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여론에서는 오는 29일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 FC 바르셀로나(이하 바르사)전을 앞두고 '산소탱크' 박지성(30,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이하 맨유)을 향한 기대감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박지성이 유럽 최고의 축구 대회 결승전에 선발 출전하여 맨유의 우승을 이끄는 시나리오를 많은 사람들이 바라고 있죠. 선수 본인의 꿈이자 목표이기도 합니다. 지난 두 번의 챔피언스리그 결승에서 웃지 못했던 산소탱크가 웸블리에서 보람찬 미소를 지을지 주목됩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박지성이 바르사전에 선발 출전할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2007/08시즌, 2008/09시즌 결승전에 비하면 기정 사실이나 다름없습니다. 현지 언론에서도 선발 출전을 예상하고 있죠.(아스널 에이스 파브레가스까지) 2007/08시즌 결승 첼시전에서는 골 결정력 부족을 이유로 18인 엔트리에서 제외되었고, 2008/09시즌 결승 바르사전에서는 선발 출전의 꿈을 이루었으나 경기 직전까지 장담할 수 없는 분위기였죠. 카를로스 테베스(현 맨체스터 시티) 부진이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죠. 그래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현 레알 마드리드)가 4-3-3의 최전방 공격수로 올라갔고 박지성이 오른쪽 윙 포워드로 뛰었죠.
[사진=박지성 (C) 맨유 공식 홈페이지 프로필 사진(manutd.com)]
그런데 올 시즌은 다릅니다. 선발 출전이 예상되는 이유들이 여럿 있습니다. 첫째는 강팀에 강한 선수이며, 둘째는 챔피언스리그 및 월드컵에서 다져진 국제 경기 경험이 풍부하며, 셋째는 시즌 후반 페이스가 좋습니다. 넷째는 자신의 약점으로 지적되었던 공격력이 올 시즌에 업그레이드 되면서 수비형 윙어라는 콘셉트에서 벗어나 만능형 윙어로 진화했습니다. 다섯째는 바르사 공격 옵션들을 철저히 따라붙으며 커팅할 수 있는 수비력이 뛰어나며, 여섯째는 2007/08시즌 4강 바르사전에서 메시를 성공적으로 봉쇄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그리고 일곱번째는 맨유 역습에 없어서는 안 될 선수라는 점입니다.
특히 일곱번째 이유를 주목해야 합니다. 단언컨데, 맨유는 바르사전에서 선 수비-후 역습을 펼칠 것입니다. 레알 마드리드-아스널 같은 팀들도 '유럽 최강의 공격력'을 자랑하는 바르사 앞에서는 수비적으로 대응했습니다. 맨유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런데 맨유는 레알 마드리드-아스널과 달리 선 수비-후 역습이 기본 전술입니다.(레알 마드리드는 챔피언스리그에서 바르사전을 제외하면 공격축구였음) 공격 옵션들이 활발한 수비 가담 및 역습에 특화되어 있죠. 첼시를 시즌 후반에 3번이나 꺾었던 원동력은 선 수비-후 역습 이었으며 그 경험이 바르사전에서 유용할 수 있습니다.
박지성은 역습에 강한 선수입니다. 전방에서 후방 옵션에게 볼을 따내는 움직임이 능동적이며, 상대 미드필더들이 앞쪽으로 쏠렸을때 드리블 돌파로 질주하여 스스로 공격 기회를 만들어냅니다. 때로는 빈 공간쪽으로 움직이면서 상대 수비수를 자신쪽으로 유인한 뒤 동료 공격 옵션의 골 기회를 만들어줍니다. 넓은 활동 폭 및 왕성한 활동량에 힘입어 맨유 진영에서 상대 진영으로 넘어오는 움직임까지 자연스럽죠. 그리고 루니-발렌시아-에르난데스와의 호흡까지 잘 맞습니다. 정확한 종패스 및 빠른 타이밍의 볼 배급은 맨유의 역습 속도를 높이는 이점과 직결됩니다.
