확신하기 어렵다. 브라질-우루과이-스페인이 이번 대회 강력한 우승 후보이며 영국 단일 축구 대표팀의 개최국 효과가 작용할 전망이다. 다행히 홍명보호는 본선에서 이들과 겨루지 않지만 토너먼트에서 어떤 팀과 외나무 다리에서 만날지 아무도 모른다.
 
그럼에도 홍명보호는 역대 최고의 올림픽 축구 대표팀 전력이 아닐까 싶다. 해외에서 맹활약 펼쳤거나 유럽리그 경험을 쌓은 선수들이 여럿 포진했다. 기성용(셀틱) 구자철(아우크스부르크) 박주영(아스널) 지동원(선덜랜드) 김보경(세레소 오사카) 남태희(레퀴야) 등을 거론할 수 있다. 와일드카드로 꼽힌 박주영을 비롯해서 정성룡(수원) 김창수(부산)는 대표팀 경험이 풍부하거나 K리그에서 알토란 같은 활약을 펼쳤던 선수들이다.

몇몇 선수의 와일드카드 발탁 무산과 부상에 따른 올림픽 불참은 아쉽지만 4년 전에 비해서 선수층이 좋다. 특히 기성용은 베이징 올림픽 시절에 비해서 기량 업그레이드에 성공했으며 셀틱에서 성공한 저력까지 갖췄다. 4년 전 이맘때까지는 국가 대표팀 출전 경험이 없었지만 이제는 에이스급으로 성장했다. A매치 출전 횟수가 벌써 47경기다.

홍명보 감독도 믿음직하다. 지난 몇년간 대표팀 코칭스태프를 경험한데다 2009년 U-20 월드컵 8강 진출을 일군 성과라면 런던 올림픽 선전을 기대할 수 있다. 물론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은 불운했다. 4강 아랍에미리트연합(UAE)전에서 경기 종료 직전에 실점한 것이 뼈아팠다. 하지만 당시의 대표팀은 금메달을 따내지 못했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명승부를 발휘했다. 3~4위전 이란전에서 2:3으로 질뻔했던 승부를 종료 직전 지동원 2골에 의해 4:3으로 바꾸면서 값진 동메달을 따냈다.

구자철은 얼마전 KBS 2TV '이야기쇼 두드림'에서 이란전 에피소드를 전하면서, "금메달을 따지 못했다는 생각에 의욕이 없는 선수들 모습을 보고 평소 화를 잘 내지 않는 홍명보 감독이 호된 꾸지람을 줬다"고 밝혔다. 홍명보 감독에 자극받은 선수들은 반드시 이기겠다는 투혼으로 무장하여 마침내 이란을 격퇴했다.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는 어떤 드라마를 써낼지 기대되는 이유다.

홍명보호의 런던 올림픽 행보가 기대되는 이유는 앞으로 한국 축구의 10년을 이끌어갈 주역들이 포진했다. 기성용-구자철-김보경 같은 선수들은 대략 2022년 카타르 월드컵까지 한국 대표팀을 짊어져야 한다. 런던 올림픽에서 세계적인 선수들에 주눅들지 않는 당당한 경기력을 선보이면 2014년 브라질 월드컵을 비롯한 메이져 대회에 강한 면모를 발휘할 경험을 얻게 된다. 만약 런던 올림픽에서 3위 이내의 성적을 거두면 병역 혜택을 받게 된다. 선수들의 유럽 진출 및 유럽 롱런이 보다 쉬워진다.

현실적으로 홍명보호의 런던 올림픽 동메달 이내의 입상을 쉽게 낙관하기는 어렵다. 한국 축구가 지금까지 올림픽에서 4강에 진출한 경험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12년은 느낌이 좋다. 아까도 말했듯 4년 전과 비교해서 선수층이 좋아졌지만, 2004년 아테네 올림픽 8강 세대에 비해서 수비력 강화를 기대할 수 있다. 한국의 중원을 책임질 기성용-구자철-박종우는 기본적인 수비 능력이 있는 선수들이다. 골키퍼는 와일드카드 정성룡이 발탁됐다. A팀 주전 골키퍼가 올림픽 대표팀 수문장으로 나선 것은 한국 대표팀 전력에 큰 힘이 될 수 있다. 올림픽 같은 중요한 대회에서는 되도록이면 실점을 허용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적어도 한국 축구 올림픽 대표팀이 베이징 올림픽때와는 다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