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 대표팀의 쿠웨이트전 제1의 목표는 승점 3점 입니다. 쿠웨이트 원정이자 43도라는 무더운 날씨속에서 지난 레바논전 6-0 대승을 바라는 것은 무리입니다. 완벽한 경기력을 기대하기에는 현지 환경이 우리 선수들을 지치게 했습니다. 그럼에도 브라질 월드컵 아시아 3차 지역예선 2차전으로서 승점 3점 획득은 꼭 필요했습니다. 경기 내용은 레바논전보다 뒤떨어져도 반드시 이겨야 하는 경기였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1-1 무승부 였습니다. 전반 8분 박주영 선제골로 기분 좋은 출발을 했지만 그 이후부터 경기력이 주춤했습니다. 후반 8분 알리에게 동점골을 내줬던 후반 초반에는 쿠웨이트와의 주도권에서 밀렸습니다. 한국은 후반 19분 염기훈, 후반 33분 김정우를 교체 투입하며 분위기 전환을 시도했지만 상대와의 체력전에서 열세였습니다. 경기를 거듭할수록 반격할 힘을 잃었고 수비 불안까지 겹치면서 모든 것이 힘겨웠습니다. 쿠웨이트에게 역전패를 당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막았지만 승점 3점을 얻기에는 그 방법이 부족했습니다.
[사진=조광래 감독 (C) 아시아축구연맹(AFC) 공식 홈페이지 메인(the-afc.com)]
한국의 쿠웨이트전 무승부, 무엇이 문제였나?
승점 3점 획득의 기본은 수비 조직력입니다. 아무리 골을 많이 넣어도 수비가 취약하면 실점 허용이 늘어나면서 경기에서 이기기 힘듭니다. 많은 사람들은 FC 바르셀로나의 변화무쌍한 공격력을 칭찬하지만 그 기반에는 탄탄한 수비력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국 대표팀은 오래전부터 수비력이 허약했고 지금의 조광래 체제에서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수비수, 수비형 미드필더들은 90분 내내 경기에 몰입하지 못하는 단점이 있습니다. 이번 쿠웨이트전에서도 수비 집중력이 떨어지면서 실점 위기 상황을 초래했던 장면들이 속출했죠. 골키퍼 정성룡 선방이 없었다면 한국은 적지에서 패했을 겁니다.
특히 풀백이 불안했습니다. 전반 17분 차두리가 부상으로 교체되면서 '포항의 공격형MF' 김재성이 오른쪽 풀백으로 투입했습니다. 문제는 이때부터 풀백이 흔들리기 시작했죠. 홍철-김재성은 공격 지향적인 플레이를 펼쳤지만 오히려 수비 뒷 공간이 벌어지면서 쿠웨이트의 집요한 역습에 흔들렸습니다. 그런데 쿠웨이트의 거듭된 측면 반격에도 불구하고 풀백은 공격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선수가 스스로 전진했거나 또는 조광래 감독의 지시였을 것입니다. 여기에 경기 집중력 저하까지 겹치면서 우왕좌왕하고 말았습니다. 홍철이 이영표 대체자로 성장하기에는 기량이 더 여물어야하며 이제는 차두리가 경기에 뛰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야 할 시점입니다.
.그렇다고 풀백의 공격적인 움직임을 지적하는 것은 아닙니다. 풀백의 공격력이 힘이 되어야 박주영-남태희-지동원-구자철 같은 공격 옵션들이 후방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으며 골을 노릴 수 있죠. 기성용-이용래 더블 볼란치 조합이 중앙 밑쪽에서 무게 중심을 잡았을때는 풀백이 공격적으로 올라가는 것이 정상입니다. 더글라스 마이콘, 다니엘 알베스, 파트리스 에브라 같은 세계적인 풀백들도 90분 동안 수비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수비쪽에서 공간을 허용하면 풀백이 밑으로 내려오거나 수비형 미드필더가 측면 뒷 공간을 커버하여 빠르게 움직이는 것이 정상입니다. 조광래호는 그 작업이 매끄럽지 못했죠. 공격 옵션들이 갈피를 못잡는 상황에서 기성용-이용래가 측면까지 움직이는 것은 무리였습니다.
