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선생' 박주영(26, 아스널)의 팀 내 입지가 탄탄하지 않은 것은 사실입니다. '불안함', '심각함', '위태로움' 같은 자극적인 표현을 쓰지 않아도 외부에서 말이 많습니다. 국내 여론을 비롯해서 미국 언론까지 관심을 나타낼 정도입니다. 미국의 <FOX 스포츠>는 박주영이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경기에 뛰지 못한 원인을 '스피드 부족'으로 꼽았습니다. 잉글랜드 무대의 빠른 템포에 적응하지 못한 것이 그 이유입니다. 아르센 벵거 아스널 감독이 지난달 박주영을 언급하면서 "앙리, 피레가 적응하는데 4~6개월 걸렸다"고 말했던 것과 비슷한 맥락입니다.
[사진=박주영 (C) 아스널 공식 홈페이지(arsenal.com)]
미국 언론의 지적은 맞는 말입니다. 박주영은 '발의 속도 이전에' 생각의 속도가 빨라야 합니다. 어느 지점에서 볼을 터치하거나 근처 공간에 접근할지, 볼을 받으면 지체없이 동료 선수에게 넘겨주는, 이러한 장면들을 꾸준히 반복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아스널은 패스 축구에 익숙한 팀으로서 공격수에게 활발한 연계 플레이가 요구됩니다. 로빈 판 페르시와 마루앙 샤막의 대표적인 차이점이죠. 특히 판 페르시는 경기에 몰입하는 집중력까지 뒷받침되면서 틈틈이 골 기회를 노렸습니다. 스스로 득점 기회를 창출할 수 있는 소유자임을 지난 첼시 원정 해트트릭을 통해 알렸습니다.
박주영이 프리미어리그 경기에 뛰지 못했던 1차적 원인은 판 페르시가 너무 잘하기 때문입니다. 판 페르시가 리그 득점 1위(11경기 11골)를 질주하는 상황에서 굳이 벤치에 내려갈 이유가 없습니다. 그런 판 페르시에게 의존하는 아스널 전술은 아쉬움이 있었지만, 역의 관점에서는 세스크 파브레가스(FC 바르셀로나)처럼 득점력이 뛰어난 공격형 미드필더가 없었고 박주영-샤막은 판 페르시와 다른 타입의 공격수입니다. 박주영-샤막은 아스널 특유의 패스 축구에 적응을 하지 못했죠. 물론 샤막은 2010/11시즌 전반기에 잘했습니다. 하지만 시즌 중반에 부상에서 복귀했던 판 페르시와 4-4-2에서 공존하지 못하면서 지금까지 벤치를 지켰습니다.
그런데 샤막은 연계 플레이가 본래 좋았던 선수였습니다. 아스널에서는 기복을 타는 아쉬움이 있었지만요. 박주영도 비슷한 처지입니다. 두 선수는 프랑스 리게 앙(리그1)과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의 전술적 차이를 극복하지 못했거나 또는 적응 중입니다. 리게 앙이 프리미어리그보다 공격 템포가 늦기 때문에 생각의 속도가 빠르지 않은 선수들이 잉글랜드 무대에서 불리합니다. 한때 이청용 동료였던 요한 엘만더(갈라타사라이)가 2008/09, 2009/10시즌 부진했던 것도 프리미어리그 적응 부족 때문입니다. 2010/11시즌에 만개하면서 의욕적인 연계 플레이를 나타냈죠.
박주영이 샤막보다 유리한 것은 시즌 중반에 출전할 기회가 많습니다. 샤막은 모로코 대표팀의 일원으로서 내년 초 아프리카 네이션스컵(1월 21일~2월 12일)에 출전합니다. 대회 기간 이전에 소집되기 때문에 박싱데이가 끝나는 시점에 런던을 잠시 떠날 것으로 보입니다. 그때는 판 페르시에게 휴식이 필요합니다. 시즌 초반부터 프리미어리그 전 경기를 소화하고 주중 경기까지 출전하면서 많은 에너지를 소모했죠. 박주영의 프리미어리그 데뷔 시점은 멀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박주영은 시간이 넉넉하지 못합니다. 프리미어리그에 더 적응할 필요성이 있지만 아스널에서 뛸 수 있는 기간이 제한적입니다. 병역 문제를 무시 못하죠. 또는 아스널이 이적시장에서 새로운 공격수로 영입할지 모릅니다. 공격수 자원이 꽉찼지만 지금의 라인업에 만족하기에는 빅4 수성을 낙관하기 힘듭니다. 박주영인 박싱데이를 전후로 그라운드에서 자신만의 뚜렷한 인상을 심어줄 필요가 있습니다. 한정적인 출전 시간 속에서도 혼신의 힘을 다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발이 느린 선수는 아닙니다. 생각의 속도가 빨라지려면 선수 본인의 노력이 필수입니다.
'아스널 박주영'은 모나코 박주영과 달라야 합니다. 모나코 시절에 가장 중점을 두었던 플레이는 공중볼을 따내는 것이었습니다. 팀 자체가 빌드업, 페너트레이션 작업이 매끄럽지 못했습니다. 미드필더진은 공격 기회를 창출하는 면모가 부족하죠. 그들의 현실적인 답안은 박주영의 머리를 겨냥하며 전방으로 볼을 띄우는 것이었습니다. 아스널 축구와 거리가 멀죠. 그렇다고 박주영은 전형적인 타겟맨이 아니었습니다. 모나코에서 3시즌 뛰었던 습관이 굳었죠. 축구 선수가 하루 이틀만에 경기력이 달라질 수는 없습니다. 아스널 체질에 맞는 공격수로 거듭나려면 꾸준히 노력하는 것이 정답입니다.
박주영의 앞날은 비관적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시야-패싱력-테크닉-움직임-공중볼-스위칭 등에 이르기까지 공격수로서 다양한 장점이 있습니다. 아스널 연계 플레이에 충분히 적응할 수 있으며 그저 시간이 필요할 뿐입니다. 또한 모나코와 아스널, 리게 앙과 프리미어리그의 수준 차이가 이렇게 클 줄은 몰랐습니다. 프랑스 리그 출신 선수가 잉글랜드 무대 적응에 어려움이 있다고 단정짓는 것은 아니지만, 생각의 속도가 빠른 선수들이 그렇지 않은 선수들보다 상위 리그에서 적응하기 쉽습니다. 박주영은 모나코 시절보다 더욱 분발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