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7일 아스널 공식 홈페이지에서는 대표팀에 차출된 선수들의 목록이 공개됐습니다. 로빈 판 페르시(네덜란드) 테오 월컷(잉글랜드) 토마스 베르마엘렌(벨기에) 같은 팀 내 주력 선수들을 포함해서 U-19, U-21대표팀에 차출된 유망주들도 공개됐습니다. 하지만 같은 날짜 파주 NFC에 도착하여 한국 대표팀에 합류한 박주영의 이름은 아스널 홈페이지에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선수와 동등하게 대표팀에 발탁됐지만 아스널 구단은 박주영의 이름을 누락했습니다.
[사진=박주영 (C) 아스널 공식 홈페이지(arsenal.com)]
어쩌면 아스널 구단 홈페이지 관계자의 단순한 실수일지 모릅니다. 지금까지 박주영의 프리미어리그 출전 경기 시간이 10분 미만이니까요. 냉정히 말해서 9번 선수는 팀 내 존재감이 약했기 때문에 아스널 관계자로부터 대표팀 차출 목록에 빠졌을지 모른다는 추측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고의적인지 아니면 착오가 있었는지 잘 모르겠지만요. 되도록이면 아스널측이 대표팀 차출 목록을 수정하여 박주영 이름을 포함시켰으면 합니다. 물론 그래야겠죠.
하지만 박주영이 누락된 아스널 공식 홈페이지 대표팀 차출 목록은 다수의 국내 축구팬들이 인지했습니다. 아스널 관계자가 추후 내용을 보강할지 모르겠지만, 박주영 명단을 포함시키기에는 타이밍이 늦었습니다.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축구팬들이 꽤 있으니까요. 단순한 해프닝으로 생각하기에는 한국 축구팬들이 민감하게 받아들일 수 밖에 없습니다. 아스널(정확히는 아르센 벵거 감독)이 박주영을 활용할 의지가 보이지 않으니까요. 얼마전에는 아스널이 올해 7월 한국 투어를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많은 축구팬들의 질타를 받았습니다.(한국 투어는 있을 수 없는 일!) 지금도 아스널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축구팬들이 많습니다.
[사진=얼마전 아스널 공식 홈페이지에 언급된 리저브팀 경기 결과. 하지만 박주영 영문명이 정확하게 표기되지 않았습니다. (C) arsenal.com]
프로는 실력으로 말합니다. 박주영은 아스널 레벨이 아니라면 벤치 멤버로 밀리는 것이 맞습니다. 국내 축구팬들도 충분히 수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스널은 시즌 초반부터 박주영을 팀의 주력 선수로 성장 시키겠다는 진정성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시즌 전반기 칼링컵-챔피언스리그 포함 4경기 출전만으로는 부족합니다. 프리미어리그 경기 경험을 익히는 것이 중요했죠. 현실적으로 시즌 초반 리그 성적이 곤두박칠 치면서 판 페르시 득점력에 의존하고 샤막-박주영 비중이 약화되었지만, 백업 선수들의 동기 부여를 위해서라면 박주영에게 조금이라도 출전 시간을 부여했어야 합니다. 팀의 장기적인 안목(시즌 후반 대비 차원에서)을 위해서 말입니다. 유럽 대항전을 병행하는 빅 클럽이라면 백업 선수들 동기 부여를 생각해야 합니다.
한때는 벵거 감독이 "박주영은 1월에 출전한다"고 언급한 적이 있었습니다. 실제로는 1월 23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전 후반 막판 투입에 불과했죠. 그 이후 박주영은 리저브팀에서 경기 감각을 익혔습니다. 지난 주말 토트넘전에서는 18인 엔트리에 포함됐지만 아쉽게도 결장했습니다. 아스널이 왜 박주영을 영입 했는지 그 의도를 짐작하기 어렵습니다. 벵거 감독은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 차출되는 제르비뉴-샤막 공백을 메우겠다는 복안을 밝혔지만, 실제로는 티에리 앙리 2개월 임대를 단행했습니다. 또한 선덜랜드로 임대보낸 니클라스 벤트너의 대체자라고 할지라도, 벤트너는 지난 시즌 프리미어리그 17경기 출전했습니다. 그 중에 14경기가 교체 출전이지만 지금의 박주영에 비해서 중용 빈도가 많았습니다.
