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아침 이었습니다. 잉글랜드 <맨체스터 이브닝뉴스> 소속을 자처하는 기자가 트위터를 통해 "거스 히딩크 감독이 한국 대표팀을 원한다"는 멘션을 올리면서 국내 여론의 화제를 모았습니다. 또 다른 멘션에서는 "히딩크 감독은 한국의 2014년 월드컵 4강을 달성할 것"고 적었죠. 몇시간 뒤 계정이 삭제되면서 헛소문으로 끝났지만 그 이전까지는 많은 사람들이 히딩크 감독의 한국 대표팀 복귀를 환영하는 의사를 표현했습니다. 히딩크 감독을 환영하는 분위기가 지금도 여전합니다. 그것과 관련된 5가지 느낀점을 언급합니다.
[사진=거스 히딩크 감독 (C) 첼시 공식 홈페이지(chelseafc.com)]
1. 여론은 조광래 감독을 신뢰하지 않는다
히딩크 감독의 한국행 루머는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여론 분위기는 일시적으로 긍정적 이었습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루어낸 명장이 다시 한국 대표팀 지휘봉을 잡으면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의미있는 성과를 달성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작용했죠. 한국 축구에서 '히딩크 환상'이 여전함을 실감했습니다. 물론 히딩크 감독이 복귀해도 한국 축구의 모든 문제점이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2014년 월드컵이라는 범주를 놓고 보면 '여론 입장에서' 히딩크 감독을 충분히 기대할 수 있습니다. 당연한 반응이라고 생각합니다.
역설적으로는 여론이 조광래 감독을 신뢰하지 않음을 뜻합니다. 만약 조광래호가 지난 8월 일본 원정에서 참패를 당하지 않았다면, 지금까지 순탄하게 팀을 운영했다면 아무리 여론에서 '외국인 감독을 데려오자'는 목소리에 개의치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조광래호는 일본 원정에서 0-3으로 패했고, 대표팀 차출 논란 및 전술을 놓고 여론의 불신을 받고 있습니다. 그 결과 '조광래 감독을 경질하자', '외국인 영입을 영입하자'는 여론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게 됐습니다.(개인적인 생각과 다름을 밝힙니다.) 그 상황에서 히딩크 감독 한국행과 관련된 루머에 설레는 반응들이 쏟아졌죠. 여론은 지금도 히딩크 감독의 향수를 그리워합니다.
2. 트위터 루머, 100% 믿지 말자
그러나 히딩크 감독의 한국행을 제기했던 기자의 트위터 계정은 의심스런 구석이 있었습니다. 트위터가 개설된지 일주일 밖에 되지 않았고, 히딩크 감독 한국행 언급 몇 시간 뒤에는 계정을 삭제했습니다. 뭔가 사정 있어서 계정을 지웠겠죠. 잉글랜드 축구 언론에 종사하는 기자들이 트위터에서 축구에 관한 언급을 하는 것은 흔한 사례지만,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멘션을 남기고 트위터 계정을 없앤 것은 해당 정보에 관한 신빙성이 떨어짐을 뜻합니다. 끝내 헛소문으로 판명되었지만 멘션을 올린 사람이 과연 누구인지 의심됩니다. 맨체스터 이브닝뉴스 소속이 맞는지 말입니다.
<맨체스터 이브닝뉴스>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소식, 선수들의 경기 평점 및 코멘트에 객관적인 언론사로 유명합니다. 박지성이 출전하면 경기 종료 후 국내 언론에서 <스카이스포츠>와 더불어 자주 언급되는 언론사죠. 히딩크 감독 관련 멘션을 올린 사람이 어떤 목적으로 트위터를 활용했는지 모르겠지만, 맨체스터 이브닝뉴스라면 많은 사람들이 언론사 이름만 듣고 믿을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또 하나 의심되는 것은, 잉글랜드 국적 기자가 히딩크 감독 근황을 마치 잘 아는 것 처럼 표현했습니다. 잉글랜드 언론이 수많은 축구 루머를 언급했다는 점에서 애초부터 사실 여부가 의심됐습니다. 이번 일을 통해서 트위터 루머를 100% 믿지 말아야 함을 느꼈습니다.
3. 과연 히딩크는 한국 대표팀 지휘봉 잡을까?
현 시점에서는 가능성 낮은 시나리오 입니다. 히딩크 감독은 내년 8월까지 터키 대표팀 사령탑을 맡기로 했습니다. 터키가 며칠뒤에 벌어질 유로 2012 플레이오프(크로아티아전)에서 탈락하면 경질 가능성이 있겠지만, 러시아 대표팀의 2010 남아공 월드컵 본선 진출 실패에 이어 터키 대표팀에서도 괄목할 성과를 이루지 못하면 지도력 문제를 의심해야 합니다. 아무리 세계적인 명장이라 할지라도 두 번 연속 만족스런 결과물이 없으면 다소 찜찜하죠. 터키가 유로 2012 본선에 진출하면 내년 여름까지는 임기를 보장받을지 모릅니다. 터키축구협회가 지난 여름에 히딩크 감독 영입을 추진했던 첼시의 제안을 거절했던 전례를 봐도 말입니다.
