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반전과 후반전 명암이 극명하게 엇갈렸던 경기였습니다. 침체에 빠졌던 경기력을 만회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조광래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 대표팀이 5일 저녁 9시 45분(이하 한국시간) UAE 두바이 알 라쉬드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4 브라질 월드컵 아시아 3차 지역예선 UAE 원정에서 2-0으로 승리했습니다. 후반 43분 이근호가 결승골을 넣었고 후반 48분에는 박주영이 추가골을 터뜨렸습니다. 한국은 3차 지역예선 3승1무로 B조 1위를 지켰으며 월드컵 최종예선 진출을 거의 확정 지었습니다.
홍정호, 수비형 미드필더로 전환하다
한국은 UAE전에서 4-3-3으로 나섰습니다. 정성룡이 골키퍼, 홍철-이정수-곽태휘-차두리가 수비수, 홍정호가 수비형 미드필더, 이용래-구자철이 공격형 미드필더, 박주영-지동원-서정진이 공격수로 출전했습니다. 특히 홍정호가 기성용 대체자로 나서면서 수비 안정에 주력하는 역할이었고, 구자철-이용래가 수시로 포백 앞쪽까지 내려오면서 커버 플레이를 시도했습니다. 홍철-차두리 풀백 조합이 미드필더 지역까지 올라가면서 중앙 수비를 강화했죠. 지난달 수원에서 벌어진 UAE전과 비교하면 조광래호가 수비 안정에 초점을 맞춘 느낌입니다.
전반 3분 UAE가 왼쪽 측면에서 역습을 시도할때 홍정호가 직접 볼을 끊었습니다. 차두리가 앞선에 있을때 뒷쪽에서 커버를 하는 홍정호의 움직임이 능동적이었죠. 그런 홍정호는 1~2분 뒤에 왼쪽 측면에서 홍철과 협력 수비를 펼치며 좌우로 넓게 움직였습니다. 전반 10분에는 왼쪽에서 이용래의 횡패스를 받은 뒤 전방에 있는 차두리에게 빠른 타이밍의 로빙 패스를 올려줬습니다. 상대에게 차단 당했지만 즉시 볼을 처리하려는 의지가 보였습니다. 전반 13분에는 UAE가 중앙에서 볼을 공급할때 직접 공격을 차단하는 영민한 경기를 펼쳤습니다. 경기 초반 만큼은 열심히 뛰었습니다.
한국의 전반전 졸전 원인, 기성용 공백
그러나 한국의 공격은 시작부터 불안했습니다. 전반 10분 점유율에서 56-44(%)로 앞섰지만 UAE 박스 안쪽에서 위협적인 골 기회를 연출하지 못했고, 공격을 풀어가는 선수들의 움직임이 전체적으로 무거웠습니다. 이용래-구자철이 자주 밑쪽으로 내려오면서 수비를 의식했지만, 공격수와 미드필더 사이의 간격이 벌어지면서 지동원-서정진이 최전방에서 고립됐습니다. 왼쪽 측면에 있는 박주영이 몇 차례 볼 터치를 했지만 주변에서 볼을 받아줄 한국 선수들의 몸 놀림이 민첩하지 못했습니다. 한국의 공격을 제어하려는 UAE 선수들의 수비 속도가 빨라지면서 한국의 공격 옵션들이 다소 느렸죠. 여기서부터 기성용 공백이 나타났습니다.
한국은 전반 25분까지 슈팅 1개에 그쳤습니다. UAE에게 슈팅을 내주지 않았던 수비력은 흠잡을 것 없었습니다. 이용래-구자철이 후방으로 계속 내려오고 홍철까지 수비력에 힘을 실어주면서 UAE에게 역습을 허용하지 않으려 했죠. 그런데 이용래-구자철은 공격형 미드필더입니다. 기성용이 없을 때 공격을 풀어주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움직임을 넓히는 경기를 펼쳤죠. 두 선수가 어쩔 수 없다면 홍정호가 전방쪽으로 킬러 패스를 뿌려줘야 합니다. 하지만 '수비수 홍정호'에게 많은 능력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였습니다. '나는 꼼수다' 멤버 4인방 중에 1명이 없는 것 같은 허전한 공격 전개가 거듭됐습니다.
볼 배급까지 비효율적 이었습니다. 전반 20~30분 패스 성공률에서 UAE에게 55-64(%)로 밀렸습니다. 전반 30분에는 이용래가 왼쪽에 있는 홍철쪽으로 횡패스를 연결한 것을 상대 선수에게 빼앗기면서 슈팅을 허용하는 장면으로 연출 됐습니다. 그 이전에는 서정진이 박스 오른쪽에서 차두리에게 내줬던 패스가 길게 연결됐습니다. 전반 20분 넘으면서 활기를 되찾는 듯 싶었으나 전반 30분이 지난 뒤에도 별다른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이용래-홍정호-구자철이 미드필더진에서 공격을 풀어주지 못했다면 윙 포워드 두 명(박주영, 서정진)이 상대 수비 사이로 과감히 드리블 돌파를 시도해야 하는데 그 작업이 잘 안됐습니다. 박주영의 경우는 측면보다는 중앙이 더 어울렸습니다.
