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의 라이벌 아스널전 승리는 예상되었던 결과 입니다. 그런데 8:2로 제압할 줄은 아무도 예견하지 못했을 겁니다. 맨유의 화력이 지난 시즌보다 강해졌지만 불과 3개월전 아스널전에서는 무득점에 그쳤습니다. 그만큼 아스널 전력이 많이 약해졌다는 증거입니다.
특히 아스널의 8실점 패배는 1896년 로프보로타운전 0-8 패배 이후 115년 만에 벌어진 일입니다. 반면 맨유는 '야구 스코어'로 비유되는 8:2 승리를 거두면서 프리미어리그 2연패를 향한 발걸음을 힘차게 내딛었습니다. 아스널전 8-2 승리 원인 7가지를 살펴봤습니다.
[사진=아스널전 8-2 승리를 공식 발표한 맨유 구단 홈페이지 (C) manutd.com]
1. '업 그레이드' 맨유 vs '다운 그레이드' 아스널
맨유는 아스널전 이전까지 승리를 거듭하며 슬로우 스타터를 잊었습니다. 이적생(데 헤아, 애슐리 영, 존스) 임대 복귀 선수(웰백, 클레버리)들이 팀 전력에 빠르게 적응하면서 은퇴 선수 3인방(네빌, 스콜스, 판 데르 사르) 공백을 메웠습니다. 안데르손-나니-에반스-스몰링은 지난 시즌 막판 맨유의 백업 이었지만 이제는 선발을 꿰차고 있습니다. 아스널전 선발 11명 중에 단 2명(루니, 에브라)이 지난 시즌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선발 멤버 였습니다. 그만큼 선수층이 두꺼워졌습니다.
반면 아스널은 파브레가스-나스리 이적 공백을 누구도 대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름없는 유망주들의 등장이 늘어난 현실이죠. 빅 사이닝 영입까지 저조했습니다. 뉴캐슬전에서는 제르비뉴가 퇴장당했고 송 빌롱이 추가 징계를 받았으며, 리버풀전에서는 프림퐁이 퇴장 당하는 불운까지 겹쳤습니다. 몇몇 선수들은 부상으로 신음했죠. 로시츠키는 왼쪽 허벅지에 흰색 천을 메고 햄스트링 통증을 참았습니다. 이미 선수 퀄리티에서 맨유에게 지고 들어갔습니다.
2. 맨유의 공격 전술, '속도 중심'으로 바뀌었다
맨유는 지금까지 강팀 경기에서 선 수비-후 역습을 즐겨 구사했습니다. 그런데 아스널전에서는 경기 내내 공격을 거듭했습니다. 애슐리 영-나니-웰백 같은 빠른 스피드를 주무기로 삼는 공격 옵션이 선발로 중용되는 이유는 맨유의 공격 템포를 높게 유지하기 위해서입니다. 상대 수비 조직이 형성되기 전에 볼을 잡으며 전방으로 질주하는 시도가 많아졌습니다.
루니-클레버리-안데르손이 측면쪽으로 벌려주는 패스를 늘리면서 애슐리 영-나니의 돌파가 줄기차게 이어졌고, 웰백은 중앙에서 볼을 받는 동작의 민첩성을 높이며 상대 수비진 사이를 파고드는데 주력했습니다. 모든 역할을 훌륭히 소화하는 '만능형 공격수' 루니의 존재감도 빼놓을 수 없죠. 아스널처럼 수비가 약한 팀은 맨유에게 실점할 수 밖에 없습니다.
3. 에브라>넘사벽>젠킨슨
맨유는 모든 선수들이 잘했지만 그 중에서 에브라는 숨은 MVP 였습니다. 아스널 측면 수비 공간까지 파고드는 오버래핑과 수준급 볼 관리로 맨유 공격의 속도를 높이는데 기여했습니다. 후반 36분에는 페널티킥을 유도하며 루니의 해트트릭 완성을 도왔습니다. 특히 월컷의 수비 가담이 늦는 약점을 노려 쉴새없이 돌파를 시도한 것이 젠킨슨의 수비 뒷 공간까지 파고드는 자신감으로 이어졌습니다.
특히 애슐리 영과 짧은 패스를 주고 받으며 상대 진영으로 접근할수록 젠킨슨 수비 불안을 유도했습니다. 젠킨슨의 위치 선정이 앞쪽으로 쏠리거나 커버 플레이를 놓치는 실수가 이어지면서 에브라 공격이 힘을 얻었습니다. 그래서 애슐리 영이 아스널 수비 진영을 적극 공략하며 2골을 넣을 수 있었죠. 또한 젠킨슨은 후반 31분 경고 누적으로 퇴장 당했습니다. 에브라의 완승입니다.
