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레바논 경기에 앞서서 진행된 북한과 일본의 맞대결. 원정팀 일본이 1.5군 이었음을 감안해도 북한의 1-0 승리 과정을 지켜보며 조광래호가 배웠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개인적으로 북한을 싫어하지만, 북한 축구만을 놓고 봤을때 그들의 승리는 한국 대표팀에게 의미있는 교훈을 던져줬습니다.
북한은 일본전에서 일방적인 경기 내용 우세를 나타냈습니다. 일본 특유의 패스 축구를 봉쇄하기 위해 거친 파울을 마다않으며 수비력을 강화했고, 상대팀 공격 세기가 무뎌질수록 롱볼과 역습을 시도하며 여러차례 골 기회를 노렸습니다. 후반전에는 북한의 공격 기회가 더 많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반면 일본은 패스 중심의 전술이 여의치 않자 롱볼을 날리는 평소 답지 못한 경기를 했습니다. 3개월 전 한국 대표팀을 3-0으로 제압한 팀이 맞는지 의심됐습니다. 북한의 승리 원동력은 '북한만의 색깔'이 확고하게 드러났습니다. 선 수비-후 역습 전술에 투쟁심이 절정에 이르면서 일본의 패스 축구가 맥을 못추었습니다.
[사진=조광래 감독 (C) 아시아축구연맹(AFC) 공식 홈페이지 메인(the-afc.com)]
조광래 축구가 완성되지 못한 이유, 연속성이 없기 때문
한국의 레바논 원정 1-2 패배는 철저한 전술 패배 였습니다. 경기 내용에서 레바논에게 밀렸죠. 구자철 페널티킥 골을 제외하면 레바논 수비 진영을 흔드는 '완벽한' 공격 전개 장면이 드물었습니다. 완벽한이라는 단어를 꺼내든 이유는 조광래호가 강조하는 패스 축구는 세밀한 볼 배급이 필수입니다. 빠르고 정확한 패스가 줄기차게 이어지면서 상대 수비 조직을 무너뜨리고 슈팅을 날리는 것이 패스 축구의 기본적인 흐름입니다. 그런데 레바논전에서는 공격 지역에서의 패스 미스가 속출했습니다. 패스부터 안되었으니 필드 골이 없는 것은 당연합니다. 후반전에는 상대 박스 안쪽에서 연계 플레이가 잘 안풀렸죠.
레바논전 패배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말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박주영-기성용-이청용 공백, 중동 원정, 상대팀 팬들의 레이저 공격, 심판 판정의 불리함, 열악한 경기장 잔디 등이 거론되고 있죠. 그런데 중동 원정은 애초부터 불리할 수 밖에 없습니다. 알사드 논란을 봐도 중동 축구에게 모범적인 이미지를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2008년 11월 A매치 사우디 원정에서는 당시 골키퍼였던 이운재가 레이저 공격을 당했습니다. 심판 판정은 지난 UAE전에서도 석연치 않았죠. 하지만 한국이 악조건 속에서도 최선을 다했는지 곰곰이 생각해봐야 합니다. 팀의 전술적인 색깔이 뚜렷하지 못하며 이번 레바논전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조광래호는 지난 8월 일본전 0-3 패배를 기점으로 대중들의 신뢰를 잃고 있습니다. 한국의 패스 축구가 일본의 패스 축구에게 무릎을 꿇었던 순간이었죠. 특히 일본은 선수들의 패싱력과 점유율 우세를 바탕으로 아기자기한 공격을 전개하는 고유의 스타일이 있습니다. 올해 초 아시안컵에서는 일본과 8강에서 상대했던 브루노 메추 카타르 대표팀 감독이 '일본은 아시아의 FC 바르셀로나'라고 칭찬했었죠. 반면 조광래호는 FC 바르셀로나를 비롯한 스페인식 축구가 한국 대표팀에 정착되기를 바랬지만 선수들이 적응하는데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이청용이 "만화에서나 나올 축구"라고 비유했던 것도 이 때문이죠. 지난 6월 세르비아-가나전까지는 적응하는 듯 싶었지만 끝내 일본에게 덜미를 잡혔습니다.
