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2시즌 유럽 축구의 키워드는 '스페인 대세론'입니다. 레알 마드리드-FC 바르셀로나가 UEFA 챔피언스리그 4강에 진출했고, 발렌시아-빌바오-아틀레티코 마드리드가 유로파리그 4강에 올랐습니다. 스페인 클럽의 우승 여부를 떠나서 유럽 대항전 두 대회에서 4강에 진출한 팀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챔피언스리그 4강만큼은 스페인 대세론이 꺾였습니다. 스페인을 대표하는 두 명문팀들의 결승 진출이 좌절됐습니다. 바르셀로나가 첼시에게 1무1패를 허용했다면 레알 마드리드는 바이에른 뮌헨과의 2차전 승부차기 접전끝에 탈락했습니다.
[사진=레알 마드리드는 바이에른 뮌헨과의 4강 2차전에서 2-1로 이기면서 통합 스코어 3-3을 기록했습니다. 하지만 승부차기 끝에 1-3으로 탈락했습니다. (C) 레알 마드리드 공식 홈페이지(realmadrid.com)]
어느 팀이든 챔피언스리그 탈락은 아쉬운 결과입니다. 그런데 레알 마드리드 만큼은 매우 뼈아픕니다. 모처럼 챔피언스리그에서 라이벌 바르셀로나를 넘어설 업적을 이룰 기회를 얻었지만 현실은 동반 4강 탈락입니다. 다른 관점에서는 레알 마드리드의 4강 진출이 나쁘지 않습니다. 2009/10시즌까지 6시즌 연속 챔피언스리그 16강에서 탈락했지만 조세 무리뉴 감독 체제였던 2010/11, 2011/12시즌에는 4강에 올랐습니다. 이전 몇시즌과 비교하면 챔피언스리그에서의 성적이 향상됐습니다. 그러나 바르셀로나는 지난 8시즌 중에서 3시즌 우승했습니다. 레알 마드리드의 결승 진출 실패는 바르셀로나에게 위안거리 입니다.
레알 마드리드의 올 시즌은 어느 때보다 화려했습니다. 지금까지 프리메라리가에서 28승4무2패(승점 88)를 기록하며 2위 바르셀로나를 승점 7점 차이로 제치고 우승이 유력합니다. 34경기 동안 무려 109골 퍼부으며 바르셀로나보다 12골 더 많았습니다. 지난 주말에는 바르셀로나 원정에서 2-1로 이기면서 4년 4개월 만에 캄프 누에서 승리하는 기쁨을 누렸습니다. 무엇보다 바르셀로나의 프리메라리가 4연패 도전을 저지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챔피언스리그에서는 4강에 오르기까지 대진운이 좋았습니다. 32강 조별본선에서는 리옹, 아약스, 디나모 자그레브와 각각 2경기씩 치르면서 6전 전승을 올렸습니다. 리옹 징크스는 지난 시즌에 극복했었죠. 16강과 8강에서는 각각 CSKA 모스크바(통합 스코어 : 5-2) 아포엘(통합 스코어 : 8-2)과 상대했습니다. 두 팀 모두 챔피언스리그 토너먼트에서는 경쟁력이 떨어지는 팀들이죠. 특히 아포엘과의 8강 1차전 원정에서는 단 1개의 슈팅도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바르셀로나-바이에른 뮌헨-첼시에 비해서 수월하게 4강 고지에 올랐습니다.
하지만 바이에른 뮌헨의 벽을 넘는데 실패했습니다. 4강 1차전 원정에서 1-2로 패한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상대팀은 푸스발 아레나 뮌헨에 강한 체질이니까요.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서 열린 2차전 전반전에서는 2-1로 앞서면서 통합 스코어 3-3으로 균형을 맞췄습니다. 문제는 후반전, 연장전 경기 내용이 좋지 못했습니다. 박스 안쪽을 활용한 연계 플레이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하면서 상대팀 압박을 뚫는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무리뉴 감독이 믿었던 카카 교체 투입 효과까지 미미했습니다. 수비쪽에서 로번-리베리를 잘 막았다는 점에서 후반전에 1골이 필요했습니다.
