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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박지성 QPR 이적, 새로운 도전 응원하자

 

개인적으로 박지성의 퀸즈 파크 레인저스(이하 QPR) 이적은 아쉬움에 남습니다. QPR은 지난 시즌 프리미어리그 17위이며 그 이전에는 챔피언십리그(2부리그)에 소속됐습니다. 시즌 최종전에는 볼턴과 강등 싸움을 펼쳤죠. 박지성의 커리어라면 QPR보다 더 좋은 클럽에서 활약할 가치가 충분했습니다. 다른 리그의 명문 클럽으로 갈수도 있었죠. QPR이 '박지성 효과'를 누릴지라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처럼 많이 이기지는 않을 겁니다. 다만, QPR 돌풍은 기대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박지성 QPR 이적은 정상적인 과정입니다. 빅 클럽 주전 경쟁에서 밀려난 선수가 낮은 클럽에서 뛰는건 당연합니다. 지금까지 그런 선수들이 많이 존재했죠. 존 오셰이, 웨스 브라운(이상 선덜랜드) 필 네빌(에버턴)은 맨유에서 오랫동안 뛰었으나 꾸준한 선발 출전 기회를 얻기 위해 중소 클럽으로 떠난 케이스입니다. 축구 선수의 가치는 소속팀 이름으로 말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좋은 클럽에서 뛰어도 경기에 못나오는 선수는 사람들의 인정을 받기 어렵습니다. 축구 선수는 경기력으로 말합니다.

빅 매치에서 검증된 박지성 역량이라면 적어도 올 시즌까지 맨유에서 뛸 수 있었다고 봅니다. 그러나 알렉스 퍼거슨 감독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지난 시즌 막판 7경기 연속 결장은 퍼거슨 감독이 박지성보다는 애슐리 영을 선호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모처럼 선발 출전 기회를 잡았던 지난 5월 1일 맨체스터 시티전에서는 실전 감각 저하로 부진했고 그것이 맨유에서의 마지막 경기가 되고 말았습니다. 만약 박지성이 맨유에 잔류했다면 애슐리 영, 루이스 나니와 로테이션 경쟁을 펼쳐야하는 부담감이 있었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카가와 신지의 왼쪽 윙어 전환이 가능하죠. 30대에 접어든 나이에 빅 클럽에서 버거운 경쟁을 펼쳤을 겁니다.

이제는 박지성 QPR 이적을 긍정적으로 생각합시다. 박지성은 더 이상 맨유 선수가 아닙니다. 'QPR 박지성'이라면 붙박이 주전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QPR은 맨유와 달리 유럽 대항전에 출전하지 않으며 프리미어리그에 전념합니다. 칼링컵-FA컵에도 참여하지만 다가오는 이번 시즌 만큼은 프리미어리그에서 성적을 끌어 올려야 마크 휴즈 감독의 체면이 설겁니다. 휴즈 감독은 QPR 비상을 위해 구단 사장과 함께 한국을 찾으며 박지성 영입에 공을 들였습니다. 빅 매치에 잔뼈가 굵은 박지성을 데려오면서 전력을 보강하겠다는 뜻이죠. 단순히 마케팅 목적으로 영입하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어떤 사람들은 박지성이 QPR에서 많은 골을 넣기를 바랄지 모르겠지만, 제가 볼때는 QPR의 박지성 영입은 수비 보강 목적이 뚜렷합니다. 휴즈 감독은 실용적인 축구를 합니다. 화끈한 공격력보다는 탄탄한 수비 조직력을 바탕으로 자기 진영을 지키는 타입에 속합니다. 특히 블랙번 시절(2004~2008년)에 재미를 봤었죠. QPR은 지난 시즌 프리미어리그 최다 실점 공동 4위(38경기 66실점)를 기록했으며 올 시즌 선전하려면 실점을 줄여야 합니다. 미드필더쪽에서 수비력이 뛰어난 선수가 필요했고 휴즈 감독은 박지성을 적임자로 선택했습니다.

