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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캐릭의 매직 드리블, 불안한 맨유를 깨웠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의 퀸즈 파크 레인저스(이하 QPR)전 2-0 승리는 단순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지난 주말 울버햄턴전 4-1 승리에 이어 2경기 연속 2골 이상의 득점을 올렸습니다. 울버햄턴전 이전까지 프리미어리그 7경기 연속 1골에 그쳤던 답답함을 최근에 극복했습니다. 골 부진에 시달렸던 웨인 루니가 2경기에서 3골을 넣었고, 루이스 나니는 울버햄턴전에서 2골을 넣는 활약상을 펼쳤습니다. 2주전 왼쪽 발목 부상을 당했던 하비에르 에르난데스가 이른 시간에 복귀한 것도 맨유 공격력에 힘이 됩니다.

QPR전에서는 후반 11분 마이클 캐릭의 골 장면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맨유 진영 중앙에서 QPR의 횡패스를 오른발로 차단한 뒤 상대팀 선수를 뿌리치고 전방쪽으로 '매직 드리블'을 시도하며 달렸습니다. 어느덧 페널티 박스 근처에 진입하자 상대팀 수비 공간이 열린 것을 눈치채고 오른발 슈팅을 날린 것이 골망을 갈랐습니다. 자신의 리그 첫 골이자 2010년 2월 6일 포츠머스전 이후 1년 10개월 만에 골을 터뜨렸습니다. 미들라이커는 아니지만 오랜만에 골을 넣으면서 자신감을 얻었을 것입니다.

[사진=마이클 캐릭 (C) 맨유 공식 홈페이지 프로필 사진(manutd.com)]

캐릭이 드리블로 골을 넣은 것은 과감한 선택 이었습니다. QPR전에서는 중원에서 볼을 공급하면서 포백을 보호하는 임무를 맡았습니다. 후반 11분 상대팀 선수의 패스를 가로챘을 때 주변 선수에게 패스를 내줬을지 모를 일입니다. 그럼에도 골을 노린 것은 자신의 경기력에 대한 믿음이 컸음을 뜻합니다. 2009/10시즌 초반부터 경기력 저하에 시달리면서 한때 토트넘 이적설이 제기되는 상황에 놓였지만 여전히 맨유의 중원을 지키고 있습니다. 아직까지는 기복이 심한 흔적을 지울 수 없지만 QPR전에서는 경기 내용에서도 구김살 없는 활약을 펼쳤습니다.

흔히 맨유의 대표적 약점으로 중원이 자주 거론됩니다. 2008/09시즌까지 프리미어리그 3연패를 달성할때는 스콜스-캐릭이라는 황금 중원 조합이 존재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클레버리-안데르손 조합이 시즌 초반에 무르익은 호흡을 과시하면서 맨유의 다득점 질주의 토대를 마련했지만, 두 선수는 얼마 지나지 않아 부상으로 신음하면서 맨유 중원의 밸런스가 깨졌습니다. 그 여파는 맨체스터 시티전 1-6 패배 및 UEFA 챔피언스리그 32강 탈락으로 직결됐죠. 그리고 캐릭의 부진은 맨유 중원의 부수적인 불안 요소 였습니다.

만약 캐릭의 부진이 QPR전까지 이어졌다면 맨유가 어려운 경기를 펼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캐릭이 제 구실을 못했다면 함께 중앙 미드필더로 뛰었던 필 존스의 공격 가담이 줄어들면서 웨인 루니의 후방 이동이 불가피하게 많았을 것입니다. 루니의 위치 변경은 웰백 또는 에르난데스 같은 타겟맨의 최전방 고립으로 이어지면서 맨유의 공격력이 저하되었겠죠. QPR전에서는 왼쪽 윙어로 뛰었던 나니가 중앙과 오른쪽 공간에서 동료 선수와 위치가 겹치면서 스위칭이 원활하지 못했던 단점을 노출했습니다. 약팀답지 않게 공격적인 경기를 펼쳤던 QPR이 주도권을 잡을 기회가 더 늘어났을지 모를 일입니다.

QPR전에서는 캐릭이 분발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클레버리-안데르손이 부상으로 빠졌고, 플래처가 궤양성 대장염으로 전력에서 이탈하면서 전문 중앙 미드필더가 부족했습니다. 아직 경험이 적은 존스가 중앙 미드필더로 나서면서 '노련한' 캐릭의 맹활약이 맨유 경기력을 깨워야 했습니다. 결국 캐릭이 미쳐주면서 존스가 박스 투 박스 임무를 기대 이상 소화했고(박지성 결장의 원인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QPR 저항 속에서도 후반전에 맨유가 경기를 리드하는 힘을 기르게 됐습니다. 특히 캐릭이 골을 넣은 이후에는 맨유가 분위기 싸움에서 앞섰죠.

물론 캐릭이 골을 넣었다는 이유로 부진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지난 3시즌 동안 경기력 편차가 있었죠. 30대에 접어든 나이를 감안하면 존스 만큼의 혈기왕성한 경기력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과거의 스콜스, 지금의 긱스 같은 노련함이 요구되는 시점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QPR전을 통해 자신만의 클래스를 과시한 것은 불안한 맨유를 깨우겠다는 신호탄이 아닌가 싶습니다. 맨유가 우승을 달성하기에는 약점이 곳곳에서 드러났습니다.

맨유가 내년 1월 이적시장에서 중앙 미드필더를 영입할지라도 캐릭이 필요한 것은 사실입니다. 기존 맨유의 색깔을 이어가는 연속성을 놓고 보면 캐릭의 출전 횟수가 늘어날 것으로 보입니다. 부상을 당하지 않는 전제에서 말입니다. 만약 맨유가 새로운 중원 멤버를 데려오지 않으면 캐릭이 짊어질 것이 많겠죠. 캐릭의 향후 경기력이 맨유의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좌우할 포인트 중에 하나인 것은 분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