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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판 페르시, 유리몸 제외하면 최고의 공격수

 

첼시와 아스널이 맞붙었던 '런던 더비'는 뜻밖입니다. 경기가 스탬포드 브릿지에서 펼쳐졌고, 아스널이 아직까지는 위기의 기운을 떨치지 못했고, 두 팀의 최근 5경기 전적에서는 첼시가 3승1무1패로 앞섰습니다. 이번 런던 더비는 첼시의 승리 또는 무승부가 예상되었지만 결과는 아스널 승리였습니다. 그것도 첼시 원정에서 5골을 터뜨렸습니다. 5-3으로 제압했던 스코어는 어느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얼마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맨체스터 시티에게 1-6으로 대패한 것과 비슷한 의외의 일이 벌어졌습니다.

[사진=로빈 판 페르시 (C) 아스널 공식 홈페이지 프로필 사진(arsenal.com)]

두 팀은 최전방 공격수의 팀 공헌에서 명암이 엇갈렸습니다. 첼시의 토레스는 최근에 튼튼튼해진 아스널 중앙 수비 벽을 넘지 못하면서 무득점에 그쳤고, 아스널 골잡이 판 페르시는 해트트릭을 달성하며 첼시 수비진을 농락했습니다. 특히 후반 40분에는 테리가 말루다의 백패스를 받지 못하고 넘어진 것을 틈타 볼을 터치하여 전방으로 빠르게 질주했습니다. 골키퍼 체흐를 제치고 가볍게 골을 넣으며 아스널이 4-3으로 역전했죠. 이날 경기의 최대 승부처가 아닐까 싶습니다. 6분 뒤에는 추가골을 넣으며 아스널에게 짜릿한 승리를 안겼습니다.

판 페르시의 첼시 원정 3골은 골잡이로서 지능적인 장면 이었습니다. 전반 36분에는 박스 왼쪽 안에서 제르비뉴의 횡패스를 받아 왼발 슈팅으로 골망을 갈랐습니다. 제르비뉴에게 패스 받을때의 위치선정이 절묘했습니다. 램지가 제르비뉴에게 스루패스를 밀어줄때 첼시 수비수 어느 누구도 판 페르시의 동선을 놓쳤습니다. 그런 판 페르시의 후반 40분 골은 상대 수비수 실수를 놓치지 않고 골을 터뜨리는 집념이 좋았고, 후반 46분 아스널 역습 상황에서 하프라인을 통과할 때는 중앙에서 왼쪽으로 트는 움직임을 보였습니다. 공간을 넓게 확보해서 상대 수비 견제를 뿌리치고 돌파를 시도하겠다는 계획이죠. 그래서 아르테타의 패스를 받아 중앙으로 질주하여 왼발 강 슈팅을 날리며 아스널 5-3 승리를 완성시켰죠.

축구에서는 '공격수는 골로 말한다'는 격언이 있습니다. 아무리 공격수가 최상의 경기 내용을 발휘해도 골이 없으면 모든 사람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기 힘듭니다. 공격수의 본분은 골이기 때문이죠. 그렇다고 공격수가 매 경기마다 골을 넣을 수는 없지만 적어도 꾸준히 골을 생산하는 능력을 길러야 합니다. 판 페르시는 2011년 프리미어리그 27경기에서 28골 터뜨렸습니다. 1경기당 1골 이상을 넣은 셈입니다. 2011/12시즌 10경기에서 10골을 작렬하며 프리미어리그 득점 선두에 올랐습니다. '루니vs아궤로vs제코' 3파전 양상이었던 프리미어리그 득점왕 경쟁에서 새로운 변수가 나타났죠. 판 페르시가 2004년 아스널 입단 이후 득점 1위와 인연이 있는 선수는 아니었습니다.

