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축구

박지성, 첼시전 맹활약 기대되는 이유

 

문득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만약 박지성이 그때 첼시전에서 골을 넣지 못했으면 맨유에서 롱런을 보장받았을까?'라고 말입니다. 2008년 9월 21일 스탬포드 브릿지에서 진행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와 첼시의 경기는 박지성에게 매우 뜻깊었던 순간 이었죠. 4개월 전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 첼시전에서 18인 엔트리에 포함되지 못했지만, 이날 첼시전에서는 선발 출전하여 전반 15분에 선제골을 터뜨렸습니다. 첼시 골키퍼 페트르 체흐가 걷어낸 볼을 오른발 리바운드 슈팅으로 골망을 흔들었죠.

그런 박지성은 4개월 전 첼시전에서 골 결정력 부족을 이유로 결장했지만, 그 날의 골을 계기로 알렉스 퍼거슨 감독에게 공격력 향상의 눈도장을 찍었습니다. 더 나아가 맨유의 주전으로 거듭나는 결정타로 작용했죠. 크리스티아누 호날두(현 레알 마드리드)와 좌우 측면을 스위칭하면서 동료 윙어의 공격적 재능에 힘을 실어주는 밸런스 유지에 힘을 실어주면서 자신의 영향력을 높였죠. 그때의 활약상은 맨유 전술에서 쓰임새가 늘어나면서 지금까지 팀에 잔류할 수 있었던 명분으로 작용했습니다. 퍼거슨 감독에게 전술 이해도가 높다는 칭찬과 함께 말입니다.

[사진=박지성 (C) 유럽축구연맹 공식 홈페이지 프로필 사진(uefa.com)]

스탬포드 브릿지에 약한 맨유, 그러나 박지성이 있다

박지성은 오는 7일 새벽 3시 45분(이하 한국시간) UEFA 챔피언스리그 8강 1차전 첼시 원정을 앞두고 있습니다. 자신이 골을 넣었던 2008년 9월 21일 이후 2년 7개월 만에 스탬포드 브릿지를 밟을 예정입니다. 2009/10시즌, 2010/11시즌 프리미어리그 첼시 원정에서는 부상으로 결장했었죠. 맨유는 2002년 4월 이후(첼시전 3-0 승리) 스탬포드 브릿지에서 11경기 연속 무승(4무7패)에 시달렸습니다. 지난달 2일 첼시전에서는 1-2로 역전패를 당했죠. 스탬포드 브릿지의 악연을 끊으려면 박지성 같은 새로운 카드의 필요성을 느낄 것은 분명합니다.

물론 박지성은 햄스트링 부상 이후 복귀전이었던 지난 2일 웨스트햄전에서 68분 출전했습니다. 선수 보호 차원에서 첼시전 선발 출전 가능성을 낙관하기 어렵습니다. 나니가 후반 42분에 교체 투입하면서 첼시전을 위한 체력 안배를 했다는 특징과 함께 말입니다. 하지만 그 뜻은 퍼거슨 감독이 첼시전에 선발로 기용하겠다는 의지와 밀접합니다. 체력적인 부침이 있는 긱스가 웨스트햄전에서 풀타임 소화하면서 나니의 왼쪽 윙어 전환이 가능하고, 박지성은 4-2-3-1의 공격형 미드필더로 배치될 수 있습니다. 공교롭게도 박지성은 웨스트햄전에서 공격형 미드필더로 뛰었죠. 또한 퍼거슨 감독은 강팀과의 경기에서 4-2-3-1을 선호합니다.

박지성의 웨스트햄전 공격형 미드필더 출전은 퍼거슨 감독이 첼시전을 염두한 전술이 아닐까 싶습니다. 소위 '맞춤형 전술' 이죠. 리버풀이 지난 2월 3일 스토크 시티전에서 3백으로 나서면서 7일 첼시전을 대비한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당시 첼시로 이적했던 토레스에게 뒷 공간을 내주지 않기 위해 3백으로 전환하면서, 스토크 시티전에서 3백을 연습한 뒤 첼시전에 나섰습니다. 결과는 1-0 승리 및 토레스 봉쇄 성공이었죠. 맨유가 리버풀의 변형 전술을 따라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첼시의 전술 특징이 명확하기 때문에(다르게 표현하면, 읽히기 쉬운) 맨유의 맞춤형 전술 가능성에 힘이 실렸습니다.

