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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K리그 승부조작, 축구팬으로서 충격 큽니다

 

가급적이면 K리그와 관련된 부정적인 언급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대중들에게 'K리그는 재미없다', 'K리그=텅 빈 관중'이라는 인식이 팽배한 현실입니다. '유럽축구보다 못하다'는 편견까지 말입니다. 일부 언론에서는 종종 K리그를 향한 왜곡된 시선으로 보도를 하며 축구팬들의 질타를 받았죠. 적어도 이 블로그에서는 K리그에 대해서 긍정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사람들에게 저평가된 K리그를 아끼고 사랑할 수 있다면 단 한 분이라도 자국리그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까 말입니다.

하지만 최근에 터진 K리그 승부조작에 대해서는 축구팬으로서 충격이 큽니다. 지금까지 K리그를 좋아하면서 가장 실망했던 순간입니다. 자기가 응원하는 팀이 패하거나 우승에 실패한 것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1983년 출범했던 K리그의 29년 역사에 오점을 남긴 것은 분명합니다. 텅 빈 관중 및 수비축구 논란, 그라운드에서의 불미스러운 일을 뛰어넘는 커다란 위기입니다. 일각에서 K리그 중단을 운운하거나 '공멸'이라는 단어까지 등장할 정도로 말입니다.

K리그 승부조작은 축구장에서 '짜고 치는 고스톱'이 벌어졌거나 또는 계획된 시나리오가 있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브로커들이 선수들을 돈으로 끌어들여 승부조작을 노리면서 불법 사설 도박에 참여했습니다. 그 선수들은 돈의 유혹에 빠지면서 승부 조작을 시도하며 동료 선수까지 이용하려 했습니다. 이미 몇 명은 구속되었고 지난 30일에는 승부조작 혐의를 받았던 정종관(2007년까지 전북 소속. 현 서울 유나이티드)이 자살했던 소식이 매스컴에 보도됐습니다. 9시 뉴스에서 메인급으로 보도되었던 이슈죠. 축구에 관심없는 분들이 K리그 승부조작 사실을 잘 알고 있을 정도 입니다. K리그를 향한 부정적인 인식이 확대되고 말았습니다.

우리들이 축구를 좋아하는 이유는 다양합니다. 그 중에서 송재익 캐스터가 과거 A매치 한일전에서 이민성이 역전골을 넣을때 '각본없는 드라마'라고 외치면서 축구의 예측 불가능한 매력을 강조했던 사실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흔히 축구에서는 '공은 둥글다'는 말이 있습니다. 약팀이 강팀을 제압하거나 또는 극적인 명승부가 벌어지기 쉬운 스포츠죠. '천하무적' FC 바르셀로나도 올 시즌에 패했던 경기들이 여럿 있었습니다. 전력의 차이보다는 그라운드에서 90분 동안 수많은 땀방울을 흘리며 열정을 다했던 팀이 '승리'라는 보람찬 결과를 얻는 대표적 종목이 축구입니다. 축구를 경기장에서 보는 것이 재미있는 이유는 선수들의 노력 및 승리욕을 통해서 스포츠의 매력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K리그 승부조작은 그 노력이 빛 바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한 선수가 승부조작을 위해 경기 도중 쓸떼없는 행동을 하면 나머지 열명의 선수가 힘들어질 수 있고 팀이 승리하기가 어려워집니다. 현재까지 검거된 승부조작 용의자들중에 대부분은 대전 시티즌 소속입니다. 그랬는지 대전 선수들은 지난 주말 전북전에서 골을 넣을때 '신뢰로 거듭나겠습니다'라는 내용의 현수막을 펼쳤습니다. 대전 레전드 최은성은 경기 종료 후 "살려고 뛰었다"라며 눈물까지 흘렸습니다. 하지만 이 선수들은 잘못이 없습니다. 대전의 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했던 선수들입니다. 승부조작 유혹에 넘어간 일부 선수들 때문에 마음 고생이 심합니다.

승부조작은 축구의 진정성을 깨뜨리는 행위입니다. '예측 불가능'이라는 축구의 본질적인 기능이 변질되는 경우죠. 입장료를 지불하여 경기를 보러오는 축구팬, 더 나아가 한국 축구를 기만하는 잘못된 일입니다. 자칫 K리그를 넘어 한국 축구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습니다. 중국과 말레이시아 축구는 과거 승부조작에 휘말리면서 쇠퇴했던 시절을 보냈고, 가깝게는 이탈리아 세리에A가 5년 전 승부조작이라는 시련을 맞이하면서 지구촌 축구팬들에게 충격을 줬습니다. 장본인이었던 유벤투스는 2004/05, 2005/06시즌 세리에A 우승 박탈 및 세리에B 강등 처분을 받았죠. 해외에서의 불미스러운 일이 한국의 K리그까지 이어졌죠.

물론 K리그 승부조작은 막을 수 있었습니다. 일부 선수들이 브로커와의 접촉을 피했거나, 애초부터 프로축구연맹이 승부조작 근절을 강하게 다스렸거나(벌금 5000만원 및 영구제명이라는 처벌 내용이 있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던), 불법 사설 도박 업체를 적발했어야 합니다. 승부조작을 일으킨 선수들만의 문제는 아니었던 셈이죠. 승부조작을 일으킨 세력을 뿌리 뽑을 필요가 있습니다. 모 선수는 승부 조작과 관련해서 조직 폭력배에게 맞았다는 언론 보도까지 전해졌습니다.

개인적 입장이지만, K리그 승부조작이 관중 감소로 이어질거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난 주말 K리그 12라운드 8경기에서는 8만 1,820명의 관중이 찾았습니다. 평균 1만 227.5명 입니다. K리그는 몇 시즌 동안 평균 관중 1만명대를 유지했습니다. 경기장을 찾는 고정팬들이 평균 1만명 이었다는 뜻입니다.(K리그는 관중 없다는 사람들의 주장이 잘못됐습니다.) 12라운드 관중 기록은 수원, 서울 같은 K리그의 대표적인 인기 클럽 및 1위팀 전북까지 원정 경기를 치렀던 점을 감안해야죠. 비록 승부조작이라는 시련을 맞이했지만 여전히 K리그를 좋아하는 분들은 많습니다. 물론 승부조작에 대한 충격을 느꼈겠죠.

하지만 승부조작은 대외적인 이미지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말았습니다. 정종관 자살 및 대전 선수들의 현수막, 최은성 눈물이 9시 뉴스 초반 타임에 등장할 정도로 말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K리그 승부조작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정몽규 총재를 비롯한 프로축구연맹 임원진은 30일 오후 기자회견에서 승부조작에 대한 공식 사과를 했습니다.

또한 모 선수가 실수하거나 또는 상대팀에게 대량 실점으로 무너지면 '승부조작 한 것 아니냐'는 주위의 따가운 시선을 받게 될 지 모릅니다. 자칫 현장에서의 신뢰 관계가 의심으로 바뀔지 모를 일입니다. 더 큰 문제는 시민구단 및 도민구단들이 주 수입원인 스폰서를 걱정해야 합니다. K리그 및 한국 축구가 더 이상 승부조작으로 상처를 받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무엇보다 이번 사건을 철저히 조사 및 응징하여 재발을 막아야 할 것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