그렇다면 윙어들이 수비 가담에 열의를 다하거나 포어 체킹을 하는 것이 옳았습니다. 전통적인 형태의 전술이었다면 박주영-남태희는 수비 임무에 충실했어야 합니다. 하지만 쿠웨이트전에서는 공격 옵션들의 역할이 기존과 달랐습니다. 왼쪽 윙어 박주영이 지동원과 최전방에 위치하면서 골 기회를 노렸고, 남태희가 좌우쪽을 넓게 움직이며 상대 수비 빈 공간을 비집었고, 구자철이 세 선수 사이에서 공격을 조율하는 것이 마땅했으나 이렇다할 존재감이 없었습니다. 네 선수의 임무는 상대 후방에서 세밀한 패스 플레이로 수비진을 뚫고 골 기회를 노리는 것인데 박주영 선제골 이외에는 좀처럼 위협적인 상황이 연출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공격에 미련을 두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결국에는 '수비력 소홀'로 이어지면서 풀백이 어려움을 겪었죠.
근본적으로는 1-0 이후에 곧바로 추가골을 넣지 못한것이 아쉬웠습니다. 단숨에 2-0이 되었다면 '중동 특성상' 쿠웨이트 선수들의 사기가 떨어지면서 한국이 여유롭게 경기를 펼쳤을 것입니다. 박주영 골 까지는 좋았지만, 공격 패턴이 중앙쪽으로 쏠리면서 쿠웨이트 수비가 단번에 읽었습니다. 쿠웨이트의 작전은 수비 숫자를 중앙쪽으로 촘촘히 좁히면서 한국의 공격에 대처하고, 공격시 한국의 측면쪽으로 롱볼을 띄우거나 개인 돌파를 주문하는 패턴이었죠. 물론 한국은 공격적인 경기 흐름을 잃지 않았지만 전방에서의 유기적인 패스워크가 살아나지 않으면서 공격 옵션들이 수비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풀백까지 공격에 나섰으니 수비력 약점은 시간 문제입니다.
과거로 거슬러가면, 한국은 지난 상반기 온두라스-세르비아-가나전 승리 과정에서 미드필더들의 측면 수비 가담이 활발했습니다. 당시에는 4-1-4-1 포메이션을 활용하면서 이용래-김정우 같은 공격형 미드필더들이 측면에서 동료 선수와 협력 수비를 펼치며 상대 공격을 힘들게 했습니다. 하지만 일본전에서는 두 선수가 엔도-하세베와의 허리 싸움에서 밀리면서 상대에게 여러차례 측면 공격을 허용했습니다. 그런데 왼쪽 풀백 김영권-박원재가 불의의 부상으로 교체되면서 왼쪽 윙어였던 이근호의 수비 가담이 갑작스럽게 늘어났습니다.(과부하에 걸리면서 공격의 갈피를 못잡았음)
조광래호는 일본전 패배에 의해 4-2-3-1로 전환하면서 윙어를 변칙적으로 활용했습니다. 박주영이 왼쪽에서 중앙으로 움직이면서 남태희가 2선을 넓게 커버하는 형태였습니다. 레바논전에서는 이 작전이 적중했습니다. 상대팀은 쿠웨이트에 비하면 수비 포지셔닝, 순발력이 뒤쳐지는 팀이었죠. 한국의 6-0 승리는 일본전 패배 분위기를 극복했던 소득이 있었지만 상대가 아시아 약체인 것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쿠웨이트는 달랐습니다. 박주영에게 선제골을 내준 이후부터 수비 안정을 되찾았고, 빠른 순발력을 주무기로 활용하는 선수들이 공격 옵션에 배치되면서 한국의 풀백 약점을 읽었습니다. 만약 한국이 강팀과 경기했다면 일본전에 이은 참패를 당했을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결국, '밸런스 붕괴'가 뼈아팠습니다. 공격과 수비의 균형이 무너지면서 쿠웨이트에게 끌려다니는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원정에서 승점 3점을 목표로 하는 팀이라면 기본적으로 수비가 안정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공격 옵션들은 공격에 미련을 버리지 못했고, 기성용-이용래는 중앙쪽에서 움직임이 많을 수 밖에 없었고(그나마 기성용 폼은 좋았던), 수비수들의 집중력이 부족하면서 특히 풀백이 위태롭게 경기를 펼치는 흐름이 지속됐습니다. 선수들이 하나로 뭉치지 못하면서 밸런스가 깨졌습니다. 쿠웨이트의 무더운 날씨, 중동 원정, 선수들의 체력 저하를 감안해도 승점 3점을 획득하는 노하우부터 부족했던 '졸전' 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