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는 올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32강 6차전 FC 바젤전 패배로 16강 진출에 실패했습니다. 유로파리그 16강 2차전 빌바오전에서도 패하면서 8강행이 좌절됐죠. 두 경기의 공통점은 박지성이 측면이 아닌 중앙에서 활약했습니다. 바젤전에서는 4-2-3-1 공격형 미드필더, 빌바오전에서는 4-3-3 왼쪽 공격형 미드필더로 선발 출전했습니다. 올 시즌 몇차례 선보였던 4-4-2 중앙 미드필더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가운데 공간을 기반으로 경기에 임했습니다.
[사진=박지성 (C) 유럽축구연맹 공식 홈페이지 프로필 사진(uefa.com)]
그렇다고 맨유가 박지성 존재감 때문에 유럽 대항전 두 대회에서 안좋은 성적표를 받았다고 볼 수 없습니다. 박지성은 바젤전, 빌바오전에서 팀 패배 속에서도 묵묵히 잘 뛰었습니다. 문제는 팀의 전체적인 경기력이 좋지 않았습니다. 네마냐 비디치 장기 부상에 따른 수비 불안이 유럽 대항전에서 나쁜 흐름으로 이어졌습니다. 중원에서 상대 수비의 허를 찌르는 패스를 활기차게 연결하며 팀의 화력을 키워줄 플레이메이커의 존재감이 묻어나지 못했습니다. 바젤전에서는 루니까지 부진했죠. 그 여파가 박지성의 많은 활동량을 요구하게 되었지만 끝내 팀은 패했습니다.
그럼에도 박지성의 빌바오전 전반전 부진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중앙에서 열심히 움직인 것에 비해서 볼 전개에 많이 관여하지 못했습니다. 빌바오 미드필더들의 끈질긴 압박, 상대팀의 빠른 공수 전환이 박지성 전반전 경기력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습니다. 박지성이 맨유 왼쪽과 중앙에서 공격의 실마리를 풀지 못한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박지성보다는 팀이 뒷받침하지 못했습니다. 맨유보다는 빌바오 선수들이 볼을 더 잘 다루었고, 경기 내내 적극적인 수비 가담 및 포어체킹을 펼치면서 열정적으로 움직였고, 특히 허리쪽에서 짜임새가 강했습니다. 아무리 맨유의 네임벨류가 강할지라도 빌바오의 팀 완성도가 더 높았습니다. 박지성이 혼자서 맨유의 어려운 경기 흐름을 뒤집기에는 모든 선수들이 압박에 공을 들였던 빌바오 진영을 뚫기 어려웠습니다.
오히려 박지성은 후반전에 잘했습니다. 수비형 미드필더로 전환하면서 상대 공격을 차단하거나 협력 수비를 통해서 동료 선수를 도와주는데 앞장섰습니다. 직접 상대 공격을 차단하는 장면까지 있었죠. 맨유가 빌바오와의 허리 싸움에서 밀렸음에도 박지성은 자기 역할을 묵묵히 소화했습니다.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릴때까지 혼신의 힘을 다하며 빌바오 선수들과 경합을 펼쳤죠. 맨유 패배로 후반전 경기력이 빛 바랬지만 후반전 경기력 만큼은 중원에서 발휘하는 장점이 어떤지를 파악하기에 충분했습니다. 올 시즌 일부 경기에서 4-4-2 중앙 미드필더로 뛰었던 활약상을 종합하면, 박지성의 성향은 박스 투 박스라고 봐야합니다.
다만, 박지성은 중원보다는 측면에 있을 때 상대 박스 안쪽으로 접근하거나 또는 슈팅을 날릴 기회가 많았습니다. 그동안 윙어로 많이 뛰었기 때문인지 중원에 위치할 때는 좁은 공간에서 상대 수비를 정면으로 따돌리기 어려웠습니다. 측면은 중앙보다 공간이 넓기 때문에 박지성이 공격적인 역량을 키우기 쉬웠지만 중원에서는 다소 제약된 느낌이었죠. 중앙 미드필더로서 포백 보호가 필요하니까요. 지나치게 공격을 의식하면 상대 공격 옵션들에게 뒷 공간을 내주는 빌미로 작용합니다.
박지성의 중앙 미드필더 전환은 오히려 팀 내 입지가 어중간해진 단점이 있습니다. 지난 시즌에 무르익은 공격력을 재현하기에는 올 시즌 포지션 이동이 잦았습니다. 최근에는 스콜스-애슐리 영 복귀로 결장 혹은 후반전 교체 투입이 빈번했죠. 특히 왼쪽 측면에서는 맨유 입장에서 애슐리 영의 떨어진 폼을 회복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줄곧 윙어로 뛰었다면 애슐리 영-나니 같은 공격형 윙어들과 경쟁하면서 화력을 키우는데 집중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중앙 미드필더로 뛸 기회가 많아지면서 자신의 공격력을 마음껏 보여주기에는 지속성이 부족했습니다. 오히려 수비쪽에서의 비중이 늘어났죠.
그런 박지성은 중앙 미드필더로서 활동량과 수비력에서 인정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팀의 경기력이 힘겨워질 때 혼자서 경기 흐름을 뒤바꾸기 어려웠습니다. 선수 개인으로서 열심히 수비에 임했지만 상대팀의 모든 공격을 차단하는 것은 어느 누구도 불가능합니다. 축구는 11명이 힘을 모아야 하는 단체 종목이니까요.
이제는 중원에서 새로운 무기가 필요합니다. 중앙 미드필더에게 다득점을 기대할 수는 없겠지만 좀 더 공격적인 비중을 늘려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긱스-스콜스처럼 창의적인 공격 전개를 기대하는 것은 아닙니다. 볼 터치를 늘리면서 패스 정확도를 키우는데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죠.
지금은 떠났지만 지난해 아시안컵까지 한국 대표팀 에이스로 활동하면서 팀의 경기 완급 조절을 잡아줬던 경험이 필요합니다. 여전히 긱스-스콜스가 현역으로 뛰고 있지만 많은 경기를 누빌 체력은 아닙니다. 중앙 미드필더에서 자신만의 강점을 키우려면 지금에 비해서 장점을 늘려야 할 것입니다. 이미 박스 투 박스로서는 충분히 검증 됐습니다. 이제는 맨유 중원에서 믿음직한 존재로 거듭나기 위해 경기력이 긍정적 방향으로 달라져야 합니다.
박지성의 주 포지션은 왼쪽 윙어입니다. 여전히 중앙보다는 측면에 있을 때 경기력이 가장 좋습니다. 골 넣을 기회가 더 많이 주어지게되죠. 하지만 올 시즌부터는 중앙 미드필더로서의 출전 기회가 늘었습니다. 앞으로도 중원에서 뛸 기회가 많아질 겁니다. 그 변화에 부응하기 위해서 자신만의 클래스를 키울 필요가 있습니다. 박지성의 중앙 미드필더 변신은 이제 완성형으로 거듭나는 과정을 주목해야 할 것 같습니다. 맨유 롱런을 위한 중요한 분수령이 될 지 모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