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 국적의 윙어 루이스 나니(25,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이하 맨유)의 입지 약화는 이미 예고된 시나리오 였습니다. 박지성-안토니오 발렌시아의 부상 복귀로 나니의 활용 빈도가 낮아진 것은 분명합니다.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8강 1차전 첼시 원정, 4강 1차전 샬케 원정 선발 제외가 그 이유죠. 첼시 원정 이전이었던 지난 2일 웨스트햄전에서는 후반 42분에 교체 투입했습니다. 그래서 현지 언론에서는 나니가 팀 내에서의 비중이 낮아진 것을 이유로 이적설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레알 마드리드, AC밀란, 인터 밀란이 그 대상입니다.
물론 나니가 주전 경쟁에서 밀렸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지난 17일 맨체스터 시티(이하 맨시티)전, 20일 뉴캐슬전, 23일 에버턴전에 선발 출전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맨시티전은 웨인 루니가 징계로 결장했고 하비에르 에르난데스는 휴식 차원에서 선발 제외 됐습니다. 뉴캐슬-에버턴전은 박지성이 체력 안배를 이유로 결장했죠. 그리고 챔피언스리그 8강 1차전, 4강 1차전은 박지성-발렌시아 조합이 측면을 담당했습니다. 나니는 올 시즌 기량이 만개했지만 맨유의 어쩔 수 없는 로테이션 멤버였으며, 박지성-발렌시아 복귀의 피해자 였습니다.
[사진=루이스 나니 (C) 맨유 공식 홈페이지 프로필 사진(manutd.com)]
'포텐 터진' 나니, 어쩔 수 없는 로테이션 멤버
나니는 2007년 여름 프리미어리그 진출 이후 올 시즌 최고의 활약을 펼쳤습니다. 프리미어리그 30경기 9골 18도움을 올렸으며 특히 도움 부문에서는 파브레가스(아스널, 14개)를 밀어내고 1위를 기록중입니다. 또한 나니의 존재감은 스탯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지난해 1월부터 팀 플레이에 눈을 뜨면서 그동안 부족했던 이타적인 기질이 제법 성숙해졌고, 측면에서 양질의 볼 배급을 연결하며 공격 옵션들의 골 역량을 키우고 상대 수비에게 부담을 안겨주는 아우라를 자랑했습니다. 윙어로서의 득점력 및 킥력까지 겸비했죠. 올 시즌 맨유 선수중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친 인물 중에 한 명인 것은 분명합니다.
이러한 나니의 활약상은 2006/07시즌의 호날두(레알 마드리드)를 보는 듯 합니다. 당시 호날두는 포르투갈 출신 미완의 대기에서 벗어나 맨유의 중심이자 프리미어리그 No.1으로 도약했죠. 프리미어리그 선수협회(PFA) 올해의 선수상 수상이 이를 증명합니다. 맨유가 '호날두 시프트'로 불리우는 호날두 중심의 공격 전술을 즐겨 구사했던 것도 이때부터 였습니다. 개인기 및 탐욕이 콘셉트였던 호날두를 팀의 주연으로 올리며 공격력 업그레이드를 시도했던 퍼거슨 감독의 의도가 프리미어리그 3연패 및 챔피언스리그 우승에 힘입어 꽃을 피웠죠. 호날두의 전례라면, 나니는 현 시점에서 팀의 에이스가 되었어야 할 선수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맨유는 누구도 팀의 중심이 아닙니다. 호날두는 2년전에 떠났고, 지난 시즌 맨유의 득점력을 책임졌던 루니는 올 시즌 베르바토프-에르난데스의 골 역량을 도와주는 역할로 전환했습니다. 베르바토프는 올 시즌 리그 득점 1위에도 불구하고(약팀 경기에 골이 많은 비효율적인 스탯) 벤치 멤버로 전락했고, 그런 베르바토프를 벤치로 밀어낸 에르난데스도 에이스라고 치켜 세우기에는 어색합니다. 만약 나니가 맨유 공격의 절대적인 존재였다면 챔피언스리그 8강 1차전, 4강 1차전에서 선발로 뛰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퍼거슨 감독은 박지성-발렌시아를 중용했죠. 굳이 맨유의 중심을 꼽으라면, 퍼거슨 감독입니다.