그런 박지성은 바르사전에서 골을 넣을 잠재력이 있습니다. 에르난데스는 바르사 센터백 피케-푸욜의 견제를 이겨내야 하며, 루니는 홀딩맨 부스케츠를 넘어야 합니다. 바르사 오른쪽 풀백 알베스가 공격 성향임을 상기하면, 박지성 쪽에 적잖은 공간이 열릴 수 있습니다. 에르난데스-루니가 최전방에서 바르사 선수들과 경합할 때, 박지성이 왼쪽 측면에서 박스쪽으로 돌진하여 과감히 슈팅을 날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질 수 있죠. 이러한 움직임은 올 시즌 8골을 넣었던 원동력 이었습니다. 그동안 동료 선수들을 도와주는데 초점을 맞췄다면 올 시즌에는 스스로 골 욕심을 부리며 경기 상황에 따라 예측 불가능한 공격력을 발휘했습니다.
물론 바르사도 박지성을 놓치지 않을 것입니다. 어쩌면 알베스가 박지성 봉쇄 임무를 맡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알베스 오버래핑이 조용하면 바르사 공격 분위기가 다운될 수 있습니다. 빌드업 속도가 느려지기 때문이죠. 오른쪽 윙 포워드 페드로가 후방과의 연계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사비-이니에스타에 의존하는 공격력을 일관할지 모릅니다. 왼쪽 풀백으로 출전할 수 있는 아비달-막스웰-아드리아누는 몸 상태, 수비력, 경기 집중력에 리스크가 있기 때문에 발렌시아와의 경합을 이겨낼지 의문입니다. 그래서 알베스 공격력은 바르사에게 중요하지만 역의 관점에서는 박지성 공격력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박지성은 수비시 알베스를 막아야 합니다.
바르사 파상 공세가 예상되는 현 상황에서 맨유가 공격으로 맞대응하면 웸블리에서 장렬하게 전사할지 모릅니다. 맨유의 약점은 바르사 특유의 빠른 공격 및 비야-메시-사비-이니에스타 등을 봉쇄할 수 있는 카드가 마땅치 않습니다. 측면에는 박지성-발렌시아 같은 수비력이 뛰어난 윙어들이 있지만 문제는 중원입니다. 긱스는 수비력이 강한 콘셉트가 아니며(스캔들 논외), 캐릭은 실수가 잦습니다. 플래처는 부상 및 컨디션 저하로 그동안 너무 쉬었습니다. 박지성-루니-발렌시아 같은 공격 옵션들의 수비 가담이 적극적이어야 합니다.
긱스-캐릭-플래처가 동시 선발 출전할지는 의문입니다. 맨유가 4-3-3으로 나서면 세 선수가 허리를 책임지겠지만, 현실적으로는 루니-에르난데스 투톱을 활용한 4-4-2가 유력합니다. 루니가 쉐도우로서 미드필더진과 에르난데스 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하면서 중원의 수비력을 보완할 것이며, 박지성-발렌시아로 짜인 좌우 윙어들도 수비력이 중요합니다.(수비력이 약한 나니는 선발 제외가 유력) 아마도 퍼거슨 감독은 캐릭의 중원 파트너로 긱스를 택할지, 아니면 플래처를 낙점할지 이 시간에도 고민할지 모릅니다. 박지성-루니-발렌시아는 적극적으로 수비에 가담하면서 단번에 역습을 노리며 바르사와 맞서야 하는 상황이죠. 산소탱크의 선발 출전은 기정 사실이나 다름 없습니다.
특히 박지성은 공격과 수비에 걸쳐 많은 임무를 부여 받고 있습니다. 골을 넣어야 한다는 책임감, 맨유의 역습을 주도하는 역할, 부지런한 움직임, 알베스 봉쇄 및 협력 수비 등을 꼽을 수 있죠. 그동안 강팀과의 경기에서 자주 보여줬던 임무들이지만 상대는 바르사이며 자신의 앞에는 알베스가 있습니다. 만약 박지성이 버티지 못하면 알베스가 공격쪽에서 활개를 치면서 비야-메시-페드로 같은 선수들이 틈틈이 골 기회를 노릴 것입니다. 맨유에게는 안좋은 시나리오죠.
한 가지 다행인 것은, 박지성은 2008/09시즌 챔피언스리그 16강 1차전 인터 밀란전에서 '세계 최고의 오른쪽 풀백' 마이콘을 성공적으로 봉쇄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마이콘은 브라질 대표팀에서 알베스를 제치고 주전을 확보했던 인물입니다. 그런 박지성은 맨유 챔피언스리그 우승의 키 플레이어 입니다. 어쩌면 박지성 활약상 및 벤치의 산소탱크 활용법이 결승전 결과를 좌우할지 모릅니다. 박지성은 맨유 우승 과정에 없어서는 안 될 선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