박주영의 아스널 입지 악화가 걱정되는 이유는 연령별 대표팀과 연관성이 깊습니다. 국가 대표팀에서는 감독 교체와 맞물려 더 이상 주전 공격수를 장담 못하게 됐습니다. 한국은 지난 주말 우즈베키스탄과의 평가전에서 4-1-4-1, 4-2-3-1 같은 원톱 포메이션을 활용했습니다. 29일 쿠웨이트전에서 원톱을 내세우겠다는 복안입니다. 우즈베키스탄전에서 2골 넣은 이동국 선발 출전이 유력합니다. 최강희호가 박주영-이동국 투톱으로 전환할지라도, 실전 감각이 부족한 박주영이 과연 제 기량을 발휘할지 의문입니다. 장기적 관점에서는 이동국과 더불어 K리그에서 맹활약중인 공격수가 대표팀에 등용될지 모를 일입니다. 전임 감독 체제가 지속되었다면 박주영은 여전히 한국 대표팀 No.1 공격수이자 주장이었겠죠.
이제는 올림픽대표팀 와일드카드 합류 여부까지 장담 못합니다. 지금까지 박주영의 런던 올림픽 합류는 여론 분위기 상으로는 기정 사실이나 다름 없었습니다. 군 문제 해결을 위해서 말입니다. 그러나 시즌 종료까지 아스널 1군에서 이렇다할 출전 기회가 없으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경기 감각에서 젊은 후배 공격수에게 밀릴지 모르니까요. 아무리 기량과 경험이 훌륭한 선수라고 할지라도 감각이 무뎌지면 팀에 많은 보탬을 주기 어렵습니다. 박주영 발탁 여부는 홍명보 감독의 선택이 중요하겠지만, 아스널에서의 입지가 달라지지 않으면 최악의 시나리오까지 걱정해야 합니다. 한 가지 불편한 사실은, 역대 올림픽대표팀이 와일드카드 효과를 제대로 누리지 못했습니다.
저는 불과 몇개월전까지 박주영이 높은 수준의 팀에서 도전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박주영 본인이 챔피언스리그 출전이 가능한 클럽을 원했기 때문입니다. 런던 올림픽 3위 입상에 따른 군 면제 여부가 확실치 않으니까요. 만약 3위 이내에 들지 못하면 군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AS모나코보다 더 좋은 클럽에서 실패해도 선수 본인에게는 축구인으로서 좋은 경험이 되리라 생각했습니다. 명성 높은 유럽 클럽에 도전할 시간적 여유가 부족하니까요. 저도 다른 축구팬들처럼 박주영의 아스널 이적을 환영했습니다. 아시아 선수가 빅 클럽에 입성한 것은 의미가 큽니다.
하지만 박주영이 아스널에서 안좋은 대우를 받을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아무리 벤치 멤버라도 아스널 같은 빅 클럽이라면 로테이션 시스템은 기본입니다. 박주영 나이를 놓고 보면 즉시 전력감 영입에 가까웠죠. 허나 아스널은 9번 선수에게 너무 기회를 안줬습니다. 진작부터 경기에 투입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면 1월 이적시장을 통해 다른 프리미어리그 클럽으로 임대를 추진했어야 합니다. 박주영이 잔류를 원해도 권유는 할 수 있었죠. 아스널 공식 홈페이지 대표팀 차출 누락 때문에 이러한 글을 적는 것은 아닙니다. 벵거 감독과 아스널을 향한 국내 축구팬들의 안좋은 마음이 쌓이고 또 쌓였으니까요.
박주영이 런던 올림픽 병역 혜택을 받았다는 가정을 적용하면, 아스널에서 입지를 회복하는 방법은 벵거 감독의 경질일지 모릅니다.(판 페르시가 부상 당하면 샤막이 있으므로, 판 페르시가 떠나면 새로운 공격수를 영입할지 모름) 만약 아스널이 빅4 진입에 실패하면 벵거 감독 경질이 어느 정도 가능성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감독 교체가 능사는 아닙니다. 새로운 감독이 박주영을 선호할지 알 수 없습니다. 물론 지금의 벵거 체제에서는 입지 향상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런던 올림픽 결과 여부를 떠나서, 박주영은 아스널을 떠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마음속에서는 극적인 반전을 기대하겠지만 현실적인 상황이 너무 암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