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광래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 대표팀은 지난 2월 박주영을 주장으로 선임한 이후 A매치 3경기에서 2승1무를 기록했습니다. 지난 2월 10일 터키 원정에서 0-0으로 비겼지만 3월 25일 온두라스전 4-0, 6월 3일 세르비아전 2-1 승리로 오름세를 달렸습니다. 오는 7일 가나와의 A매치가 남아있지만, 지금까지는 아시안컵 이후 조광래 감독이 추구하는 공격 전술 색깔이 자리잡았다는 점에 의미를 둘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캡틴 박주영'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박주영은 주장 완장을 처음으로 달았던 터키전에서 부진했지만 온두라스-세르비아전에서 헤딩골을 넣으며 한국의 승리를 이끌었습니다. 지금까지는 박주영이 맹활약을 펼치면 한국이 승리했고, 캡틴이 평소만큼 기대에 못미치면 조광래호가 고전했던 양상이 나타났습니다. 그 흐름은 앞으로 변함없을 듯 합니다. 박주영은 4-1-4-1의 원톱으로서 최전방 공격을 담당합니다. 이용래-김정우 같은 공격형 미드필더들이 경기 상황에 따라 중앙 미드필더 역할을 소화하면서 박주영에게 짊어진 공격 책임이 커졌습니다. 공격수의 기본인 골과 함께 말입니다.
한 가지 다행인 것은, 박주영 주장 선임에 따른 우려가 그저 기우로 끝났을 뿐입니다. 박지성-이영표가 아시안컵을 끝으로 대표팀에서 은퇴하면서 차두리의 대표팀 주장 가능성이 대두됐습니다. 아시안컵 3~4위전 우즈베키스탄전에서 무릎 부상으로 엔트리에서 제외됐던 박지성 대신에 주장 완장을 찼습니다. 하지만 조광래 감독은 차두리 대신에 박주영을 'New 캡틴 박'으로 선택했습니다. 차두리가 이정수와 더불어 선수단에서 가장 나이가 많지만(31세), 두 선수는 수비수이기 때문에 실점 실수에 따른 부담감을 염려하여 팀을 실질적으로 이끌어가길 바라는 선수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조광래 감독은 박주영을 주장으로 내세웠습니다. 그동안 대표팀 공격수로서 가장 좋은 활약, 유럽 무대 및 각급 대표팀에서 다져진 풍부한 국제 경험, 선후배 사이의 관계 친밀, 박지성에 이어 한국 대표팀의 에이스로 거듭날 잠재력이 주장으로 선임된 포인트 였습니다. 일각에서는 '26세' 박주영이 한국 대표팀을 잘 이끌어갈까 노심초사 했지만, 캡틴 박은 2014년이면 29세가 됩니다. 그때는 축구 선수로서 기량이 완성되고, 신체능력이 절정에 달하며, 최전성기를 달릴 수 있는 시기입니다. 박주영은 박지성에 이어 한국 축구의 역사를 빛낼 '위대한 주장'으로 회자되는 동기부여를 얻게 됐습니다.
어쩌면 박주영의 2014년 브라질 월드컵 도전은 이미 시작했을지 모릅니다. 조광래 감독에게 주장으로 발탁된 것은 2014년을 내다보는 장기적 혜안이었죠. 만약 주장이 대표팀 주전 경쟁에서 밀리거나, 부상 및 슬럼프로 시름하면 조광래호 전술 운영이 타격을 받을 수 있습니다. 주장은 어떠한 순간이든 팀의 중심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어느 누구든 경쟁을 피할 수 없겠지만, 박주영은 주장으로서의 떳떳함을 위해 붙박이 주전을 지켜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습니다. '아시안컵 스타' 지동원을 비롯한 다른 공격수와의 경쟁에서 확고한 우세를 점하는 것은 기본이요, 조광래 감독의 공격 지향적인 색깔에서 중심이 되려면 박주영 맹활약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특히 소속팀에서의 꾸준한 경기력이 중요합니다. 아무리 기량이 출중한 선수라도 소속팀에서 제대로된 출전 시간을 보장받지 못하면 '최악의 경우' 대표팀 발탁까지 어려워집니다. 유로 2004 이전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로이 캐롤에게 주전 경쟁에서 밀리면서 프랑스 대표팀 합류가 위태로웠던 프랑스 골키퍼 파비앙 바르테즈가 그 예 입니다. 결국 바르테즈는 2003/04시즌 마르세유 이적 및 주전 골키퍼로 자리잡으면서 프랑스 대표팀에서의 입지를 다시 키웠죠. 대표팀에서는 경험과 실력, 잠재력, 그리고 지속적인 경기 감각이 선수 발탁의 중요한 관건임을 알 수 있습니다.
바르테즈를 예로 든 것은, 박주영은 올해 여름 이적시장에서 다른 팀으로 떠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소속팀 AS모나코가 강등된 현 시점에서는 이적이 불가피합니다. 선수 본인은 UEFA 챔피언스리그에 출전하는 클럽을 원하고 있지만, 그 이전에는 많은 출전 기회를 보장받는 클럽에 안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대표팀 주장으로서 더 막강한 존재감을 과시하려면 꾸준한 경기 감각은 기본입니다. 전임 주장이었던 박지성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결장 횟수가 결코 적지 않았지만, 그 이전에는 소속팀이 스쿼드 로테이션 시스템을 쓰는 특수성을 감안해야 합니다. 어쨌든 박주영에게 이번 여름은 자신의 앞날 운명을 결정짓지 모를 중요한 순간입니다.
박주영 커리어는 항상 평탄하지 않았습니다. 2005년 '축구 천재' 신드롬을 일으켰지만 2006~2007년에는 혹사에 따른 부상 및 부진으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한때 모나코에서 장기간 골 부진에 시달렸으며 올 시즌에는 강등을 모면하지 못했습니다. 몇차례 병역 혜택 실패까지 빼놓을 수 없죠. 그러나 이제는 새로운 소속팀을 찾으면서 순항을 거듭하고, 그 기세를 대표팀에서 발휘하며 동료 선수들을 이끄는 구심점 역할을 해야 합니다. 주장으로서의 권위 이전에 지금까지 쌓았던 경험과 실력이 뒷받침되야죠. 그래야 2014년 브라질 월드컵을 향한 밝은 미래를 키울 것입니다. 아직 3년 남았지만, 브라질 월드컵을 내다보는 조광래호의 2014년 운명은 박주영이 쥐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