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에 앞서서 : 이 글은 3일 새벽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경기 리뷰 입니다. 3일 작성했어야 하는 글이지만, 저의 생애 처음으로 엠뷸런스에 탑승하고 병원 두 곳을 다닐 정도로 몸이 아팠습니다. 병원에서 링거 맞아서 머리가 어지러웠는데, 오늘 몸이 회복되면서 정상적인 블로그 활동이 가능함을 밝힙니다. 트위터를 통해서 저의 몸을 걱정해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는 3일 오텔룰 갈라티전에서 웨인 루니를 4-4-2 중앙 미드필더로 기용했습니다. 루니는 지난 주말 에버턴 원정에서도 4-1-4-1의 공격형 미드필더로 뛰었습니다. 마이클 캐릭, 톰 클레버리가 부상 당했고 대런 플래처의 폼이 평소보다 못한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2경기 연속 중원에서 뛰고 있습니다. 맨유 공격수들이 많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지만 10번 선수가 있어야 할 곳은 최전방 입니다.
[사진=박지성 (C) 유럽축구연맹 공식 홈페이지 프로필 사진(uefa.com)]
루니는 오텔룰 갈리티전에서 후반 43분 크리스탄 사르기의 자책골을 유도했습니다.(따라서 박지성 도움은 무효) 하지만 루니는 전문 중앙 미드필더가 아닌 이유 때문인지 중원에서 킬러 패스를 찔러주거나 공격을 조율하는 면모가 부족했습니다. 잔패스가 매우 많았지만 중앙 미드필더라면 볼 터치가 많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다고 못한 것은 아니었지만 맨유에게 아쉬웠던 '스콜스 기질'을 채워줄 적임자는 아니었습니다. 루니보다는 안데르손이 중원 앞선에서 패스에 관여하는 움직임이 많았죠. 그런데 안데르손도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듯이 부진했습니다.
후반 34분 박지성 교체 투입은 맨유가 중원 공격을 강화하겠다는 의지였습니다. 맨유가 전반 8분 안토니오 발렌시아의 선제골 이후 오랫동안 공격이 소강 상태였던 이유는 중원의 불안한 공격력과 일치합니다. 점유율이 많았을 뿐 상대 수비에게 뻔히 읽히는 공격이 수없이 되풀이 되면서 골을 가르지 못했죠. 그래서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박지성을 조커로 활용하며 경기력 반전을 꾀했습니다. 박지성은 패스에 관여하는 적극적인 움직임으로 팀 공격의 활력을 키웠습니다. 후반 43분에는 자책골을 얻어냈던 루니에게 패스를 연결하며 팀의 2-0 승리에 기여했습니다.
박지성의 중앙 미드필더 활용은 더 이상 어색하지 않습니다. 지난 시즌 아시안컵 차출 이전까지 공격을 풀어가는 조율 능력이 부쩍 좋아지면서 스콜스 부상 공백을 메웠습니다. 당시에는 왼쪽 윙어로 활약했지만 경기 내용에서는 실질적인 플레이메이커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그때는 득점력이 향상되었을 뿐만 아니라 4-2-3-1의 공격형 미드필더로서 성공적인 면모를 발휘했습니다. 수비력과 활동량이 검증된 만큼 4-4-2 중앙 미드필더로 뛰는데 문제될 것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지난 여름 미국 투어에서 본격적으로 중앙 미드필더로 전환했습니다. 최근 3경기에서는 중원에서 뛰었던 공통점이 있죠.
역설적으로는 맨유의 중원을 꾸준히 뒷받침할 적임자가 없음을 뜻합니다. 클레버리는 두 번의 부상을 당했고, 안데르손-캐릭-플래처는 경기력이 좋지 않으며, 긱스도 최근에 잘 보이지 않습니다. 박지성-루니 같은 중앙 미드필더 활용이 가능한 선수의 포지션 전환이 불가피했죠. 아마도 맨유는 1월 이적시장에서 새로운 중앙 미드필더를 영입하지 않을까 예상됩니다. 이대로는 한 시즌을 꾸리기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퍼거슨 감독의 선택을 받을 선수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그 이전까지는 박지성의 중앙 미드필더 출전이 많을 겁니다.
박지성의 영향력은 파트리스 에브라의 최근 활약에서 파악됩니다. 에브라가 올 시즌 수비력이 불안해진 원인은 왼쪽 측면에서 박지성이 없기 때문입니다. 박지성 같은 수비에서 많은 힘을 실어줄 윙어가 빠지고 '수비력이 약한' 애슐리 영이 공격적인 경기를 펼치면서 에브라의 수비 부담이 많아졌습니다. 그동안 많은 경기에 출전했던 과부하와 맞물리면서 최근 활약상이 좋지 않죠. 또 하나의 문제는 애슐리 영의 직선적인 공격 패턴이 상대 수비에게 읽혔습니다. 시즌 초반의 에브라였다면 애슐리 영과 원투패스를 주고 받으면서 윙어를 도와줬겠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두 선수가 서로를 도와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에브라를 예로 든 것은, 박지성이 맨유 중원에 많은 공헌을 해줄 선수임을 뜻합니다. 박지성은 팀을 위해서, 누군가를 보조하기 위해서 뛰는 마인드가 철저하게 발달된 선수입니다. 지난달 26일 칼링컵 16강 올더숏전에서는 수비적인 성향의 미드필더로서 포백을 보호하는 포지셔닝으로 맨유 수비수들을 도와줬죠. 지난 주말 에버턴전, 주중 오텔룰 갈라티전에서는 특유의 부지런한 움직임으로 주변 선수들과 패스를 주고 받으며 팀 공격의 실마리를 풀었습니다.
박지성은 과거의 로이 킨이나 스콜스 같은 특출난 재능을 지닌 전문 중앙 미드필더가 아닙니다. 하지만 미드필더 어느 영역에서든 팀의 약점을 보완해주는 클래스가 뚜렷합니다. 박지성보다 공수 밸런스를 잡아주는 능력이 뛰어난 선수는 맨유에 없습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은 맨유의 지난달 23일 맨체스터 시티(이하 맨시티)전 1-6 참패 원인을 박지성 결장이라고 지목합니다. 박지성이 투입해도 맨유가 승점을 따낸다는 보장은 없지만, 맨유가 맨시티전 이후 3경기에서 박지성을 중앙 미드필더로 활용한 것은 더 이상의 위기를 허용하지 않겠다는 퍼거슨 감독의 의도입니다. 첫번째이자 결정적인 위기 극복 카드는 박지성 이었습니다.
그런 박지성 입지는 더 이상 의심하지 않아도 됩니다. 시즌 초반에는 애슐리 영에게 주전에서 밀렸다는 분위기가 팽배했지만 1600만 파운드 이적생의 오름세는 꾸준하지 못했습니다. 심한 표현을 하면, 애슐리 영의 거품이 빠진 것이죠. 중앙 문제도 마찬가지 입니다. 시즌 초반에는 클레버리가 스콜스 공백을 해결하고 안데르손이 각성하는 듯 싶었지만 현실은 박지성의 중앙 미드필더 기용이 힘을 얻고 있습니다. 그만큼 박지성이 맨유에서 누구보다 부럽지 않을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죠. 사람들의 눈에 쉽게 띄지 않지만 팀을 위해 그라운드를 질주하는 본능이 최근 맨유 중원에서 잘 묻어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폼이라면 맨유의 중원 딜레마를 해결할 적임자임에 틀림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