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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박지성 시즌 2호골, 드디어 터졌다

 

2011/12시즌 유럽 축구 전반기를 되돌아보면 한국인 선수들의 골 소식이 드물었습니다. 이청용이 지난 여름 프리시즌 도중 정강이 골절 부상을 당하면서 내년 3월경에 복귀할 예정이며, 박주영은 아직까지 프리미어리그 출전 기회를 얻지 못했고, 지동원-손흥민은 팀 내 입지가 축소되었다는 느낌입니다. 그나마 기성용이 스코틀랜드 리그에서 시즌 6호골을 터뜨렸고 차두리-구자철의 출전 시간이 늘어난 것이 희망적입니다. 그리고 '산소탱크'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이하 맨유)이 8월 29일 아스널전 이후 4개월 만에 골을 넣었습니다.

박지성은 27일 오전 0시(이하 한국시간) 위건전에서 1골 1도움 기록했습니다. 전반 8분 파트리스 에브라가 왼쪽에서 찔러준 볼을 박스 중앙에서 오른발 논스톱 슈팅으로 마무리 지었습니다. 맨유 5-0 승리의 선제골이자 결승골 이었습니다. 후반 32분에는 위건 박스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파고들 때 안톨리 알카라스의 무리한 왼발 태클에 걸려 페널티킥을 얻어낸 뒤, 디미타르 베르바토프가 골을 넣으면서 1도움을 추가했습니다. 올 시즌 2골 5도움 올렸던 박지성은 오는 31일 저녁 9시 45분 블랙번전에서 시즌 3호골에 도전합니다.

[사진=박지성 (C) 유럽축구연맹 공식 홈페이지 프로필 사진(uefa.com)]

박지성, 다시 되찾은 득점 본능...맨유 5-0 승리 이끌다

박지성의 위건전 골이 반가운 이유는 4개월 만에 골맛을 봤다는 점입니다. 지난 시즌 8골 기록했지만 올 시즌에는 득점력이 떨어진 것이 사실입니다. 4-4-2 중앙 미드필더로 뛰었던 시간이 많아지면서 골보다는 공격 조율과 포백 보호에 주력했습니다. 4-2-3-1의 공격형 미드필더로 출전했던 경험이 여럿 있지만 4-4-2 중앙 미드필더는 생소함이 없지 않았던 포지션 이었습니다. 그 자리는 무리하게 앞쪽으로 올라가면서 골 기회를 노리기에는 수비 뒷 공간이 뚫리는 불안함이 있습니다. 맨유에 마땅한 홀딩맨이 없는 현실에서는 중앙 미드필더 박지성의 득점력을 기대하기 어려웠습니다.

저는 1~2달전 글을 통해 '굳이 박지성이 긱스를 닮을 필요는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박지성은 긱스 같은 앵커맨이 아닌 공격과 수비에서 부지런히 움직이고 여러 역할을 소화하는 박스 투 박스 입니다. 캐릭-안데르손-클레버리와는 다른 유형의 선수죠. 최근에는 중원 입지에 변화가 나타났습니다. 존스가 박스 투 박스로서 무르익은 폼을 과시하면서 박지성의 콘셉트와 겹치게 됐습니다. 존스도 박지성처럼 전문 중앙 미드필더는 아니지만 어느 포지션에서든 열정적으로 뛰려는 의지가 충만합니다. 패싱력을 가다듬을 필요가 있지만 19세 유망주 답지 않게 맨유의 주력 멤버이자 잉글랜드 대표팀 주전을 꿰찼습니다. 맨유는 리빌딩 차원에서 존스의 출전 시간을 늘려야 했고, 박지성이 중원에 고정되기에는 존스와의 경쟁이 불가피합니다.