한국 대표팀의 또 다른 문제점은 일본전 종료 후 6경기 치렀지만(비공인 A매치 폴란드전 포함) 긍정적으로 달라진 것은 박주영이 최근 A매치 5경기에서 8골 넣은 것 뿐입니다. 일본전 패배를 기점으로 패스 축구의 위력을 잃었습니다. 패스를 받을 선수의 움직임이 능동적이지 못하며, 볼을 주고 받는 과정에서 일부 선수의 포지셔닝이 떨어지면서 패스 루트를 다양하게 확보하지 못했고, 2차-3차 패스가 부정확하며, 선수들이 쉴새없이 패스를 주고 받기에는 누군가의 몸이 잘 따라주지 못합니다. 일본-레바논 같은 수비력이 안정된 팀들에게 당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죠. 브라질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에서는 수비력이 뛰어난 팀들과 상대할 것이 분명합니다. 완성되지 못한 패스 축구가 위험한 이유죠.
조광래 감독의 축구는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스페인식 패스 축구가 기존의 한국 축구 색깔과는 거리감이 있죠. K리그 팀이었다면 스페인식 축구는 충분히 완성되었을 것입니다. 조광래 감독이 이끌었던 2000년대 후반의 경남, 김호 감독 시절의 수원 같은 패스 축구의 완성형이 K리그에 존재했죠. 그런데 대표팀은 클럽팀과 차원이 다릅니다. 클럽팀 선수를 소집하는 형태로서 A매치 데이 기간에만 훈련이 가능할 뿐입니다. 대표팀이 성공하려면 팀으로서 선수들의 장점이 서로 융화되어야 합니다. 스페인 대표팀 같은 패스 축구를 받아들이기에는 애초부터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러나 조광래호는 패스 축구를 도입하면서 한국 축구의 색깔을 잃었습니다. 한국 축구의 강점은 압박-체력-스피드 입니다. 때로는 파워까지 받춰주면서 일본의 패스 축구를 농락했던 시절이 있었죠. 지난해 2월, 5월 일본 원정에서 말입니다. 어떤 측면에서는 한국의 축구 스타일이 개선되기를 바랬습니다. 이전 대표팀에서 롱볼이 잦았죠. 개인적으로 조광래 감독의 패스 축구가 성공하기를 바랬습니다. 한국도 패스를 줄기차게 시도하며 기존의 공격 색깔이 달라지기를 원했죠. 한국 축구 고유의 장점을 지키면서 패스 축구가 혼합하며 다양한 색깔을 지녔으면 하는 바람이었습니다. 현실은 조광래호에서 압박-체력-스피드가 팀 전술에 묻어나지 못했지만요. 경기 스타일의 전체를 바꿀려고 했기 때문이죠.
볼턴이 좋은 사례 입니다. 2009년까지 롱볼 축구를 지향했지만 지난해 초 오언 코일 감독이 부임하면서 패스 축구에 눈을 뜨기 시작했습니다. 올 시즌 성적이 저조한 것은 사실이지만 2010/11시즌에는 이전과 달라진 공격 전개에 힘입어 한때 프리미어리그 4위를 기록했습니다.(이청용 아시안컵 차출 공백, 시즌 막판 연패가 아쉬웠지만) 그렇다고 볼턴이 아스널, FC 바르셀로나 같은 축구를 따라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때로는 롱볼을 시도하면서 아기자기한 공격을 추구하는 다양한 전술을 활용했습니다. 팀으로서 연속성을 유지하면서 전술을 변화했기 때문입니다. 아스널과 똑같은 축구를 하기에는 선수들 몸의 무게 중심이 높았죠. 코일 감독의 전술 변화는 조광래호에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조광래 감독이 앞으로 패스 축구를 추구할지는 더 지켜봐야 합니다. 다시 원 상태로 돌아가기에는 새로운 전술을 실험하는 기간이 제법 길었습니다. 여러가지 교훈을 얻었지만 잃은것들이 만만치 않습니다. 한국 축구 고유의 전술로 회귀해도 선수들은 또 적응해야 하는 번거로움에 놓이게 됩니다. 처음부터 무언가 어긋난게 아닌가 싶습니다. 한국 대표팀의 체질을 바꾸면서 팀의 연속성을 받아들였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팀은 연속성이 없었고 그 결과는 삿포로 참사에 이은 레바논 쇼크로 이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