레알 마드리드는 올 시즌 챔피언스리그-프리메라리가에서 강자의 위용을 과시하며 2001/02시즌 이후 10년 만에 유럽 제패를 달성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습니다. 지난 몇 시즌과 비교하면 좋은 성적이지만 그동안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위해 선수 영입에 천문학적인 자금을 투자했다는 점에서 아쉬운 대목입니다. 2010년 여름에는 무리뉴 감독까지 영입했었죠. 그 성과가 올 시즌에 결실을 맺을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러나 바이에른 뮌헨의 저력을 실감했습니다.
또한 올 시즌에는 바르셀로나의 챔피언스리그 우승이 쉽지 않았습니다. 챔피언스리그는 1992년 개편 이후 지금까지 2연패 클럽이 없었습니다. 천하의 바르셀로나도 그 징크스를 깨지 못했습니다. 레알 마드리드가 우승할 수 있는 기회였죠.
레알 마드리드는 다음 시즌을 걱정해야 합니다. 무리뉴 감독 거취가 중요하게 됐습니다. 최근에는 시들했지만 무리뉴 감독의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복귀설은 현지 언론에서 줄곧 제기된 루머였습니다. 차기 행선지로 유력한 팀은 첼시였죠. 첼시가 챔피언스리그 결승에 진출하면서 무리뉴 감독의 친정팀 복귀 가능성을 섣부르게 판단할 수 없지만, 레알 마드리드를 떠날 가능성이 조금이나마 커졌습니다. 챔피언스리그 우승 실패를 이유로 말입니다. 파비오 카펠로 전 감독이 2006/07시즌 프리메라리가에서 우승하고도 수비 지향적인 축구를 한다는 이유로 경질된 것 처럼, 프리메라리가 우승은 레알 마드리드 잔류를 보장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레알 마드리드는 무리뉴 감독과 다음 시즌에도 함께해야 합니다. 무리뉴 감독을 영입하기 전까지는 챔피언스리그에서 6시즌 연속 16강에 머물렀습니다. 과거의 아쉬움을 생각하면 무리뉴 감독을 더 믿어야 합니다. 아무리 무리뉴 감독이 두 번의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루었지만 유럽 제패는 쉬운 것이 아닙니다. 레알 마드리드가 올 시즌 화려한 행보를 과시하기까지 무리뉴 감독의 공이 컸습니다. 또 하나의 불편한 사실은, 무리뉴 감독이 떠난 팀들의 공통점(첼시, 인터 밀란)은 성적 부진으로 감독 교체가 잦았다는 점이죠.
무리뉴 감독이 잔류해도 한 가지 풀리기 힘든 숙제가 있습니다. 사비 알론소가 내년이면 33세입니다. 알론소를 장기적으로 대체할 수비형 미드필더가 필요하지만 지금까지는 그 적임자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외질이 그동안 큰 경기에서 기복을 타는 경우가 빈번했고 카카가 AC밀란 시절의 포스를 되찾지 못했다는 점에서(올 시즌에는 부활 조짐을 보였지만) 미드필더 개편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만약 그 성과가 좋지 못하면 내년 시즌 우승 전망이 어둡겠죠. 무리뉴 감독은 백업 미드필더들에게 동기 부여를 제공하며 실전에서의 분발을 이끌어내야 합니다. 선수 영입 가능성도 있겠죠.
레알 마드리드는 유럽 챔피언이 되지 못했지만 올 시즌은 성공했습니다. 프리메라리가에서 우승 확정을 남겨두고 있죠. 하지만 바이에른 뮌헨전 승부차기 1-3 패배는 한동안 악몽이 클지 모릅니다. 그동안 페널티킥 골을 잘 넣었던 1번 키커 호날두가 실축했고 2번 키커 카카까지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4번 키커였던 세르히오 라모스 슈팅은 볼을 너무 뜨고 말았습니다. 90분 경기 끝에 패한 것이라면 모르겠지만, '러시안 룰렛'으로 불리는 승부차기 패배는 진팀에게 잔혹한 추억으로 남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