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가 14일 블랙번 원정에서 1-1 무승부를 기록하면서 올 시즌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달성했습니다. 하지만 '산소탱크' 박지성은 출전 선수 명단에서 제외됐습니다. 함께 결장했던 에드윈 판 데르 사르와 함께 관중석에서 경기를 바라봤죠. 지난 9일 첼시전에서 맨유 승리를 이끄는 맹활약을 펼친 것을 비롯 시즌 후반 맨유의 오름세를 주도했다는 점에서 블랙번전 18인 엔트리 제외는 예상치 못했던 시나리오 였습니다. 주말에 산소탱크가 뛰기를 바랬던 국내 축구팬들에게 아쉬움이 남았던 경기였죠.
박지성 명단 제외는 2007/08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 첼시전을 떠올리게 합니다. 당시 챔피언스리그 8강 및 4강 1~2차전 선발로 출전하며 맹활약을 펼쳤지만 첼시전에서는 골 결정력 부족을 이유로 18인 엔트리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습니다. 그 이후에는 명단 제외가 여러차례 있었지만 대부분은 로테이션 성격이 짙었죠. 이번에 명단에서 제외됐던 블랙번전은 맨유가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결정짓는 특수성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블랙번전 결장은 2007/08시즌 첼시전과는 다른 의미입니다.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사진=박지성 (C) 맨유 공식 홈페이지 프로필 사진(manutd.com)]
'나니가 침체였던' 맨유의 블랙번전 무승부, 박지성 존재감 컸다
많은 사람들은 박지성의 블랙번전 결장 원인을 체력 안배로 거론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햄스트링 부상에서 돌아온지 40여일 동안 엄청난 에너지를 쏟았습니다. 지난달 2일 웨스트햄전부터 지난 첼시전에 이르기까지 맨유가 소화했던 11경기에서 7경기를 선발 출전했습니다. 나머지 4경기 중에 3경기였던 풀럼-뉴캐슬-에버턴 같은 약체와의 경기에서는 휴식을 취했습니다. 샬케와의 챔피언스리그 4강 2차전은 자신을 비롯한 주전 9명이 선발에서 제외되거나 결장했습니다. 그런 박지성은 지난 1일 아스널전에서 체력적으로 지친 상태에서 경기에 임했죠. 그 이후 첼시전에서 풀타임 종횡무진 활약 끝에 맨유의 승리를 이끌었지만 체력 소모가 심했던 것은 분명했죠.
박지성에게는 무리한 일정이 반갑지 않습니다. 무릎을 조심해야 합니다. 루니-비디치 같은 선수들에 비해 거의 매 경기 선발 출전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배경에는 무릎에 있었습니다. 오는 29일 챔피언스리그 결승 FC 바르셀로나전을 앞두고 무릎을 다치면 맨유 전력이 막대한 타격을 받습니다. 더욱이 햄스트링 부상에서 돌아온지 얼마 되지 않았죠. 첼시전까지 혼신의 힘을 기울였던 만큼, 블랙번전에서는 무릎을 조심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만약 블랙번전에서 어김없이 선발 출전했다면 부상 위험성이 커졌을지 모를 일입니다. 루니-비디치와 동일 선상에서 비교하는 것은 잘못된 일입니다. 에브라가 시즌 막판 부침에 시달렸던 것도 그동안 많은 경기에 출전했던 후유증과 연관이 깊습니다.
그리고 블랙번은 엄연히 약팀 입니다. 맨유의 프리미어리그 우승이 결정되는 상징성이 있었지만 상대팀 전력은 취약합니다. 이번 경기 이전까지 리그 15위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판 데르 사르 대신에 쿠쉬착을 골키퍼로 기용하면서, 최근 경기력이 떨어진 나니에게 선발 출전 기회를 맡기는 약간의 여유를 부렸습니다. 어떤 관점에서는, 박지성보다는 나니가 파괴적인 윙어로서 골 생산을 연출하는 기질이 강했다는 주장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공격 포인트를 보더라도 박지성보다는 나니가 더 많습니다.(나니는 리그 도움 1위) 약팀과의 경기에서는 박지성이 아닌 나니가 블랙번전 선발 출전에 적합할 수 있다는 의견도 충분히 제시될 수 있죠. 이를 요약하면 '전술적 선택' 입니다.
