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는 결과 중심의 스포츠 입니다. 아무리 경기 내용이 좋아도 승리하지 못하면 무용지물 입니다. 시험 공부를 열심히 하더라도 성적이 좋지 않으면 부모님과 선생님의 눈치를 보는 것 처럼 말입니다. 상대팀보다 더 많은 골을 넣으며 승리하는 축구의 본질은 불변합니다. 조광래호도 마찬가지 입니다. 지난달 10일 A매치 일본 원정 0-3 참패를 당하며 국민적인 지탄을 받았습니다. 무기력한 경기 내용과 더불어 3골차 패배는 누구도 납득하기 힘든 결과였습니다.
[사진=조광래 감독 (C) 아시아축구연맹(AFC) 공식 홈페이지 메인(the-afc.com)]
오늘 저녁 8시 고양 종합 운동장에서 펼쳐질 레바논전도 결과가 중요합니다. 상대가 약팀이지만 오히려 일본전보다 더 중요합니다. 일본전이 평가전이라면 레바논전은 2014 브라질 월드컵 아시아 3차 지역예선 1차전 경기입니다. 8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을 위한 '첫 걸음' 입니다. 홈에서 열리는 경기로서 승점 3점 확보가 필요합니다. 만약 비기거나 패하면 일본전 패배와 맞물리며 조광래호가 좌초 위기에 빠질 수 있습니다. 당연히 승리 해야 할 경기입니다.
하지만 지난 6월 19일 올림픽대표팀의 요르단전 3-1 승리를 떠올릴 필요가 있습니다. 당시 요르단전은 2012 런던 올림픽 아시아 2차 예선 경기였습니다. 한국이 전반전에 1골 뒤졌으나 후반전에 3골 넣는 역전승을 연출했지만 오히려 축구팬들에게 아쉬웠던 경기로 회자됩니다. 경기 내용이 안좋았기 때문입니다. 후반 9분 김태환이 동점골을 넣기 전까지 후방에서 느린 템포의 지공을 되풀이하며 상대 진영에서 공격 전개 작업이 늦어지는 문제점이 있었습니다. 선수들이 볼을 다룰때의 터치가 길어지면서 상대 밀집 수비를 극복하는데 어려움을 겪었죠. 안풀리는 공격을 거듭한 끝에 경기 집중력이 떨어지면서 수비 실수에 이은 실점을 허용했습니다.
당시 요르단전을 떠올리면, 이제는 아시아 약체와의 홈 경기에서 승리하는 것은 '기본'이 됐습니다. 한국은 국내에서 진행되는 국제 경기에서 항상 강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약팀을 상대로 승리하는 광경에 익숙합니다. 한국 축구가 발전하려면 더 이상 아시아 무대에 안주해서는 안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경기 내용에 민감하게 됐습니다. 세계 무대에서 최상의 성과를 내려면 경기 내용이 중요하죠. 조광래호도 마찬가지 입니다. 레바논전은 반드시 승리가 필요하지만 경기 내용에서도 괄목할 성과를 이루어야 합니다.
그런 조광래호는 레바논의 밀집 수비와 상대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다수의 아시아 약체팀들은 한국과 경기하면 수비에 중점을 두는 전술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FC 바르셀로나와 상대하는 팀들이 수비 축구를 했던 것과 마찬가지 입니다. 약팀이 강팀을 전술적으로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수비 축구 입니다. 객관적 전력에서는 한국의 일방적인 우세지만, 사실은 한국 축구도 아시아 무대에서 상대팀 밀집 수비에 때때로 고전을 면치 못했던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한국 대표팀의 암흑기였던 쿠엘류호-본프레레호 시절에도 그랬고, 허정무호 시절에는 북한의 밀집수비에 힘겨워 했습니다. 홍명보호도 광저우 아시안게임-3개월 전 요르단전에서 같은 전례를 남겼죠.
특히 공격 전개 속도를 높여야 합니다. 특정 선수 패싱력에 의존하기 보다는 상대팀 선수들이 수비 진영을 구축하고 커버 플레이를 준비하기 이전에 공격의 맥을 잡아야 합니다. 누군가 패스의 중심 축을 담당할 수 있지만 경기 상황에 따라 대상자가 바뀔 수 있습니다. 아마도 레바논전에서는 수비수 또는 후방으로 내려오는 미드필더가 한국 진영에서 공격 상황일 때 볼을 잡는 경우가 많을 겁니다. 그 상황에서 볼을 전방쪽으로 처리하는 속도를 올리고 반복해야 레바논 수비가 점점 체력적으로 힘들어집니다. 상대가 포어체킹을 하지 않는 경우라면 포백을 전진배치해야 합니다. 이것이 빌드업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홍명보호가 오만전에서 고전했던 이유는 빌드업이 계속 늦었기 때문입니다. 후방에서 공격이 지체되면서 공격 옵션들이 맥이 빠진 끝에 경기 집중력이 떨어지는 현상을 가져왔죠. 0-1로 밀렸던 후반 초반부터 빌드업 속도가 올라가면서 3골을 넣을 수 있었습니다. 조광래호도 마찬가지 입니다. 지난 일본전 패배 원인 중에 하나는 후방에서 빌드업을 전개할 카드가 차두리 밖에 없었습니다. 기성용이 일본의 점유율 축구와 맞서면서, 이정수-이재성 센터백 조합은 기본적으로 수비가 불안했고, 김영권-박원재 같은 왼쪽 풀백들은 연이어 부상을 당하는 바람에 수비에서 빌드업을 끌어줄 카드가 다양하지 못했습니다. 레바논전은 일본전에 비해 공격 횟수가 많겠지만 빌드업 중요성을 간과할 수 없죠.
후방에서 빌드업이 성공하면 상대 진영에서는 공격에 참여하는 선수들이 빠른 타이밍의 원터치 패스를 시도하면서 종방향 돌파가 활발하게 이루어져야 합니다. 하지만 박주영-지동원 공존이 조광래호의 고민입니다. 레바논전에서는 박주영이 왼쪽 윙어, 지동원이 원톱으로 출전할 예정입니다. 박주영은 왼쪽 측면에서 박스쪽으로 이동하면서 골을 노리는 움직임을 시도할 것이며, 지동원은 최전방에서 왼쪽으로 빠지면서 상대 수비를 끌어주는 움직임에 익숙합니다. 그럴 경우, 두 선수의 동선이 겹치게 됩니다. 두 선수는 지난 2월 터키전, 6월 가나전에서 꾸준히 연계 플레이를 시도하는 면모가 부족했죠. 특히 레바논전은 박주영 왼쪽 윙어 전환이 변수입니다.
일각에서는 박주영이 왼쪽 윙어로 뛴 경험이 많음을 강조합니다. 하지만 박주영은 중앙에서 뛸때에 비해 공격의 파괴력을 높이지 못했습니다. 특히 서울 시절이었던 2008년 전반기에는 4-4-2의 왼쪽 윙어로서 준수한 경기를 펼쳤지만 오히려 득점력이 반감되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반면 지동원은 박스 안쪽에서 머물기 보다는 바깥쪽에서 움직이는 동선을 선호합니다. 현대 축구에서 강조되는 스위칭 플레이에 필요한 선수지만 박주영과 위치가 겹치면 상대 진영에서 패스 길목을 찾는데 어려움이 있죠. 대표팀이 이 같은 문제점을 해결할지 주목되는 경기 입니다. 경기 결과는 '기본', 경기 내용이 '중요한' 조광래호의 레바논전 과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