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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3위 토트넘, '죽음의 일정' 견디지 못했다

 

지난 26일에 진행된 북런던 더비는 토트넘이 전반 34분까지 2-0으로 앞서면서 아스널전 승리를 굳히는 듯 싶었습니다. 그런데 아스널에게 내리 5골을 허용하면서 2-5로 대패했습니다. 만약 아스널을 이겼다면 프리미어리그 3위 굳히기에 탄력을 받았겠죠. '적장' 아르센 벵거 감독의 경질론이 거세게 불거졌을지 모릅니다. 4위 아스널에게 대량 실점 패배를 당하고도 승점 차이가 7점이지만, 아스널전 경기력을 놓고 보면 3위 수성은 아직 안심할 상황이 아닙니다.

[사진=아스널전 2-5 패배를 발표한 토트넘 공식 홈페이지 (C) tottenhamhotspur.com]

북런더 더비에서 드러난 토트넘의 문제점은 수비가 약했습니다. 카일 워커를 제외한 수비수들이 부진했죠. 워커도 경기 흐름상으로는 결코 잘했다고 볼 수 없습니다. 특히 베누아 아수-에코토는 시오 월컷 봉쇄에 실패한 것이 대량 실점의 빌미가 됐습니다. 좌우 윙어를 맡았던 베일-크란차르가 동료 선수와 끈질기게 협력 수비를 했다면 더 좋았다는 생각입니다. '살림꾼' 스콧 파커는 후반 막판에 경고 누적으로 퇴장 당했죠.

또한 2-0 이후에는 경기 집중력이 흐트러 졌습니다. 아무리 2골 차이로 앞섰지만 라이벌전은 전형적으로 어떤 결과가 벌어질지 예측불허 입니다. 엠마뉘엘 아데바요르가 페널티킥 골을 넣기까지는 아스널 특유의 패스 축구와 높은 점유율에 밀리면서 경기 주도권을 내줬습니다. 2-0 이후 수비 전열을 가다듬으며 아스널을 강하게 압박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2골 내주고 5골 퍼부은 아스널의 투지는 대단했지만, 사실 토트넘이 충분히 이길 수 있었던 경기였습니다.

토트넘의 다음 상대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 3월 5일)입니다. 파커가 없는 상황에서 강팀과 싸우게 됩니다. 산드루-크란차르를 대체자로 활용할 수 있지만 아스널전 부진이 걸림돌입니다. 최근 맨유가 폴 스콜스 복귀 효과로 재미를 보고 있음을 상기하면 중원 싸움에서 밀릴지 모릅니다. 더욱이 토트넘은 지난 몇 시즌 동안 맨유전 승리 경험이 없는 징크스가 있습니다.

맨유전 전망이 어려운 또 다른 이유는 최근 리그 경기를 소화하면서 '죽음의 일정'을 견디지 못했습니다. 토트넘은 지난 1월말 이후부터 빅6와의 경기 일정이 몰렸습니다. 1월 22일 맨체스터 시티에게 2-3으로 패했고, 2월 6일 리버풀과 0-0으로 비겼으며, 이번에 아스널에게 2-5로 대패했습니다. 그 사이에 위건(3-1 승, 1월 31일) 뉴캐슬(5-0 승, 2월 11일) 같은 약체 혹은 중위권팀에게 승리했지만 강팀에게 재미를 못봤습니다. 지금까지의 흐름을 놓고 보면 맨유전 승리를 기대하기 어렵죠. 3월 24일에는 첼시 원정을 떠납니다.

시즌 중반까지는 '토트넘 3위 돌풍은 우연이 아니냐?'는 회의론이 어느 정도 설득력을 얻었습니다. 시즌 전까지 빅4 탈락이 가장 유력했던 빅6팀은 토트넘 이었습니다. 과연 3위 레벨에 맞는 팀인지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시각도 있었죠. 프로야구에서 흔히 말하는 DTD를 운운하는 일부 축구팬들도 있었습니다.

끝내 토트넘은 죽음의 일정을 극복하는데 실패했습니다. 빅6 3경기에서 1무2패로 부진했죠. 물론 지금까지 3위를 지켰던 것은 아스널-첼시 같은 4~5위 팀들의 경기력이 최근 안좋았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지난 주말 경기 논외하고 말입니다. 토트넘 3위는 중위권-하위권 경기에서 많은 승점을 획득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결과로 해석 가능합니다.

그럼에도 토트넘 3위는 우연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리그 순위의 기준은 승점 획득이니까요. 토트넘은 아스널-첼시보다 승점 관리에 충실했습니다. 최근 죽음의 일정을 보람차게 보내지 못했지만 시즌 전체적 흐름은 긍정적입니다. 4위권 진입에 실패했던 지난 시즌보다 발전한 것이 분명합니다. 죽음의 일정이 끝난 뒤에는 중위권-하위권과의 경기가 많은 이점이 있습니다. 다음달 8일 FA컵 16강 재경기(스테베나지전)를 치르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유로파리그 조기 탈락으로 주력 선수들의 체력 안배가 원활하죠. 시즌 후반 경기력이 끝없이 나빠지지 않는 전제에서 빅4 진입 가능성이 충분합니다.

그러나 토트넘이 진정한 강팀으로 거듭나려면 빅6 맞대결에 강한 면모를 발휘해야 합니다. 맨체스터 두 팀과 대등한 레벨로 진화해야 빅4 경쟁팀 도전을 뿌리칠 수 있습니다. 지난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8강 진출 돌풍을 일으켰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당시에는 챔피언스리그에 첫 출전했죠. 유럽 대항전 경험이 많다고 볼 수 없습니다. 멀리 내다보면, 공석이 된 잉글랜드 대표팀 사령탑(스튜어트 피어스가 임시 감독이지만)을 꿈꾸는 해리 레드냅 감독 거취가 변수입니다. 아스널에게 2-5로 참패한 토트넘은 아직 갈 길이 멉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