박지성이 QPR에서 내세울 수 있는 강점은 경험입니다. 빅 매치에 강한 선수들의 특징은 침착한 경기 운영 능력을 자랑합니다. QPR에는 그런 선수가 부족한 것 같습니다. 지난 시즌 빅6를 상대로 4승8패 기록했으며 17위팀 치고는 승리 횟수가 제법 있습니다. 반면 챔피언십리그로 강등된 볼턴-블랙번-울버햄턴을 상대로 1승1무4패에 그쳤습니다. 강팀 전적은 둘째치고 강등팀에 저조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한마디로 승점 관리가 잘 안됩니다. 박지성처럼 매 경기 매 순간마다 열의를 다하는 선수들이 있다면 17위까지 내려가지는 않았을 겁니다. QPR의 야심찬 선수 보강도 중요하지만 근본적으로 기존 선수들의 멘탈 향상이 요구됩니다. 휴즈 감독이 박지성을 필요로 했던 이유죠.

QPR로 이적한 박지성의 포지션은 중앙 미드필더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조이 바튼이 지난 시즌 최종전이었던 맨체스터 시티전 경기 도중 카를로스 테베스를 팔꿈치로 가격하면서 퇴장 당했던 일이 있었습니다. 그 이후에는 세르히오 아궤로의 허벅지를 차면서 12경기 출전 정지 징계와 동시에 주장직이 박탈됐습니다. 바튼의 시즌 초반 공백을 박지성이 대체할 수 있죠. 만약 박지성이 중앙 미드필더로 자리잡으면 QPR은 잦은 물의를 일으켰던 바튼을 활용하지 않아도 됩니다. 또는 박지성의 왼쪽 윙어 출전도 가능합니다. 지금까지 중앙보다는 측면에 있을 때 최상의 경기력을 과시했으니까요. 특유의 활발한 움직임을 과시하는데 있어서 측면이 중앙보다 더 유리합니다.

박지성은 맨유에서 7시즌 뛰었습니다. 7시즌 동안 프리미어리그 133경기 출전했으며 시즌 평균 19경기에 나섰습니다. 프리미어리그가 38경기임을 고려하면 그 중에 절반만 경기에 나섰던 셈입니다. 7시즌 중에 5시즌은 20경기 이상 뛰지 못했습니다. 각종 대회를 병행하는 맨유 특성상 UEFA 챔피언스리그를 비롯한 여러 대회에 참여하면서 프리미어리그 출전 횟수가 많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QPR에서는 프리미어리그 출전이 늘어나겠죠.

축구팬 입장에서는 박지성이 프리미어리그를 활발히 질주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박지성이 부진하지 않는 이상, 앞으로 경기 시작 한 시간전에 QPR 선발 명단을 굳이 확인하지는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이제는 마음 놓고 박지성 경기를 볼 수 있습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이자 세 번의 월드컵에서 국민들에게 기쁨을 선사했던 한국 축구의 영웅이 프리미어리그를 휘젓는 모습을 더 보게 됐습니다. 세월의 무게에 의해 그라운드를 떠난 2002년 월드컵 영웅들이 늘어나는 현실이지만 여전히 박지성 경기를 시청하는 것은 행운입니다. 그것도 유럽 축구에서 말입니다.

박지성은 QPR에서 새로운 도전에 나섰습니다. 맨유에서 '조연', '이름없는 영웅', '살림꾼' 이미지가 강했다면 QPR에서는 지속적인 프리미어리그 출전을 통해서 팀의 핵심 선수로 자리잡을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맨유 시절과는 다른 차원의 존재감을 과시하며 프리미어리그를 빛낼 것으로 기대됩니다. 축구팬 입장에서는 맨유를 떠난 것이 아쉽지만 그런 마음은 박지성의 앞날 활약상을 통해서 해소되리라 생각합니다. 자신의 축구 인생에서 새로운 막을 열게 된 박지성을 응원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