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2시즌 잉글리시 FA컵 결승 대진은 첼시-리버풀로 결정됐습니다. 첼시는 2009/10시즌 이후 두 시즌 만에 FA컵 우승을 되찾겠다는 각오이며 리버풀은 올 시즌 칼링컵 제패에 이어 FA컵 챔피언까지 벼르고 있습니다. 두 팀 모두 프리미어리그에서는 4위권 바깥으로 밀렸지만 FA컵에서 만큼은 강팀의 자존심을 져버리지 않았습니다. 오는 6일 새벽 1시 15분 웸블리에서 펼쳐질 두 팀의 FA컵 결승전이 벌써부터 흥미롭습니다.
[사진=로베르토 디 마테오 첼시 감독 대행 (C) 첼시 공식 홈페이지 프로필 사진(chelseafc.com)]
첼시-리버풀 경기에서 주목할 세 명을 꼽으라면 이렇습니다. 첫번째 인물은 페르난도 토레스 입니다. 토레스는 친정팀 리버풀의 간판 공격수였지만 2011년 1월 이적시장 마감 당일 첼시로 이적하면서 화제를 모았습니다. 프리미어리그 역대 최고의 이적료(5000만 파운드, 약 913억원)를 경신했지만 지금까지의 활약상은 몸값을 충족시키지 못했다는 평가입니다. 그나마 최근에는 FC 바르셀로나 원정 동점골, 퀸즈 파크 레인저스전 해트트릭으로 명예회복 중이지만요. 그 기세가 FA컵 결승 리버풀전에서 친정팀 비수를 꽂으면 '토레스 더비'의 스토리가 확장 될 것입니다.
두번째 인물은 케니 달글리시 리버풀 감독입니다. 리버풀의 칼링컵 우승을 이끌고도 프리미어리그 8위로 부진하면서 경질설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지난해 1월과 여름 이적시장에서 선수 영입에 많은 돈을 지출하고도 효과가 미진하자 달글리시 감독을 향한 불신론이 제기되는 현실입니다. 만약 FA컵 우승마저 실패하면 감독직을 위협받을 것으로 보입니다. 리버풀이 최근 3시즌 연속 빅4에서 탈락했고 이제는 중위권으로 내려가면서 시즌 종료 후 특단의 변화가 필요합니다. 어쩌면 FA컵 우승이 면죄부가 될 지 모르겠지만요. 토레스, 달글리시 감독은 이번 경기를 통해 누구나 쉽게 떠올릴 인물들이죠.
개인적으로는 세번째 인물을 주목하고 싶습니다. '소년명수' 로베르토 디 마테오 첼시 감독 대행입니다. 달글리시 감독에게 FA컵 결승전이 중요하지만 디 마테오 감독 대행도 FA컵 우승이 필요합니다. 첼시의 정식 감독으로 부임하기 위한 명분을 위해서 말입니다. 지금까지의 성과는 좋았습니다. 챔피언스리그 16강 1차전 나폴리 원정에서 1-3으로 졌던 팀의 지휘봉을 잡으면서 나폴리-벤피카-바르셀로나를 꺾고 결승행을 이끌었습니다. 비록 첼시는 프리미어리그 4위권 진입이 힘들어졌지만 챔피언스리그 결승 진출은 놀라운 성과입니다. 디팬딩 챔피언 바르셀로나를 꺾은 것도 마찬가지죠.
아직까지는 디 마테오 감독 대행의 첼시 정식 감독 부임을 낙관하기 어렵습니다. 2007/08시즌 첼시 역사상 최초로 챔피언스리그 결승 진출을 이끈 아브람 그랜트 전 감독은 팀이 우승에 실패하자 경질 당했습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결승전에서 승부차기 접전을 펼쳤음에도 단지 우승을 이루지 못했다는 이유로 팀을 떠난 불운을 겪었습니다. 로만 아브라모비치 구단주가 첼시의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바라면서, 지금까지 잦은 감독 교체를 단행한 사례는 익히 알려졌습니다. 그랜트 전 감독을 놓고 보면 디 마테오 감독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챔피언스리그 우승입니다.
하지만 실패할 경우를 대비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첼시의 챔피언스리그 우승 전망이 불리합니다. 결승전 장소는 바이에른 뮌헨의 홈구장 푸스발 아레나 뮌헨이며, 바이에른 뮌헨은 올 시즌 챔피언스리그 6번의 홈 경기에서 모두 이겼습니다. 두 팀 모두 일부 선수들이 징계로 못나오는 공통점이 있지만 홈 경기 특수성을 무시하기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우승의 기적을 이루면 디 마테오 감독 대행이 다음 시즌에도 지휘봉을 잡을 것이 분명하지만, 실패를 대비한 일종의 '보험'같은 존재가 필요합니다. 바로 FA컵 우승입니다.
디 마테오 감독 대행이 유럽 제패에 실패해도 FA컵 우승 트로피를 거머쥐면 아브라모비치 구단주로부터 쉽게 경질 될 것 같지 않다는 주관적인 생각이 듭니다. 아브라모비치 구단주가 FA컵 우승을 어떻게 여기는지는 누구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어느 대회에서 만큼은 첼시를 No.1으로 도약시켰다는 명분을 얻게 되죠. 달글리시 감독은 리버풀의 칼링컵 우승을 이끌고도 경질 위기에 몰렸지만, 디 마테오 감독 대행은 지금까지 챔피언스리그에서의 성과가 좋았다는 점에서 달글리시 감독과 다른 처지입니다.
현재까지는 디 마테오 감독 대행이 팀을 잘 바꿨습니다. 감독 교체 이전의 첼시는 지나치게 수비 라인을 올리면서 후방이 불안했고, 4-3-3 및 측면 공격에 집착하는 단점이 있었습니다. 가장 큰 결점은 일부 노장 선수와의 불화로 팀의 응집력이 떨어졌습니다. 프리미어리그에서의 성적까지 좋지 못했죠.
반면 디 마테오 감독 대행은 챔피언스리그에서 선 수비-후 역습 전술을 완성시켰고 팀의 짜임새가 좋아졌습니다. 노장 선수들의 비중을 높이면서도 로테이션 시스템을 강화하며 백업 선수들에게 동기부여를 제공했습니다. 다소 이기적인 역량이 강했던 다니엘 스터리지를 벤치로 내린 결단도 좋았습니다. 그 자리에 하미레스를 활용하면서 팀 플레이를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줬죠.
디 마테오 감독 대행에게도 약점은 있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첼시의 감독 대행으로서 보여줬던 지도력을 놓고 보면 정식 감독으로 부임할 자격을 갖췄습니다. 이제는 그에 걸맞는 결과물이 필요한 시점이지만 프리미어리그 4위-챔피언스리그 우승 전망이 낙관적이지 않다는 점에서 FA컵 우승을 노려야 합니다. 첼시가 잦은 감독 교체라는 불명예에서 벗어나려면 아브라모비치 구단주의 믿음도 중요하지만, 그 이전에는 디 마테오 감독 대행에게 성과가 전제되어야 합니다. 그 시작이 바로 FA컵 결승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