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2011/12시즌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최고의 선수를 꼽으라면 로빈 판 페르시 입니다. 리그 28경기에서 26골 넣는 괴력의 득점력으로 아스널 최전방을 빛냈습니다. 아스널이 시즌 내내 힘든 경기력을 거듭했음에도 4위를 기록중인 절대적 원동력은 판 페르시의 화력입니다. 만약 판 페르시가 많은 골을 넣지 못했다면 중상위권으로 밀렸을지 모릅니다. 한편으로는 아스널 공격이 판 페르시에 의존한다는 문제점이 있지만, 그만큼 네덜란드 출신 공격수가 팀에서 차지하는 영향력이 큽니다.
[사진=웨인 루니 (C) 맨유 공식 홈페이지 프로필 사진(manutd.com)]
판 페르시에 이어 득점 2위를 기록중인 선수는 웨인 루니 입니다. 24경기에서 20골 기록하며 맨유 공격을 책임졌습니다. 웰백-에르난데스 같은 젊은 영건 공격수들이 아직 기복이 심하고, 지난 시즌 리그 득점왕 디마타르 베르바토프의 팀 내 입지가 약화된 상황에서 루니의 리그 20골은 의미있는 성과입니다. 맨유가 맨시티를 제치고 리그 1위로 올라서기까지 루니가 절대적으로 공헌한 것은 분명합니다.
루니 20골이 놀라운 이유는 맨유의 오름세와 맥락을 같이합니다. 루니는 각종 대회를 포함한 최근 7경기에서 10골 넣었습니다. 지난달 16일 유로파리그 32강 1차전 아약스 원정을 제외한 나머지 경기에서 상대 골망을 흔들었습니다. 최근에는 4경기 연속 골맛을 봤죠. 프리미어리그에서는 지난 2월 5일 첼시전부터 3월 11일 웨스트 브로미치전까지 4경기 연속 골을 터뜨렸습니다. 첼시전 2골, 리버풀전 2골, 토트넘전 1골, 웨스트 브로미치전 2골을 넣으며 강팀과 약팀을 가리지 않고 골을 생산했습니다. 첼시-리버풀-토트넘은 빅6에 포함되는 팀들이며 웨스트 브로미치전은 맨유가 1위로 올라섰던 경기였습니다. 영양가 높은 루니의 득점력이 맨유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렇다고 맨유 경기력이 완벽한 것은 아닙니다. 빌바오와의 유로파리그 16강 1~2차전에서 모두 패했죠. 맨유가 2경기에서 기록한 3골은 모두 루니의 득점입니다. 팀의 탈락 속에서도 루니가 자기 역량을 충분히 발휘했다는 뜻입니다. 아스널이 판 페르시 효과에 힘입어 4위 진입에 성공했듯, 맨유는 루니 득점력이 좋아지면서 맨시티를 리그 2위로 따돌리는데 성공했습니다. 유로파리그 16강에서는 루니가 없었다면 강팀의 자존심이 처참하게 무너졌을지 모를 일이죠.
다만, 루니 20골은 판 페르시에 비해서 과소평가 되는 느낌입니다. 당연한 흐름입니다. 판 페르시가 루니보다 더 많은 골을 넣었으니까요. 1등이 2등보다 주목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루니는 아스널 4-2-3-1의 원톱으로 뛰는 판 페르시와 달리, 주로 4-4-2를 활용하는 맨유의 쉐도우로서 많은 골을 터뜨렸습니다. 특유의 넓은 활동 폭과 저돌적인 움직임으로 상대 수비 라인을 파괴하는데 앞장서면서, 1선과 2선 사이에서 연계 플레이에 충실했고, 때로는 골까지 넣는 만능 활약을 펼쳤습니다. 전형적인 최전방 공격수에 비해서 이타적인 비중이 많지만 오히려 팀 내에서 많은 골을 터뜨렸습니다.
루니는 이미 지난 시즌 11골을 넘었습니다. 그때는 시즌 초반 부진으로 어려움에 빠졌던 시절이죠. 어느 선수든 잘 될 때가 있고 안 될 때도 있지만 시즌 중반에 접어들면서 평소 페이스를 되찾은 끝에 두자릿수 득점을 올렸습니다. 오히려 11골보다는 11도움이 더 값진 기록입니다. 동료 선수의 골을 많이 도왔다는 뜻이죠. 베르바토프가 리그 득점 1위를 기록했고 에르난데스라는 맨유의 새로운 신성이 등장했던 시절이라 루니가 골에 많은 욕심을 부릴 필요가 없었다고 판단됩니다. 쉐도우 역할에 충실하면 되니까요.
올 시즌에는 지난 시즌보다 골이 늘었습니다. 웰백-에르난데스-베르바토프가 꾸준함에서 믿음을 얻지 못할 때 루니가 골잡이 기질을 발휘했습니다. 팀내 공격 옵션들과 차별적인 활약을 펼치면서 자신의 영향력을 키웠습니다. 2009/10시즌에는 리그 32경기에서 26골 기록하며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레알 마드리드로 떠난 공백을 메웠습니다. 그때는 지금처럼 쉐도우가 아닌 타겟맨을 소화하면서 슈팅 기회가 많이 찾아왔습니다. 올 시즌에는 이미 20골 고지를 밟으면서 자신의 생애 최다골인 리그 26골을 넘어설 가능성을 마련했습니다.
그렇다고 루니가 모든 경기에서 쉐도우로 나섰던 것은 아닙니다. 빌바오와의 유로파리그 16강 2차전에서는 4-3-3 중앙 공격수로 활약했습니다. 이타적인 기질을 놓고 보면 윙 포워드 출전이 가능했겠지만(실제로는 측면에서 뛰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팀의 중앙 공격에서 빼놓을 수 없는 믿을맨임을 상징합니다. 특별한 변수가 없으면 지금의 팀내 영향력이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올 시즌 프리미어리그는 판 페르시의 위세가 대단하지만 루니도 충분히 칭찬할 수 있습니다. 현재까지 프리미어리그 득점왕은 판 페르시가 유력하겠지만 루니의 20골 화력도 놀랍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