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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K리그가 원하는 스토리는 '하위권 돌풍'

 

저마다 축구를 좋아하는 이유는 다르겠지만, 어느 리그든 특정 팀이 오랫동안 독주를 달리는 판세는 흥행적 관점에서 반가운 현상이 아닙니다. 여러 팀이 하나의 목표를 위해 살얼음 같은 경쟁을 펼쳐야 대중들의 주목을 끌기가 쉽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필요한 K리그도 같은 맥락입니다. 미디어 입장에서도 여러가지 소재의 뉴스 보도를 전하며 여론에 K리그를 알리고 더 나아가 흥행을 주도할 수 있죠.

지난해 제주의 돌풍이 대표적입니다. 2009시즌 14위의 성적을 2위로 끌어올렸죠. 그 해 10월까지 K리그 선두를 달리는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비록 챔피언결정전에서 K리그 우승에 실패했지만, 챔피언 FC서울 못지 않게 여론의 찬사를 받으며 행복한 시즌을 보냈습니다. 그동안 상위권과 이렇다할 인연이 없었기 때문에 14위에서 2위에 도약한 것 자체만으로 박수 받을 일입니다. 독일 분데스리가를 제외한 유럽 빅 리그에서 매우 드문 현상이죠. K리그는 상위권이 강팀들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을, 마음을 굳게 잡으면 기대 이상의 성과를 달성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제주가 축구팬들에게 알렸습니다.

그리고 올해는 '만년 하위권'으로 불렸던 대전이 K리그 선두를 질주하고 있습니다. 지난 3일 강원 원정에서 3-0 완승을 거두면서 K리그 1위(3승1무)에 진입했습니다. 아직 26경기가 남았지만, 그동안 하위권 이미지가 강했던 팀이 1위에 이름을 올린 것 자체가 매우 놀라운 일입니다. 대전이 지난달에 이겼던 울산, 경남은 지난해 6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던 팀입니다. 지난달 12일 '디펜딩 챔피언' 서울전에서는 1-1 무승부를 기록했죠. 지난해 5승7무16패로 13위에 머물렀던 팀이 이렇게 달라졌습니다.

대전의 돌풍 원인은 실리축구, 김성준 발굴, 박은호 효과로 요약됩니다. 왕선재 감독은 공격축구를 선호하는 지도자였지만 대전의 열악한 스쿼드에 접목하는데 한계를 실감하며 선 수비-후 역습 전술로 변신했습니다. 대부분의 선수들이 무명임에도 하나로 똘똘 뭉치면서 상대에게 지지 않으려는 승리욕을 발휘하며 실점 줄이기에 성공했습니다.(4경기 2실점) 중원에서는 김성준이 홀딩맨으로서 구김살 없는 활약을 펼치며 팀의 수비 조직력 향상에 기여했죠. 그리고 박은호는 강력한 프리킥 및 날카로운 슈팅을 앞세워 상대 골문을 흔들기에 바빴습니다. 4경기에서 4골을 터뜨리며 대전의 간판 공격수로 도약했습니다.

물론 대전의 오름세가 반짝일지, 아니면 시즌 끝까지 지속될지는 알 수 없습니다. 전자의 예는 2009시즌 초반에 1위를 달렸던 광주 상무(현 상주)이며, 후자의 예는 앞에서 언급했던 제주입니다. 대전은 엷은 선수층 및 스타 플레이어 부족 때문에 시즌 내내 좋은 성적을 유지할 수 있는 여건이 충족되지 못했습니다. 지금까지는 모든 선수들이 팀을 위해 헌신하며 자신의 역할에 충실했지만 무더운 여름에는 체력 소모가 크기 때문에 경기력에 기복이 나타날 여지가 존재하죠. 마라톤 레이스에 비유하면, 대전은 초반부터 상대팀들을 추월했습니다.

그러나 대전이 시즌 초반에 기대 이상 성과를 올린 것 자체만으로 축구팬들에게 신선한 이슈를 던져준 것은 분명합니다. 시즌전에는 서울-수원 같은 빅 클럽들이 'K리그 강력한 우승후보'라는 이름아래 여론의 엄청난 주목을 끌었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대전이 두 팀을 앞서고 있습니다. 만약 서울-수원이 레이스 시작부터 K리그 선두 경쟁을 펼치는 관계였다면 부정적 관점에서는 '뻔하다', '식상하다'는 반응이 나왔을지 모를 일입니다. 강팀은 강팀에 맞는 성적이 어울리지만, 예상치 못한 다크호스가 의외로 선전하면 강팀이 자극받으면서 순위 싸움이 가열 될 것이고 축구팬 입장에서 재미난 일들을 만끽할 수 있죠.

대전하면 떠오르는 키워드는 '축구 특별시' 입니다. K리그 6위 돌풍을 일으켰던 2003년 평균 관중 1위(1만 9.082명)를 기록하며 '퍼플 아레나(대전 월드컵 경기장)'를 중심으로 대전팬들이 많이 늘어났지만, 그 이후부터 이렇다할 성적을 거두지 못하면서 평균 관중이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올 시즌 초반에는 1위를 기록하면서 '쾌청한 봄철 날씨와 맞물려' 많은 홈팬들의 운집이 예상됩니다. 컵대회까지 포함하면 5월까지 7번의 홈 경기를 치르며 팬들의 열띤 성원에 힘을 얻을 수 있죠. 서울-수원에게 인기가 집중됐던 K리그의 흥행 열기가 대전까지 이어질 것으로 기대됩니다.

그런데 K리그는 대전만 다크호스로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또 다른 만년 하위권 팀이었던 상주는 5위(2승2무)에 있지만, 4경기에서 11골을 터뜨리며 K리그 최다득점 1위를 기록했습니다. K리그 최다 실점 2위(8실점)를 범할 정도로 수비가 정돈되지 못했지만, 다득점 경기를 펼치는 '화끈한' 팀 컬러로 무장했습니다. 특히 김정우는 4경기 연속골(6골) 및 K리그 득점 1위를 질주하며 상주 돌풍의 중심으로 우뚝 섰습니다. 지금까지 수비형 미드필더 이미지가 강했지만 올해는 공격수 변신에 성공하여 포지션 전환의 '좋은 예'로 거듭났죠. 여론에서는 '김정우vs박은호' 득점 1위 경쟁을 주목하면서 K리그의 새로운 흥행 스토리가 탄생했습니다.

상주의 오름세는 시즌 중반까지 지속 될 것으로 보입니다. 전현직 국가대표 선수들이 상무에 입대하면서 매년마다 스쿼드의 내실이 좋아졌습니다. 김정우를 비롯한 고참급 선수들이 9월경에 제대하면 전력 약화가 불가피하지만, 그 이전까지는 많은 승점을 획득하는 것이 6강 플레이오프 진출의 절대적 과제입니다. 결과적으로, 그동안 K리그에서 2009시즌 전반기 깜짝 돌풍 이외에 이렇다할 족적을 남기지 못했던 상주의 선전은 대전과 함께 올 시즌 K리그의 스토리 확장을 기여했습니다.

이러한 대전과 상주의 저력은 사람들이 K리그를 주목하는 이슈가 늘어났음을 의미합니다. K리그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아야 발전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꾸준히 스토리를 양산하고 때로는 포장하며 여론의 이목을 끌어야 합니다. K리그가 원하는 스토리는 '하위권 돌풍'이 아닐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