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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구자철에게서 PSV 박지성 향기가 난다

 

'산소탱크' 박지성의 시즌 후반기 7경기 연속 결장, 그리고 맨체스터 시티전 부진을 통해서 간절히 느낀 부분이 있었습니다. 박지성에 이어 오랫동안 유럽 축구를 빛낼 태극 전사의 새로운 존재감이 필요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동안 박지성 활약상에 열광하면서 삶의 기운을 얻었지만 이제는 그의 나이가 31세 입니다. 과거의 잦은 무릎 부상을 감안하면 현역 선수로서 얼마나 오랫동안 왕성한 몸놀림을 과시할지 미지수입니다. 1년 4개월전에는 대표팀 은퇴를 발표했었죠.

[사진=구자철 (C) 아우크스부르크 공식 홈페이지 프로필 사진(fcaugsburg.de)]

불과 작년 여름까지는 이청용이 박지성의 뒤를 이어 유럽 무대에서 가장 두각을 떨칠 한국인 선수로 꼽혔습니다. 하지만 프리시즌 평가전 도중에 상대팀 선수에게 오른쪽 정강이 이중 골절 부상을 당하는 불운을 겪었습니다. 최근 리저브 매치에서 복귀했지만 10개월 부상 공백을 이겨낼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합니다. 앞으로가 더욱 걱정되는 것은 볼턴이 강등 위기에 빠졌다는 점입니다. 올해 여름에 다른 프리미어리그 클럽으로 떠날지라도 실전 감각이 충분하지 못한 상태에서 팀에 적응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볼턴 강등이 위험한 이유입니다.

유럽에서 맹활약 펼치는 한국인 선수들이 많으면 더 없이 좋습니다. 하지만 다수의 한국인 선수들은 병역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박주영의 경우 유럽리그가 한창 진행중인 상태에서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 출전했고, 두달 전에는 자신의 병역이 10년간 연기 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엄청난 논란을 일으켰죠. 기성용-손흥민-지동원-석현준은 올해 여름 런던 올림픽에서 최소 동메달 이상의 성적을 거두지 못하면 20대 후반에 국내로 돌아와 군 입대를 해야 합니다. 그 이후의 올림픽-아시안게임에 차출되지 않는 전제에서 말입니다.(손흥민-석현준은 홍명보호 발탁 여부가 불투명하지만) 앞으로 또 다른 젊은 선수의 유럽 진출이 있겠지만 병역이 해결되지 않으면 유럽에서 롱런하기 어렵습니다.

일단 이청용을 논외하면, 현재로서는 구자철이 박지성의 뒤를 이어 앞으로 10년 동안 유럽에서 한국 축구의 우수성을 떨칠 가치가 높다고 판단됩니다. 국가 유공자 자녀 혜택으로 6개월 공익근무 판정을 받았습니다. 다른 젊은 선수들에 비해서 병역의 압박이 크지 않은 이점이 있습니다. 유럽 축구 시즌이 끝나는 5월, 그리고 6월 A매치 데이를 끝내고 공익 근무를 하면 됩니다. 이듬해 1월 즈음에 소속팀 복귀가 가능하죠.

구자철은 흔히 언론에서 말하는 '박지성 후계자'와는 거리감이 있습니다. 서로의 포지션과 플레이 스타일에 차이점이 두드러집니다. 하지만 아우크스부르크 임대 이후 5골 넣으며 팀의 에이스로 자리잡았던 활약상을 놓고 보면 PSV 에인트호벤 시절의 박지성 향기가 납니다. 그 당시의 박지성은 에인트호벤 한동안 무릎 부상 및 유럽 적응에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입단 초기에는 아르연 로번(바이에른 뮌헨) 데니스 롬메달(올림피아코스) 같은 쟁쟁한 포지션 경쟁자들이 있었습니다. 경기력 부진으로 홈팬들에게 야유를 받았던 시절도 있었죠. 이를 극복하고 팀의 중심 선수로 자리잡은 끝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입단의 결실을 이루었지만 그 시련을 견디지 못했다면 지금의 박지성은 없었습니다.

불과 4개월전까지의 구자철도 원소속팀 볼프스부르크에서의 행보가 좋지 않았습니다. 그 팀에서 보냈던 1년 중에서 백업 멤버로 보냈던 시절이 많았죠. 2011년 4/4분기 무렵에 선발 출전 기회가 늘어났지만 지금의 아우크스부르크에서 보여준 활약상과 달리 경기력이 위축되는 불안감을 지우지 못했습니다. 정확히는 펠릭스 마가트 감독이 자신을 제대로 활용할 줄 몰랐습니다. 지금까지 중앙 미드필더로 성장했던 구자철과 어울리지 않았던 좌우 윙어와 공격수까지 맡겼죠. 실전 감각이 부족했던 구자철에게 새로운 포지션은 낯설었습니다. 그렇다고 구자철 경기력이 나빴던 편은 아니지만 오히려 아우크스부르크에서 분데스리가 진출 이후 최고의 활약상을 발휘했습니다.

구자철은 5일 함부르크전 결승골을 끝으로 올 시즌을 마감했습니다. 시즌 5호골을 넣으면서 아우크스부르크 임대의 완벽한 유종의 미를 거두었습니다. 굳이 과장을 하지 않아도 올 시즌 유럽리그에서 임대된 선수 중에서 화려한 경기력을 과시했던 몇 손가락으로 꼽을만 합니다. 독일 분데스리가가 유럽 3대리그임을 감안할 필요가 있죠. 아우크스부르크 임대를 통해 유럽 무대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자신에게 충분한 실전 투입이 주어지면 틀림없이 자기 몫을 다하면서 팀 승리를 이끌 수 있음을 알렸습니다. 박지성도 과거 PSV 에인트호벤 시절 홈팬들에게 야유를 받았지만 지속적인 원정 경기 출전으로 기운을 되찾았던 전례가 있었습니다.

현실적으로 구자철의 아우크스부르크 재임대 또는 이적은 어렵습니다. 아우크스부르크 재정이 여의치 않죠. 하지만 볼프스부르크에 복귀하면 이전과 다른 행보를 나타낼지 모릅니다. 얼마전 아우크스부르크 소속으로서 볼프스부르크전에 뛰었을 때 상대팀 선수들의 집중 견제를 받았죠. 마가트 감독이 자신의 임대 활약상을 인지했다는 뜻입니다. 어쩌면 마가트 감독의 다음 시즌 계획에는 구자철이 있을지 모릅니다. 붙박이 주전인지 아니면 로테이션 멤버인지 알 수 없지만요.

그럼에도 구자철이 아우크스부르크에 임대되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유럽 무대에서의 경쟁력을 높이기 어려웠을 겁니다. 볼프스부르크에 잔류해도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보여주기가 쉽지 않았을 겁니다. 이제는 다음 시즌이 중요합니다. 앞으로 어느 팀에서 뛰게 될지 모르겠지만 소속팀의 중심 선수로 자리잡아야 할 기대치를 충족시킬지 주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