모든 문제는 기성용 공백에서 시작됐습니다. 기성용처럼 공격의 중심을 잡아줄 구심점이 없었습니다. 선수 개인 경기력 이전에는 팀 플레이가 실종 됐습니다. 홍정호가 원 볼란치로 뛰면서 이용래-구자철이 수비쪽에서 커버 플레이가 불가피했고, 측면에서도 공격이 안풀리면서 지동원이 봉쇄 당했습니다. UAE 수비에게 읽히는 공격을 거듭했던 이유죠. 전술적인 문제점이 노출되었다면 선수들이 팀으로 뭉치면서 부지런히 뛰어야 하는데 공격 옵션들의 움직임이 무거웠습니다. 박주영-지동원-구자철은 유럽 소속팀에서 꾸준한 출전 시간을 확보하지 못했고, 서정진은 지난 주말 알사드전에서 부진했고, 이용래는 그동안 많은 경기를 뛰었습니다. 공격에서 미쳐줄 선수가 없었습니다.
[사진=한국의 분위기를 반전시켰던 손흥민 (C) 함부르크 공식 홈페이지 프로필 사진(hsv.de)]
손흥민 조커 투입 성공, 이근호-박주영 골...한국 2:0 승리
한국은 후반 시작과 함께 지동원을 빼고 손흥민을 교체 투입 했습니다. 조커 효과는 후반 3분에 나타났습니다. 손흥민이 UAE 왼쪽 수비 뒷 공간을 질주하면서 박주영에게 왼발로 낮게 크로스를 띄운 것이 위협적인 골 기회로 이어졌습니다. 전반 45분 동안 누구도 이러한 장면을 연출하지 못했는데 손흥민은 단번에 해냈습니다. 그런 손흥민은 후반 10분에도 인상깊은 공격 장면을 연출했습니다. 오른쪽 측면에서 박스쪽으로 빠르게 파고드는 상황에서 구자철의 스루패스를 받아 슈팅을 날리는 과감한 공격을 연출했습니다. 특히 구자철에게 볼을 받을때 또 UAE 수비 뒷 공간을 파고들었죠. 상대 수비가 대처하지 못할 정도로 볼이 없을때의 움직임과 순발력이 좋았습니다.
아쉬운 장면도 있었습니다. 손흥민이 후반 15분 오른쪽 측면에서 크로스를 올렸을 때 박주영이 헤딩슈팅을 시도했으나 모하메드 가립이 뒷쪽에서 밀었습니다. 주심이 페널티킥을 선언했어야 하는데 경기를 속행하면서 오심을 범했죠. 심판 판정을 탓할수는 없지만 얼마전 AFC 챔피언스리그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리면 판정이 석연치 않았습니다. 후반 19분에는 이승기가 홍철을 대신에서 교체 투입했습니다. 이용래가 왼쪽 풀백으로 내려갔고 이승기가 그 자리에 올라갔습니다. 이승기가 광주FC 플레이메이커로서 맹활약 펼쳤음을 고려하면 조광래호가 중앙 공격을 강화했습니다.
한국은 후반 10~20분 패스 성공률에서 71-53(%)로 앞섰습니다. 전반 20~30분에는 UAE에게 밀렸지만 후반전이 되면서 역전했습니다. 손흥민이 상대 수비진에서 여러차례 공격 기회를 얻으면서 구자철-서정진의 폼이 회복되었고, 선수들이 후반전부터 움직임이 활발해지면서 패스의 정확도를 높였습니다. UAE 원정에서 반드시 이기겠다는 절박함이 후반전에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후반 30분을 넘긴 상황에서 유효 슈팅은 단 1개에 불과했습니다.(슈팅 8개) 박주영 부진이 아쉬웠습니다. 총 75분 넘게 공격의 실마리를 풀지 못하면서 상대 수비에게 끌려다녔죠. 볼 터치까지 불안하면서 스스로 공격을 해결하는데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실전 감각 부족이 아쉬웠습니다.
후반 33분에는 이근호가 서정진을 대신하여 윙 포워드로 교체 출전했습니다. 후반 39분 박스 중앙쪽으로 쇄도할때 박주영 스루패스를 받아 슈팅을 날렸으나 UAE 골키퍼 선방에 막혔습니다. 후반 41분에는 박스 오른쪽 안에서 박주영쪽으로 크로스를 올린것이 부정확 했습니다. 50초 뒤에는 차두리와 2:1 패스를 주고 받는 상황이 있었죠. 그 이후 왼쪽 공간에서 이승기 패스-이용래 크로스에 이은 이근호의 오른발 결승골로 마무리 됐습니다. 교체 투입과 동시에 볼에 관여하는 움직임을 늘리면서 마침내 좋은 결실을 맺었습니다. 후반 48분에는 박주영이 손흥민의 오른쪽 측면 크로스를 문전에서 가볍게 밀어넣으면서 한국이 2-0으로 승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