만약 히딩크 감독이 한국 대표팀 지휘봉을 잡아도 월드컵 4강 신화를 재현할지는 의문입니다. 2002년 월드컵은 한국에서 치렀지만 2014년 브라질 월드컵은 원정입니다. 2002년 월드컵때는 잦은 대표팀 차출과 장기 합숙 훈련에 의해 팀을 완성시켰지만, 이제는 10년전 처럼 대표팀을 운영하기에는 현실적인 제약이 따릅니다. 한국 대표팀이 2002년에 엄청난 성과를 이루었으나 K리그가 희생된 것을 생각해봐야죠. 그때에 비하면 K리그가 대표팀 차출과 관련된 의사 표현이 적극적입니다. 아무리 히딩크 감독이 한국 축구를 잘 알고 있지만, 10년전과 지금의 한국 축구 환경이 다릅니다. 히딩크 감독 거취보다 더 중요한 것은 조광래 감독의 앞날 행보죠.
4. 조광래 감독, 중동 원정 2연전 모두 이겨야 한다
조광래 감독은 11일 UAE 원정, 15일 레바논 원정을 앞두고 있습니다. 팀 전술의 키 포인트였던 기성용이 빠진 상태에서 중동 원정 2연전을 승리로 장식하는 것은 결코 만만치 않습니다. 지난 9월 쿠웨이트 원정에서는 무기력한 경기 내용끝에 1-1로 비겼죠. 아무리 중동 2연전 경기력이 좋지 않아도 승점 6점을 확보하면 내년 2월 29일 쿠웨이트전까지는 경질 여론을 신경쓰지 않아도 됩니다. 중동 2연전을 잡으면 브라질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진출은 사실상 확정적이죠. 쿠웨이트전에서 최정예 멤버를 가동하지 않는 여유를 부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중동 원정 2연전에서 승점 6점을 확보하지 못하면 조광래 감독을 향한 여론의 불신이 계속될지 모릅니다. 중동 원정이 힘든것은 사실이지만 UAE, 레바논은 한국보다 레벨이 낮은 팀들입니다. 사람들은 'UAE, 레바논 원정은 당연히 이겨야 한다'고 생각할지 모르죠. 중동 원정-기성용 결장에 따른 매끄럽지 못한 경기 내용은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러나 2경기에서 승리하지 못하면 여론 분위기가 싸늘할지 모릅니다. 또 다시 "외국인 감독을 영입하자"는 주장이 많아질 겁니다. 조광래 감독이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임기를 보장받으려면 눈앞에 다가온 중동 원정 2연전은 무조건 이겨야 합니다.
5. 사실은 히딩크 감독을 K리그에서 보고 싶었다
현실과 비춰보면 엉뚱한 소리겠지만, 저의 본심은 이렇습니다. K리그에 세계적인 명장이 등장했으면 좋겠습니다. FC서울이 2006년 12월 터키 출신의 명장 세놀 귀네슈 감독을 영입한 것 처럼 말입니다. 귀네슈 감독이 서울에서 3년 동안 이루어낸 성과는 정말 대단했습니다.(우승 경력 논외) 전술이 단조로웠던 서울의 색깔을 공격적으로 바꾸며 '아름다운 축구'를 완성시켰고, 이청용-기성용-이승렬 같은 영건을 발굴하면서 허정무호 세대교체가 성공했던 원동력이 됐습니다. 그리고 귀네슈 감독과 관련된 수많은 이야깃거리가 등장하면서 스토리가 부족했던 K리그의 약점을 채웠죠.
만약 히딩크 감독이 K리그 지휘봉을 잡으면 '제2의 르네상스'가 나타날지 모릅니다. 수많은 사람들과 미디어는 히딩크 감독이 사령탑을 맡을 클럽의 경기력과 선수들을 주목할 것이고, K리그 경기장을 찾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늘어날 것입니다. 평소 K리그에 관심없거나 무시했던 사람들의 생각이 긍정적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그때의 K리그는 승강제 효과를 톡톡히 누리겠죠. 히딩크 효과까지 포함되면 K리그는 신명나는 축구 축제가 계속 될 것입니다. 아울러 히딩크 감독과 2002년 월드컵 제자와의 사령탑 대결까지 기대됩니다. 다만, K리그 구단이 히딩크 감독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에는 엄청난 돈이 필요합니다. 현실적인 영입 가능성은 낮지만 K리그가 세계적인 명장이 필요한 것은 분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