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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수원 염기훈, 전성기에 마침표를 찍어라

 

그의 왼발 킥력은 예전의 고종수를 보는 듯 합니다. 측면에서 너른 볼 배급으로 팀 공격을 이끌며 그라운드를 질주하는 기질은 서정원의 향수가 느껴집니다. 미들라이커로서의 출중한 득점력은 데니스와 유사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수원의 주장 염기훈(28)의 최근 활약상은 고종수-서정원-데니스 같은 수원 레전드 및 슈퍼스타의 장점을 빼닮은 것 같습니다. 과거 스타와 비교하거나 실력적 우열을 가리는 것은 아니지만, 염기훈은 수원 역사의 한 획을 그을 영웅으로 거듭날 자격이 매우 충분한 선수입니다.

염기훈은 9월 18일 강원전까지 올 시즌 K리그 23경기에서 7골 10도움을 기록했습니다. 신인이었던 2006시즌 31경기 7골 5도움보다 더 많은 공격 포인트를 올렸으며, 거듭된 부상으로 결장이 잦았던 2007~2010시즌 기록까지 뛰어 넘었습니다. 특히 올해는 FA컵 4도움, AFC 챔피언스리그 4골 2도움까지 추가하면서 11골 16도움의 저력을 과시했습니다. K리그 활약을 놓고 보면 올해가 전성기일지 모릅니다. 고질적인 대표팀 부진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수원의 염기훈'은 대표팀 염기훈과 차원이 다릅니다.

다만, 염기훈이 '2011년은 염기훈의 전성기'임을 증명하려면 팀의 에이스로서 뚜렷한 성과가 필요합니다. 지금까지 수원에서 물 오른 활약을 펼쳤지만 시즌 막판에 팀 성적이 떨어지면 염기훈의 활약상은 빛 바랠지 모릅니다. 그동안 이적시장에서 대형 선수 영입을 아끼지 않았던 수원의 행보를 놓고 보면 6강 플레이오프, 또는 챔피언스리그 8강&4강 진출에 만족하기는 이릅니다. 수원에게 필요한 것은 우승이며 FA컵 3연패와 맞먹는 또 다른 결과물이 필요합니다. 팀의 주장이자 에이스 염기훈의 어깨가 무겁습니다.

특히 수원의 지난 행보를 살펴보면 염기훈의 특별한 주기를 읽을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수원 역사에서 2009~2010년 전반기는 암흑기 였습니다. 2008년 K리그 더블 우승(K리그+하우젠컵)을 달성했던 화려함이 금새 물거품이 됐습니다. 이정수-마토-신영록-조원희가 2008시즌 종료 후 팀을 떠난 것이 전력 약화의 결정타가 됐습니다. 대부분의 주력 선수들이 기복이 심한 활약을 펼쳤고, 팀 전술까지 상대팀에게 간파당하면서 6위권 밑으로 떨어졌습니다. 2010년 전반기에는 K리그 꼴찌로 추락하자 차범근 감독이 자진 사임하는 파국에 치닫았습니다. 그나마 2009년 FA컵 우승이 K리그 빅 클럽 체면을 지켰을 뿐이죠.

그랬던 수원이 2010년 하반기에 비약적으로 성장했습니다. 남아공 월드컵 이후 윤성효 감독이 부임하면서 정규리그 순위를 7위로 회복하면서 FA컵 2연패에 성공했죠. 시즌 막판 체력 저하가 없었다면 6강 플레이오프 진출이 가능했을지 모릅니다. 그 중심에 염기훈이 있었습니다. 골은 없었지만 8도움을 기록하며 팀 공격의 새로운 구심점으로 떠올랐습니다. 포스코컵까지 포함하면 19경기에서 1골 10도움을 올렸으며 그 중에 1골은 4강 서울전 골이었습니다. FA컵 결승 부산전에서는 왼발 중거리 슈팅으로 결승골을 터뜨리며 수원의 1-0 승리와 함께 우승까지 이끌었습니다.

수원의 2011년은 파란만장 했습니다. 4월 15일 강원전 2-0 승리에 힘입어 K리그 선두로 올라섰으나 그 이후 7경기 연속 무승(1무6패) 및 14위로 추락했습니다. 당시 팀의 주장이었으나 경기력 난조에 시달렸던 최성국은 승부조작 연루로 퇴출됐고 염기훈이 주장 완장을 대신 찼습니다. 시즌 초반에는 최성국과 더불어 폼이 가라 앉았지만, 주장을 맡으면서 팀 공격을 이끄는 기질을 되찾았습니다. 정교한 볼 배급과 킥력으로 상대 수비의 허를 찔렀고 측면에서 중앙으로 접근하여 연계 플레이를 시도하는 적극성을 발휘했습니다. 때로는 골로 응수하는 파괴력을 과시했죠. 그 결과는 수원의 K리그 4위 진입, FA컵 결승 진출로 이어졌습니다.

이러한 수원의 행보는 '염기훈이 잘해야 수원 성적이 좋아진다'로 요약됩니다. 수원은 '염기훈 효과'를 톡톡히 누렸으며, 그 효과를 실현한 주인공은 염기훈 입니다. 특히 염기훈의 득점력이 부쩍 좋아졌습니다. 2009~2010년 K리그에서 4골에 그쳤으나 올 시즌 7골을 터뜨렸습니다. 정규리그만을 놓고 보면 지난해 무득점이었으나 올해는 7골입니다. 개막 이후 10경기에서는 2도움에 만족했지만 그 이후 13경기에서 7골 8도움을 터뜨리는 괴력을 발휘했습니다. 6월 18일 대구전에서는 생애 첫 해트트릭을 달성하며 수원의 4-1 승리를 이끌었습니다. 해결사 기질을 발휘한 염기훈 활약에 수원의 성적이 올랐습니다.

하지만 수원의 살인적인 일정(K리그, 챔피언스리그, FA컵 결승)은 염기훈에게 고비로 작용합니다. 올해는 특별히 부상이 없었지만 시즌 초반부터 많은 경기에 출전하면서 많은 에너지를 소모했습니다. 아무리 체력이 좋아도 여러 대회를 오가며 챔피언스리그 중동 원정까지 병행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염기훈은 9월초 대표팀의 쿠웨이트 원정에 참여했고, 9월말에는 수원의 이란 원정을 떠납니다. 만약 수원이 챔피언스리그 4강에 진출하면 10월에도 중동 원정길에 올라야 합니다. 지금까지의 활약상은 좋았지만 경기 출전을 거듭하면서 피로가 누적되었을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염기훈은 '수원의 우승을 이끌겠다'는 마음이 충만할 겁니다. 수원의 주장으로서 팀의 우승을 이끌 기회는 흔치 않습니다. 수원은 1년마다 주장이 바뀌기 때문입니다. 우승컵을 가장 먼저 받는 선수는 팀의 주장이죠. 또한 염기훈은 올 시즌 종료 후 경찰청에 입대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올 시즌 우승 의욕이 남다른 이유입니다. 이미 2006년에는 전북의 특급 유망주로서 팀의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끈 경험이 있습니다. 지난해에는 수원의 FA컵 2연패를 선사했죠. '2011년에 전성기를 보냈다'는 마침표를 찍으려면 이번에도 우승이라는 결과물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