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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박지성 종횡무진, 맨유의 보이지 않는 힘

 

'산소탱크' 박지성(30,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이하 맨유)는 6일 선덜랜드전에서 82분 출전하며 팀의 1-0 승리를 기여했습니다. 전반 45분 웨스 브라운의 자책골이 맨유가 승점 3점을 획득하는 결정타가 됐습니다. 전반 4분부터는 지동원이 부상당한 코너 위컴을 대신하여 교체 투입하면서 코리안 더비가 성사 됐습니다. 박지성이 자신의 앞선에서 슈팅을 시도했던 지동원쪽으로 달려가는 움직임을 취했고, 두 선수가 근처 공간에서 마주하면서 국내 축구팬 입장에서는 흐뭇한 경기를 보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사진=박지성 (C) 유럽축구연맹 공식 홈페이지 프로필 사진(uefa.com)]

박지성은 경기 종료 후 맨체스터 지역지 <맨체스터 이브닝뉴스>를 통해 "근면했지만 선덜랜드를 아프게 하지 못했다"는 부정적 코멘트와 함께 평점 6점을 기록했습니다. <스카이스포츠>에서도 "깔끔한 볼 터치였으나 강력한 임펙트가 아니었다"고 평하며 6점을 부여했습니다. 현지 언론의 평가는 좋지 않았지만 역설적으로는 묵묵히 경기를 펼쳤음을 의미합니다. 지금까지 박지성 경기를 보면 공격 포인트를 기록하지 않을때 평점이 정확하지 못한 경우가 다반사 였습니다.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저평가된 선수'라고 말하는 것도 이 때문이죠.

그런 박지성은 어떤 형태로든 맨유 전력에 필요한 선수임을 선덜랜드전에서 말해줬습니다. 전반전에는 4-2-3-1의 수비형 미드필더로 기용되면서 공격형 미드필더 지역까지 움직이고 좌우로 넓게 벌어지는 프리롤을 취했습니다. 대런 플래처가 정확한 패스를 끊임없이 공급했던 앵커맨 이었다면 박지성은 박스 투 박스 였습니다. 후반 5분 이전에는 오른쪽에서 머물렀으나 그 이후 맨유가 4-4-2로 전환하면서 왼쪽 윙어로 전환했습니다. 직선과 곡선을 가리지 않고 전방위적으로 움직이는 종횡무진을 과시했죠. 맨유가 공격 옵션들의 난조 속에서도 경기 내용에서 앞섰던 이유는 박지성의 궂은 활약이 맨유의 '보이지 않는 힘'이 됐습니다.

박지성을 안좋게 평가했던 현지 언론은 선덜랜드에게 위협적인 장면을 연출하기를 바랬을 겁니다. 하지만 현지 언론은 번지수를 잘못 짚었습니다. 공격력에 관한 문제점이라면 에르난데스-웰백-루니-나니의 책임이 큽니다. 에르난데스는 선덜랜드 수비에게 일방적으로 봉쇄 당했고, 루니도 선덜랜드 수비의 집중 견제를 받으면서 공격력이 둔화되는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웰백의 기동력은 경기 상황마다 기복을 타면서 불안정했고, 나니의 크로스는 부정확했으며 맨유 미드필더 중에서 가장 많은 패스 미스(20회, 31/51개)를 기록했습니다. 맨유가 1-0으로 승리했으나 필드 골이 없었던 이유가 이 때문입니다. 박지성은 4명을 도와주는 역할에 충실했을 뿐이죠.

한 가지 의외는, 플래처의 선덜랜드전 폼이 좋았습니다. 패스 정확도 95.1%(59/62개)를 기록할 정도로 중원에서 양질의 패스를 공급했던 과거의 면모를 되찾았습니다. 상대팀 선수들이 압박을 펼칠때 볼을 지켜내는 볼 키핑까지 좋았죠. 맨유가 후반전에 4-4-2로 전환할 때는 루니의 앞선에서 공격을 조율했습니다. 루니가 전형적인 수비형 미드필더를 소화할 정도로 맨유의 전술이 플래처의 패스 공급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플래처 맹활약이 가능했던 것은 박지성이 근처 공간에서 열심히 뛰었기 때문입니다. 그라운드를 넓게 움직이면서 상대팀 선수들이 맨유 13번 선수를 신경쓸 수 밖에 없었고 플래처가 패스 활로를 개척하는데 유리했죠.