맨유는 호날두가 에이스로 군림했던 시절에 비해 선수층이 결코 화려하지 않습니다. 올 시즌에는 주력 선수들이 줄 부상 및 부진에 시달렸던 어려움이 있었죠. 그럼에도 맨유는 퍼거슨 감독에 의해 철저한 '팀 플레이'로 무장하며 꾸역꾸역 승점을 챙겼습니다. 특정 선수 존재감에 치우치지 않고 모두가 단합하여 성과를 쌓아올리는 조직력의 팀으로 변신했습니다. 나니의 경우에는 올 시즌 스탯이 화려했지만 그 기반에는 팀 플레이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자신이 밀어준 패스 또는 크로스를 동료 선수가 골로 화답하거나, 또는 동료 선수가 밀어준 골 기회를 마무리짓거나, 연계 플레이로 상대 수비 뒷 공간을 허무는 플레이들이 거의 매 경기에 유기적으로 진행됐습니다.
특히 박지성-발렌시아의 복귀는 퍼거슨 감독이 상대팀에 맞게 '맞춤형 전술'을 활용하는 이득을 안겨줬습니다. 일정한 스쿼드가 아닌, 상대팀 약점을 물고 늘어질 수 있는 변헝적인 스쿼드로 맞설 수 있게 됐죠. 그 일환 중에 하나는 긱스의 중앙 미드필더 변신 이었습니다. 박지성-발렌시아가 부상 후유증 없이 돌아왔다는 점, 그동안 맨유의 중원이 취약했던 특징이 서로 맞물리며 긱스의 포지션 전환이 불가피 했습니다. 그래서 첼시전에서는 선 수비-후 역습이 가능했고, 샬케전에서는 점유율 축구로 상대의 허를 찔렀습니다. 그 중심에는 긱스가 능수능란하게 경기를 조율했고 박지성-발렌시아가 경기 상황에 맞게 다양한 역할을 소화했죠. 두 명의 윙어는 공격과 수비에서 다양한 역할을 소화할 수 있는 선수들입니다.
그런데 나니는 박지성-발렌시아처럼 수비력이 강한 윙어가 아닙니다. 지난 1년 동안 수비 가담이 부쩍 좋아지면서 협력 수비에 자신감을 얻었지만, 박지성-발렌시아에 비하면 상대 선수를 집요하게 따라다니거나 볼을 따내는 면모는 아직 숙달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첼시전에서는 보싱와-애슐리 콜의 오버래핑을 봉쇄할 적임자가 되지 못했고, 샬케전에서는 상대팀의 강점인 빠른 역습을 차단하기에는 공격적인 성향이 치우치는 콘셉트와의 부조화가 걸림돌 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퍼거슨 감독의 전술적 선택에 의해 중용받지 못했습니다.
나니의 공격력은 박지성-발렌시아보다 부족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지난 23일 에버턴전 부진이 퍼거슨 감독에게 안좋은 인상을 심어주게 됐죠. 당시 왼쪽 윙어로 출전했으나 루니-에르난데스에게 압박이 집중된 상대 수비를 자신쪽으로 유도하지 못하고 수동적인 움직임을 취했던 것이 화근입니다. 올 시즌 오른쪽 윙어로 많은 경기에 모습을 내밀었던 감각적인 문제, 그동안 많은 경기에 출전했던 체력적인 문제를 꼽을 수 있습니다. 그런 나니의 또 다른 습관은 왼쪽이 아닌 오른쪽 윙어로서 극강의 공격력을 자랑했습니다. 오른발로 얼리 크로스를 띄우는 타이밍이 오른쪽에서 빠르며 왼쪽에는 박지성이 있습니다. 문제는 오른쪽이 '수비력이 강한' 발렌시아의 자리입니다. 발렌시아도 나니못지 않게 크로스가 뛰어난 윙어입니다.
물론 나니는 베르바토프처럼 주전 경쟁에서 밀렸다고 볼 수 없습니다. 샬케 원정 이전까지는 3경기 연속 선발 출전했습니다. 적어도 베르바토프처럼 '위기의 남자'는 아니라는 뜻입니다. 박지성-발렌시아가 휴식을 취하는 경기라면 나니의 선발 출전은 가능합니다. 현실적으로는 세 명 모두 로테이션 멤버입니다. 하지만 나니는 호날두가 과거 맨유의 에이스로 성장했던 패턴을 밟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중요한 경기에서 선발 제외되었죠. 앞으로 남은 아스널전-샬케전(2차전)-첼시전은 그동안의 양상이 다를 수 있겠지만, 박지성-발렌시아 복귀에 의해 팀 내 입지에 타격을 입은 것은 분명합니다. 다른 관점에서는, 맨유가 선수들의 내부 경쟁 가열에 힘입어 시즌 후반에 오름세를 달리는 효과를 누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