하지만 그런 주장에는 이러한 반론을 제기하고 싶습니다. 박지성은 약팀과의 경기에서도 강했습니다. 지난해 11월 블랙번전에서 골을 넣었던 경험을 봐도 말입니다. 그동안 강팀을 상대로 맹활약 펼쳤던 이미지가 강했을 뿐, 베르바토프처럼 약팀과 강팀을 가려가면서 경기력 편차가 큰 선수는 아닙니다. 누구와 상대하든 자기 몫을 충실히 이행했습니다. 나니와 유형이 다른 윙어지만 지금까지 팀 플레이어로서 구김살 없는 활약을 펼쳤습니다. 또한 박지성의 최근 폼은 나니보다 더 좋습니다. 지난 40여일 동안 맨유의 중요한 경기에서 선발 출전을 도맡았거나(박지성) 또는 입지가 좁아졌던(나니) 결정적 차이는 폼에 있었습니다. 나니는 시즌 후반에 접어들면서 경기력 난조에 빠졌습니다.
굳이 전술적 선택이라면, 블랙번전에서는 박지성이 아닌 나니가 선발 제외되는 것이 맞습니다. 발렌시아와 측면에서 균형을 맞추는 특성에서 말입니다. '좌 나니-우 발렌시아' 측면 조합은 블랙번전을 비롯한 그동안의 경기에서 파괴력이 반감되는 문제점을 남겼습니다. 두 명의 윙어는 날카로운 크로스가 무기입니다. 하지만 나니는 오른쪽에 있을때에 비해 왼쪽에서 크로스 타이밍이 늦어지면서 공격 활로를 못찾는 단점이 나타났습니다. 오른쪽 측면에서는 전방쪽으로 얼리 크로스를 띄우며 골을 엮었지만 왼쪽에서는 그렇지 않죠. 양발 크로스가 가능하지만 특히 오른발이 빠르고 정확합니다. 그런데 왼쪽에서는 오른발을 활용하기에는 크로스를 비롯 침투 패스 연결이 매끄럽지 못합니다. 또한 나니는 왼쪽보다는 오른쪽 윙어로서 공격력이 강했던 선수였습니다.
블랙번전에서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맨유는 블랙번전에서 1-1로 비겼지만 경기 내용은 답답했습니다. 루니-에르난데스가 최전방에서 원투패스를 주고받았고 발렌시아까지 공격에 적극 가담하면서 줄기차게 크로스를 띄웠지만, 나니가 왼쪽에서 공격의 균형을 맞추지 못했습니다. 발렌시아가 크로스 위주의 공격을 펼쳤던 활약상이 자신의 장점과 중복되었죠. 그래서 패스 위주의 공격을 펼쳤지만 상대 밀집 수비를 뚫는 침투패스의 과감함이 부족했고 전반적인 공격 전개 속도가 늦었습니다. 전반 44분에는 에르난데스-루니가 최전방에서 2대1 패스를 주고 받은 뒤, 나니가 아크 왼쪽에서 볼을 터치하여 오른발 슈팅을 날렸던 것이 너무 윗쪽으로 뜨고 말았습니다. 그 장면을 봐도 공격의 완성도를 키우겠다는 의지가 부족했습니다.
맨유가 비겼던 블랙번전은 박지성이 필요했던 경기였습니다. 박지성-발렌시아 측면 콤비의 활동 반경이 뒷쪽으로 쏠리면, 밀집수비를 형성했던 블랙번 선수들을 앞쪽으로 끌어내리면서 박지성-발렌시아가 상대 측면 옵션 뒷 공간을 노렸을지 모르죠. 특히 박지성은 경기 상황에 따라 상대 박스쪽으로 접근하면서 과감히 슈팅을 시도하거나 동료 선수에게 종패스를 밀어줄 수 있었습니다. 근래 맨유에서 공격력이 부쩍 강해진 것도 이 때문이죠. 만약 박지성이 분전했다면 루니-에르난데스 투톱쪽으로 시선이 모였던 상대 압박을 자신쪽으로 유도하는 효과가 나타날 것입니다. 상대 수비 밸런스가 붕괴 될 수 있었죠. 하지만 박지성이 출전하기에는 무릎 부상 우려 및 체력 저하가 불안 요소로 작용했습니다. 박지성에게는 블랙번전 보다는 FC 바르셀로나전이 더 중요했습니다.
굳이 중요성을 따지자면, 맨유에게 있어 블랙번보다는 첼시전이 더 컸습니다. 당시 첼시전은 '실질적인 리그 결승전'으로 꼽혔죠. 첼시전에서 승리하면 리그 우승을 99% 굳히는 순간 이었는데 결국 박지성이 해냈습니다. 블랙번전 명단 제외에 연연할 필요가 없습니다. 또한 박지성은 FC 바르셀로나전 승리의 아이콘으로 거듭나야 맨유가 유럽 챔피언에 오를 수 있죠. 나니는 왼쪽 윙어로서 제 구실을 못할 가능성이 다분합니다. 고질적인 수비력 불안에 의해 알베스에게 뒷 공간을 내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역할을 박지성이 해야 합니다.(왼쪽 윙어로 출전할 경우) 결국, 박지성의 블랙번전 결장은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라는 명분이 주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