그런데 루니의 중원 배치는 비효율적 입니다. 3경기 연속 중앙 미드필더로 활약중이지만(공격형-수비형 미드필더 포함) 자신만의 뚜렷한 색깔이 보이지 않습니다. 맨유의 중앙 미드필더 자원이 부족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중원으로 내려갔지만, 공격에 조율하는 역할도 아니고 수비에 주력하는 것도 아닙니다. 선덜랜드전에서는 맨유 미드필더 중에서 가장 많은 패스 횟수(74개)를 기록했으나 14개의 패스 미스를 범했습니다. 잔패스를 많이 시도했지만 상대 수비 사이를 가르며 결정적인 골 기회를 연출해주는 면모가 부족합니다. 전문 중앙 미드필더가 아닌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죠. 그래서 공간을 넓게 움직였지만 박지성과 동선이 겹치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이제는 루니가 공격진에 복귀해야 합니다. 선덜랜드전에서는 루니가 에르난데스를 대신해서 원톱으로 뛰거나, 또는 맨유의 본래 포메이션이었던 4-4-2로 회귀하는 것이 옳았습니다. 박지성이 중앙에서 넓게 움직일 때는 루니가 전방으로 배치되어야 균형이 맞습니다. 박지성 움직임이 선덜랜드전에서 과소평가 된 것과 밀접한 배경입니다. 또 하나는 박지성의 중앙 미드필더 출전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안데르손-캐릭-플래처-클레버리 같은 전문 중앙 미드필더들과 박지성의 차이점은 꾸준함 이었습니다. 박지성이 그동안 맨유 전력에 지속적으로 공헌하며 퍼거슨 감독의 신뢰를 받았죠.

그렇다고 박지성이 움직임에만 초점을 맞춘 것은 아니었습니다. 전반 21분 오른쪽 공격형 미드필더 위치에서 에르난데스에게 정확한 스루패스를 찔러준 뒤, 왼쪽 공간으로 이동해서 루니에게 짧은 패스를 연결하는 볼 배급을 발휘했습니다. 후반 9분에는 왼쪽 측면에서 오른발로 날카로운 크로스를 찔러주기도 했죠. 이날 82분 동안 패스 정확도 80.4%(33/41개)의 무난한 공격 전개를 나타냈습니다. 이날 박지성 활약상의 묘미는 돌파였습니다. 전반 9분 선더랜드 수비진 사이를 파고들었고, 전반 35분에는 왼쪽 측면에서 돌파를 시작할 타이밍에 마이클 터너의 발에 걸려 파울을 얻었고, 후반 11분에는 왼쪽 공간을 빠르게 질주하는 움직임을 과시했습니다.

최근 인터넷에서 유행하는 키워드가 '박지성 폭풍 드리블' 입니다. 지난달 26일 칼링컵 16강 올더숏전에서 보여줬던 활약상 때문이죠. 하프라인에서 박스 중앙 부근까지 드리블 돌파로 빠르게 접근하면서 상대팀 선수 3명을 제쳤습니다. 선덜랜드전에서도 몇 차례 돌파를 시도했는데 이제는 폼이 완전히 올랐습니다. 시즌 초반에 많은 출전 시간을 확보하지 못했지만 그때 에너지를 아꼈던 것이 지금에 이르러 엄청난 에너지를 쏟는 원천이 됐습니다. 맨유가 맨시티전 1-6 패배의 악몽을 딛고 4경기 연속 승리했던 원동력은 박지성의 종횡무진이 뒷받침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