판 페르시는 지금까지 프리미어리그에서 시즌 30경기 이상 뛰었던 이력이 없습니다. '유리몸'으로 불릴 정도로 그동안 부상이 잦았습니다. 2011년 27경기 28골, 올 시즌 득점 선두에 올랐던 최대의 원동력은 큰 부상을 당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지난해는 부상으로 결장했거나 회복했던 시간이 많았죠.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네덜란드 대표팀 원톱으로서 준우승 멤버로 활약했지만 7경기 1골은 아쉬웠습니다. 아스널 활약상과 비교하면 몸이 무거운 인상을 지우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2010년에는 부상 후유증으로 고생을 했습니다.

2011년은 판 페르시의 최대 전성기 입니다. 아스널 간판 골잡이로서, 팀 공격의 에이스로서, 그리고 주장으로서 놀라운 활약상을 펼쳤습니다. 그 이전까지는 아데바요르(토트넘)의 조력자 성향이 짙었고, 지난 시즌까지는 파브레가스(FC 바르셀로나)라는 걸출한 플레이메이커가 아스널에 존재했던 영향력을 무시 못하죠. 정확히는 판 페르시의 부상 결장이 잦았죠. 유리몸을 제외하면 현재 최고의 공격수로 군림했을지 모릅니다. 부상 없는 성장세를 놓고 보면 지금보다 더 훌륭한 선수가 되었겠죠. 그 아쉬움을 2011년에 만회한 것 같습니다. 가장 경이로운 것은, 최악의 위기를 보냈던 아스널이 첼시 원정을 기점으로 자존심 회복하는데 성공했던 1등 공신이 판 페르시 였습니다.

아스널은 그동안 주장 논란으로 잡음에 빠졌습니다. 비에라-앙리 같은 리더십이 뛰어난 선수들이 팀을 떠난 이후부터 특정 선수의 주장 자질을 놓고 말이 많았죠. 갈라스(토트넘)는 젊은 선수들과 융화하는데 실패한데다 자서전 구설수까지 있었고, 파브레가스는 21세의 나이에 주장을 맡기에는 나이가 너무 어렸습니다. 아스널이 2009/10, 2010/11시즌 막판에 미끄러졌던 원인은 팀이 하나로 결집되지 못했습니다. 파브레가스가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죠.

하지만 '아스널 현 주장' 판 페르시는 그라운드에서 실력으로 팀을 이끌었습니다. 벌써 프리미어리그 10골을 넣으며 아스널 공격을 지탱했죠. '아스널이 판 페르시 공격에 의존한다'는 말이 들릴 정도로 네덜란드 공격수의 영향력이 제법 큽니다. 아스널에게 중요했던 첼시 원정에서도 그가 해트트릭을 달성했죠. 갈라스-파브레가스가 아스널 주장을 맡을때도 개인 실력은 뛰어났습니다. 그런데 판 페르시는 아스널 성적 부진 속에서도 골잡이로서 자기 역할을 톡톡 해내면서 팀원들이 자신을 따라올 수 있는 동기부여의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한때 하위권으로 추락했던 아스널이 최근 프리미어리그 3연승을 거두면서 7위로 도약했던 원동력 입니다.

그러나 아스널은 판 페르시 부상 재발을 걱정해야 합니다. 판 페르시가 2011년에 최고의 활약을 펼쳤지만 언젠가 부상이 찾아올지 모릅니다. 그동안 부상이 잦았던 이력을 무시 못하죠. 아무리 첼시 원정에서 이겼지만 위기에서 끝났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판 페르시 부상은 아스널의 새로운 위기를 뜻합니다. 박주영이 맹활약 펼치면 이야기는 다르겠지만 판 페르시라는 주축 공격수를 잃는 것은 아스널에게 상상하기 싫은 시나리오 입니다. 또 하나의 부정적인 시나리오는 판 페르시의 맨체스터 시티 이적 가능성이죠. 그럼에도 지금 이 순간 만큼은 판 페르시의 득점력이 프리미어리그에서 으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