맨유와 상대하는 첼시는 램퍼드-에시엔을 중원에 세울 것입니다. 최근에 4-4-2로 전환하면서 두 선수를 항상 중원에 기용했죠. 하미레스가 오른쪽 윙어로서 완전히 자리잡았고 미켈은 팀에 아무런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면서, 램퍼드-에시엔의 선발 출전은 기정 사실이나 다름 없습니다. 그런데 두 선수는 4-4-2의 중앙 미드필더로서 활동 부담이 늘어나는 불안 요소를 안게 됐습니다. 공격력에서는 여전한 클래스를 발휘했지만 수비 뒷 공간을 내주는 경우가 많아졌죠. 그래서 첼시 중앙 수비가 흔들릴 위험성을 안게 됐습니다. 지금까지는 루이스가 센터백으로서 잘 버텼지만, 정작 루이스는 챔피언스리그 규정상 맨유전에 뛸 수 없습니다.(벤피카에서 올 시즌 전반기 챔피언스리그 출전)

램퍼드-에시엔 조합의 문제점은 지난달 2일 맨유전에서 나타났습니다. 특히 전반전에는 두 선수의 포지셔닝이 좋지 못했습니다. 공격수 및 수비수와의 종간격이 벌어지면서 맨유 공격 옵션들의 침투 패스에 의해 뒷 공간이 뚫리는 문제점에 직면했죠. 그 결과는 첼시의 수비 집중력 약화로 이어졌고 전반 29분 루니에게 선제골을 허용했습니다. 후반전에 2골을 터뜨리면서 역전승을 거두었지만 경기 내용에서는 램퍼드-에시엔의 기대 이하 활약이 옥의 티 였습니다. 두 선수는 4-4-2보다는 4-3-3이 몸에 베였기 때문에 경기력 최대화가 그리 쉽지는 않습니다. 최근에는 4-4-2를 익히는 시간이 많아졌지만 여전히 수비 뒷 공간이 불안합니다.

그래서 맨유는 첼시전에서 램퍼드-에시엔을 공략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동안 스탬포드 브릿지에 약했기 때문에 상대팀 약점을 물고 늘어지는 것은 당연한 현상일지 모릅니다. 박지성의 웨스트햄전 공격형 미드필더 배치는 원톱 루니와의 활발한 연계 플레이를 통해 램퍼드-에시엔 라인을 공략할 수 있는 돌파구가 될 수 있습니다. 지난해 3월 21일 리버풀전이 대표적 이었습니다. 박지성이 4-2-3-1의 공격형 미드필더를 맡으면서 상대 더블 볼란치를 맡았던 루카스-마스체라노 사이의 공간을 파고들며 상대 중원 밸런스를 흔든 것과 동시에 맨유의 공격 분위기를 조성했고, 자신이 직접 역전골을 넣으며 팀의 2-1 승리를 이끌었습니다.

박지성과 루니는 오랫동안 호흡이 서로 잘 맞았습니다. 박지성의 공격형 미드필더 전환은 루니처럼 활동량-파워-슈팅-돌파 능력이 뛰어난 옵션이 있을 때 빛을 발했죠. 지난해 4월 3일 첼시전에서는 원톱으로 뛰었던 베르바토프가 제 구실을 못하면서 최전방과의 공존이 힘겨웠던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루니가 최근 12경기 9골로 포효하는 현 상황에서는 박지성이 공격에 활기를 띄우며 첼시 최전방까지 침투할 수 있습니다. 만약 박지성이 램퍼드-에시엔 사이의 공간을 파고들며 루니에게 전방 패스를 밀어주면, 두 선수 사이의 2차 패스 또는 침투 플레이가 가능하면서 골 기회를 얻게 됩니다. 박지성의 넓은 활동 폭, 부지런한 움직임, 빠른 타이밍의 볼 배급은 램퍼드-에시엔과 맞설 수 있는 무기가 됩니다.

또는 박지성이 왼쪽 윙어로 출전할 수 있습니다. 맨유가 4-4-2로 첼시 원정에 나서는 시나리오라면, 아직 경기력이 올라오지 못한 발렌시아 대신에 나니가 오른쪽 윙어로 뛸 수 있습니다. 그럴 경우, 박지성은 보싱와와 매지업을 펼치게 됩니다.(루이스에 이어 알렉스까지 결장하면 이바노비치가 센터백으로 전환할 듯) 오히려 박지성에게는 반가운 일입니다. 2008/09시즌 첼시와의 두 경기에서 보싱와의 공격력을 철저히 묶거나, 수비 뒷 공간을 뚫었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죠. 보싱와는 장기 부상 복귀 후 전체적인 페이스가 가라앉은 문제점이 있습니다. 박지성이 첼시전에 선발 출전할지, 어떤 역할을 맡을지는 알 수 없지만 맨유의 스탬포드 브릿지 악연을 떨칠 조타수가 될 수 있습니다. 산소탱크의 맹활약이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