4. 맨유의 8골 응집력, 그리고 박지성 1호골
맨유-아스널 경기 이전에는 맨시티-토트넘 경기가 끝났습니다. 맨시티가 토트넘을 5:1로 제압했고 제코가 4골을 퍼부었습니다. 맨유 선수들이 모를리 없습니다. 맨시티와의 리그 선두 경쟁에서 앞서려면 '대량득점'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지했겠죠. 전반전을 3:1로 마치면서 후반전을 여유롭게 보냈을지 모르지만 맨시티를 의식했는지 후반전에 5골을 추가했습니다. 그 결과 맨시티와 리그 3승 동률을 이루면서 득점-골득실에서 지역 라이벌을 1골 차이로 따돌리고 1위에 올랐습니다. 실제로 맨유 선수들이 맨시티 5:1 승리를 알았다면, 아스널과 경기하면서 정신적으로는 맨시티와 싸운 것과 다름 없습니다.
특히 후반 22분 박지성 교체 투입은 맨유가 8골을 넣는 지름길이 됐습니다. 박지성은 교체 투입한지 3분 만에 시즌 1호골을 넣었습니다. 박스 왼쪽에서 애슐리 영의 짧은 횡패스를 받아 왼발 슈팅으로 상대 오른쪽 골망을 갈랐고 맨유가 6:1로 앞섰습니다. 아스널 수비의 저항을 받지 않으며 슈팅을 날릴 기회를 노렸죠. 상대팀이 전의를 상실했다는 증거입니다. 그 이후 박지성은 오른쪽 측면과 최전방을 오가면서 동료 선수들과 패스를 주고 받으며 맨유의 추가 득점 기회를 벌려줬습니다. 자신을 따라붙는 아스널 선수는 없었습니다. 박지성의 활발한 움직임이 맨유 8:2 승리의 근본적인 원인이 됐습니다.
5. 벵거의 패착 (1) 아스널의 '돌격 앞으로', 2골 넣고 8실점하다
아스널이 경기 초반부터 공세를 펼친 것은 납득이 안됩니다. 객관적인 전력상 맨유에게 열세였고, 4일 전에는 이탈리아 우디네세 원정을 치르면서 선수들의 체력이 좋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선수들의 무게 중심이 앞쪽으로 쏠리면서 속도에 강점을 둔 맨유와 정면 승부를 시도했습니다.
하지만 속도로 맨유 수비를 뚫기에는 선수들이 볼을 다룰때의 터치가 길었습니다. 볼 처리가 늦어지면서 맨유 선수들의 협력 수비를 이겨내지 못하는 상황들이 거듭 연출 됐습니다. 상대 수비에게 읽히기 쉬운 지공을 거듭하며 속도 싸움에서 맨유에게 패했습니다. 수비가 불안했음에도 경기 내내 공세를 멈추지 않습니다. '돌격 앞으로' 정신으로 2골을 넣는데 성공했지만 8실점 빌미가 됐습니다. 벵거 감독의 패착 입니다.
6. 벵거의 패착 (2) 4-2-3-1, 4-1-4-1, 4-3-3...매 경기 바뀌는 포메이션
아스널은 맨유 원정에서 미드필더를 역삼각형으로 배치하는 4-3-3으로 나섰습니다. 아르샤빈-월컷은 최전방 왼쪽과 오른쪽을 담당하면서 공격에 치우친 경기를 펼쳤죠. 로시츠키-램지가 공격형 미드필더, 코클린이 수비형 미드필더로 뛰었습니다. 지난 14일 뉴캐슬전 4-2-3-1, 20일 리버풀전 4-1-4-1 형태와 달랐죠. 경기 마다 졸전을 거듭하고, 부상-징계 선수가 속출하면서 포메이션이 계속 바뀌었습니다.
물론 포메이션과 전술은 다른 개념입니다. 하지만 리그 3경기에서 일정한 형태의 포메이션이 유지되지 못하면서 선수들의 위치 선정이 불안했습니다. 지나치게 앞쪽으로 몰려 있거나, 동료 선수와 동선이 겹치거나, 패스를 벌려줄 위치에 접근하지 못하는 현상이 반복됐죠. 선수들이 질서없이 움직이면서 팀 플레이가 저하되고 말았습니다.
7. 벵거의 패착 (3) 아르샤빈-월컷을 수비로 내렸어야 했다
벵거 감독은 공격 전술을 선호하는 지도자 입니다. 하지만 그 마인드가 뉴캐슬-리버풀전 졸전의 원인이 됐습니다. 공격의 구심점 없이 '돌격 앞으로'를 외칩니다. 짜임새 넘치는 공격이 진행될 수 없었죠. 고질적인 수비 불안은 여전했습니다. 맨유전은 승점 획득이 중요한 경기로서 수비를 강화하는 전략이 필요했고 아르샤빈-월컷을 윙 포워드가 아닌 측면 미드필더로 내리며 수비적인 역할을 주문하는 것이 옳았습니다.
물론 두 선수는 공격 기질에 충만합니다. 하지만 트라오레-젠킨슨-코클린은 경험이 부족했고, 코시엘니-주루-로시츠키는 부상에서 회복한지 얼마 안되었거나 무리하게 경기에 투입했습니다. 램지는 자신만의 콘셉트를 못찾고 있죠. 특히 측면이 '뻥뻥' 뚫리면서 8실점을 자초했습니다. 아르샤빈-월컷이 측면에서 협력 수비에 적극적이지 못한 것이 원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