박지성의 진가는 중원보다는 왼쪽 측면에서 두드러집니다. 냉정히 말하면 중앙 미드필더는 또 다른 포지션일 뿐입니다. 지금까지 왼쪽 윙어로서 나날이 경기력이 발전하면서 맨유 롱런의 기틀을 마련했고, 여전히 측면 미드필더로서 많은 것을 보여줄 수 있는 선수입니다. 애슐리 영이 3개월째 부진 및 부상으로 어려움에 빠진 시점에서는 박지성이 왼쪽 윙어로서 경쟁력을 회복하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시즌 전반기 중앙에서 뛰었던 시간이 많았기 때문에 왼쪽을 누비는 패턴과는 차원이 다르죠. 위건전에서는 왼쪽 윙어로 출전하면서(정확히는 프리롤) 득점력이 필요했고, 전반 8분만에 골을 터뜨리면서 지난 시즌의 골 감각을 되찾게 됐습니다.

최근에는 나니-발렌시아 조합이 맨유 측면의 대세로 떠올랐습니다. 두 선수는 지금까지 좌우 날개를 맡았을 때 공격력이 반감되는 단점이 있었습니다. 측면에서 오른발로 크로스를 띄우는 패턴이 겹치기 때문이죠. 나니가 지난 시즌 후반기 박지성-발렌시아와의 주전 경쟁에서 밀렸던 이유입니다.(수비력과 맞물려서) 그런데 12월에는 나니의 스위칭이 잦아졌습니다. 좌우 측면과 중앙에서 볼 배급에 관여하는 움직임이 늘었죠. 나니-발렌시아 라인이 계속 가동되었다면 박지성 출전의 최대 변수로 작용했을 것입니다. 위건전에서는 발렌시아가 오른쪽 풀백으로 내려가면서 박지성-나니가 좌우 측면을 맡았죠. 박지성은 좋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박지성이 앞으로도 왼쪽 윙어 출전 기회가 많아지면 골이 더욱 필요합니다. 나니-애슐리 영은 전형적인 공격형 윙어 입니다. 박지성이 경쟁에서 승리하려면 맨유 득점력에 직접적으로 기여하는 힘을 길러야 합니다. 지난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 선발 출전했던 결정적 요인은 시즌 8골 활약에 있었습니다. 중앙 미드필더로 자리잡기에는 최근 캐릭의 부활이 예사롭지 않으며, 클레버리가 곧 부상에서 복귀하고, 맨유가 1월 이적시장에서 중원을 보강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고 생각합니다.(퍼거슨 감독은 영입이 없을 것이라고 했지만 2010년 여름 베베 영입처럼 번복 가능성 있음)

그리고 위건전에서는 전반 8분 선제골을 넣은 것이 맨유가 5-0 대승을 거두는 신호탄이 됐습니다. 만약 맨유의 첫 골이 이른 시간에 터지지 않았다면 위건 밀집 수비에 고전했을지 모릅니다. 맨유가 위건과의 역대 전적에서 13전 13승으로 앞섰지만(이번 경기 포함) 맨체스터 시티(이하 맨시티)와의 리그 선두 경쟁을 감안하면 약체를 상대로 다득점이 필요했습니다. 지역 라이벌 팀은 이미 50골 고지를 넘었죠. 그랬던 맨시티가 웨스트 브로미치 원정에서 0-0으로 비기면서 맨유와 승점 45점 동률을 이루었습니다. 골득실에서 맨유가 맨시티에게 5골 밀렸지만, 위건전 5-0 승리가 없었다면 맨시티와 골득실을 좁히는데 어려움이 있었을지 모릅니다. 그만큼 박지성 선제골 값어치가 큽니다.

만약 박지성의 왼쪽 윙어 출전 기회가 많아지면 지금보다 더 많은 골을 터뜨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윙어는 중앙 미드필더로 뛸 때보다 빈 공간이 많아집니다. 상대팀 박스 안쪽으로 꺾는 인사이드 커터 움직임을 취할 수 있죠. 애슐리 영 처럼 직선적인 패턴에 치중하거나 나니처럼 수비 뒷 공간을 쉽게 내주는 선수도 아닙니다. 팀의 공수 밸런스를 잡아주면서 경기 상황에 따라 골 기회를 노리는 것이 박지성의 장점입니다. 그런 박지성의 골 숫자가 앞으로 얼마만큼 늘어날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왼쪽 윙어로 출전할 때는 골을 노리는 움직임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