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의 풀럼전 5-0 승리가 반가운 이유는 대량 득점 입니다. 지난 4일 애스턴 빌라전까지 프리미어리그 7경기 연속 1골에 그치는 득점력 저하에 시달렸지만 이제는 공격력을 다시 회복했습니다. 지난 11일 울버햄턴전 4-1, 18일 퀸스 파크 레인저스전 2-0 승리도 있었지만 5-0이라는 스코어는 경기를 일방적으로 끌고 갔다는 뜻입니다. 전반전에만 3골을 넣으면서 사실상 승리를 굳혔습니다. 후반전에는 패스로 시간을 벌었지만 막판에 2골을 추가하면서 원정에서 승점 3점을 확보했습니다.
맨유의 5골은 특정 선수에 의존한 결과가 아니었습니다. 전반 5분 대니 웰백, 전반 28분 루이스 나니, 전반 43분 라이언 긱스, 후반 43분 웨인 루니, 후반 45분 디미타르 베르바토프가 골을 터뜨렸습니다. 굳이 루니 득점력에 기대지 않아도 골을 해결할 선수들이 여럿 있었습니다. 웰백은 이른 시간에 선제골을 넣으면서 부상 이후 떨어졌던 기력을 회복했고, 나니는 미들라이커로서의 파괴력을 과시했고, 긱스의 왼발은 여전한 클래스가 느껴지며, 루니의 중거리 골은 이날 경기 최고의 골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며, 베르바토프는 오른발 힐킥으로 리그 첫 골을 넣었습니다.
[사진=풀럼전 5-0 승리를 발표한 맨유 공식 홈페이지 (C) manutd.com]
특히 나니는 웰백과 긱스의 골을 직접적으로 관여하면서 1골 2도움 기록했습니다. UEFA 챔피언스리그를 포함한 최근 7경기 중에 4경기에서 도움을 올렸습니다.(총 5도움) 10월 1일 노리치전부터 11월 19일 스완지전까지 8경기 연속 도움이 없었지만 최근들어 '도움 생산'에 박차를 가했습니다. 전반 5분 왼쪽 측면에서 웰백에게 낮게 크로스를 띄웠을 때 근처에 있던 풀럼 선수 2명이 차단하지 못할 정도로 볼의 세기가 강했습니다. 전반 43분에는 박스 오른쪽 부근에서 긱스에게 옆쪽으로 가볍게 밀어준 패스가 골로 이어졌습니다. 자신을 마크했던 브레드 한겔란드가 옆쪽 공간을 비웠던 틈을 노렸던 절묘한 볼 배급 이었습니다.
베르바토프의 리그 첫 골도 의미를 부여할 수 있습니다. 올 시즌 챔피언스리그와 칼링컵에서 골을 넣었던 경험이 있지만 리그에서는 팀 내에서 No.4 공격수 였습니다. 루니는 부동의 No.1 옵션이었고, 에르난데스-웰백 같은 젊은 공격수들이 넉넉한 출전 시간을 확보하면서 베르바토프가 희생 당할 수 밖에 없었죠. 후반 막판 안토니오 발렌시아의 크로스를 문전에서 힐킥으로 마무리지었던 골 장면은 '역시 베르바토프가 살아있다'는 메시지를 전해줬습니다. 내년 1월 이적시장 또는 올 시즌 종료 후 맨유를 떠날 것이 유력하지만 많은 출전 기회를 얻으면 충분히 부활할 수 있습니다.
맨유는 경기 내용에서도 일방적인 리드를 지켰습니다. 1-0 이후에는 많은 선수들이 풀럼 진영에 모이면서 원터치 또는 투터치 패스를 연결하며 상대 수비를 분산시키는데 집중했습니다. 추가 득점을 노리면서 풀럼의 역습 의지를 꺾겠다는 계산이었죠. 공격 옵션들은 포어 체킹까지 시도했습니다. 끝내 풀럼의 빌드업이 빠르게 진행되지 못하면서 공격 전개가 끊어지기 일쑤였습니다. 전반전에는 골키퍼 리니고르가 볼을 잡는 장면이 잘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맨유의 공세가 계속 됐습니다. 후반전에는 패스로 시간을 벌으면서 3-0 리드를 지키는데 주력했지만 굳이 그 이상의 공격력을 기대할 필요는 없었죠.
풀럼전 경기력을 놓고 보면 '꾸역꾸역' 기질을 이겨낸 것 같습니다. 캐릭-긱스 중앙 미드필더 조합이 공간을 폭 넓게 움직이면서 여러차례 정확한 패스를 연결하면서 맨유의 화력을 키웠죠. 퀸스 파크 레인저스전을 봐도 캐릭의 오름세가 맨유의 침체를 깨우는데 성공했습니다. 불과 얼마전까지는 캐릭을 비롯한 기존 중앙 미드필더들이 제 구실을 다하지 못하면서 어렵게 경기를 풀었던 아쉬움이 되풀이 됐습니다. 역시 맨유는 중원이 강해야 합니다.
박지성은 풀럼전에서 후반 13분 왼쪽 윙어로 교체 투입했습니다. 리그에서만 4경기 연속 결장했으나 풀럼전을 통해 모처럼 실전 감각을 익혔습니다. 초반에는 뎀벨레-에투후와의 몸싸움에서 밀렸지만 루니에게 5번의 정확한 패스를 연결했고, 좌우 중앙 공간을 넓게 활용하는 패스를 띄우면서 맨유 공격의 활기를 더했습니다. 최근 경기 출전 시간이 적었음을 감안하면 풀럼전에서 제 몫을 다했습니다. 최근 맨유의 측면 공격은 나니-발렌시아 조합이 대세지만, 시즌 전반기 중앙 미드필더 출전이 많았던 박지성도 충분한 경쟁력이 있습니다.
또한 맨유는 5-0 대승을 계기로 풀럼 원정 징크스를 깨는데 성공했습니다. 풀럼 원정 최근 3경기에서 승리가 없었죠.(1무2패) 지난 시즌 리그 원정에서는 5승10무4패에 그치면서, 올드 트래포드(18승1무)에 비해 유독 상대팀 홈 구장에 약한 면모를 떨치지 못했습니다. 반면 올 시즌 리그 원정에서는 7승2무를 기록했습니다. 올드 트래포드 6승1무1패보다 더 많은 승수를 추가하면서 더 이상 원정에 약하지 않음을 과시했습니다. 같은 시간에 스토크 시티를 3-0으로 제압한 맨체스터 시티와의 선두 경쟁이 맨유에게 좋은 자극제가 됐습니다.
그러나 얻은 만큼 잃은 것도 있었습니다. 필 존스, 애슐리 영이 경기 도중 부상을 당했습니다. 존스는 최근 경기에서 물 오른 움직임을 과시했으나 불의의 부상을 당했고, 애슐리 영은 또 다시 부상 불운에 빠지면서 사실상 나니와의 주전 경쟁에서 밀렸습니다. 맨유는 박싱데이 기간에도 주력 선수의 부상 여파가 계속 되는 상황입니다. 그럼에도 풀럼전은 얻은 것이 많았던 경기였습니다. 남은 박싱데이 경기가 흥미로운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