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 드래곤' 이청용(23, 볼턴)은 최근 프리미어리그 4경기 연속 선발로 출전하지 못했습니다. 지난달 16일 위건전, 20일 풀럼전 같은 FA컵 경기에서는 풀타임 출전했지만 프리미어리그에서는 교체 출전 또는 결장했습니다. 오언 코일 감독에 의해 로테이션 형태로 기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시안컵 복귀 이후 팀에서의 활용 빈도가 줄은 것은 분명합니다.
최근에는 다니엘 스터리지가 첼시에서 볼턴으로 임대되면서 지난달 26일 뉴캐슬전까지 4경기 연속골을 터뜨렸습니다. '이청용vs스터리지'와의 경쟁 구도가 여론에서 형성된 분위기였죠. 6일 애스턴 빌라전이 끝난 뒤에는 '이청용은 후보로 밀렸다', '이청용, 벤치행 확정' 같은 의견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이청용 위기론'이 제기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이청용 입지가 축구팬들이 우려할 수준인지는 곰곰이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박지성이 겪었던 위기론이 이청용에게 대물림 되었다는 느낌입니다.
[사진=이청용 (C) 볼턴 공식 홈페이지 프로필 사진(bwfc.premiumtv.co.uk)]
이청용, 선발 출전보다 휴식이 더 필요했다
'위기론'하면 대표적인 인물은 박지성입니다. 근래에 유럽 진출했던 한국인 선수 중에서 팀 내 입지를 놓고 몇 시즌째 논란이 되었던 유일한 선수가 박지성이 아닐까 합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가 스쿼드 로테이션 시스템을 활용하지만, 베스트11에 익숙한 몇몇 여론에서는 로테이션에 대한 개념이 부족했습니다. 더욱이 맨유는 '철강왕' 호날두(레알 마드리드)를 제외하면 지난 몇 시즌 동안 미드필더진에서 붙박이 주전으로 뛰는 선수가 없었습니다. 엄청난 활동량 및 다양한 역할을 소화하는 포지션이기 때문에 퍼거슨 감독 입장에서 로테이션 활용이 불가피했죠.
박지성이 거의 매 경기 선발 출전에 어려움을 겪었던 또 하나는 무릎 이었습니다. 오랫동안 한국과 유럽을 오가며 대표팀 및 소속팀 일정을 병행하면서 무릎에 무리가 생겼죠. 특히 대표팀 일정을 마치고 소속팀에 돌아오면 컨디션 저하에 시달리며 경기력이 떨어졌죠. 그때는 어김없이 '박지성 위기', '박지성은 이적하라'를 주장하는 여론의 반응이 쏟아졌습니다. 하지만 박지성은 퍼거슨 감독에 의해 무리하게 기용 될 이유가 없었습니다. 경기에 투입할 수 있는 컨디션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무릎 보호 또한 같은 맥락이죠.
그럼에도 박지성 위기를 운운하는 일부 여론을 바라보면 선수를 보호하고 아끼는 마인드가 아쉬웠습니다. 박지성이 여전히 퍼거슨 감독의 믿음을 얻고 있다는 사실을 잊은 것 처럼 말입니다. 우리가 맨유 13번의 모습을 자주 보고 싶어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선수에게 무리한 욕심을 기대하는 것은 지나쳤다는 생각입니다. 산소탱크가 어떤 몸 상태인지 충분히 인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벤치성(박지성 비하용어, 공교롭게도 박지성이 알고 있음)'을 운운하거나, 입지와 관련된 즉흥적인 표현을 구사하며 위기론을 제기했죠. 올 시즌에는 박지성이 무르익은 공격력을 과시했고 이제는 많은 사람들의 그의 무릎 상태를 인지했기 때문에 위기론이 꺾였죠.
최근에 불거지는 이청용 위기론도 박지성과 닮은 구석이 있습니다. 이청용도 몸 상태가 힘들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불과 한달 전, 이청용이 지난 2년 동안 각급 대표팀 및 소속팀 일정을 소화하며 혹사에 시달렸던 행보를 걱정했습니다. 거듭되는 체력 저하에 의해 휴식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죠. 지난달 10일 A매치 터키 원정에서는 무릎 타박상으로 결장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일부에서' 이청용을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었습니다. 볼턴에서 선발 제외되는 빈도가 잦아졌죠. 그동안 볼턴의 에이스로 불리며 팀 내에서의 입지를 강하게 다졌던 것에 익숙했기 때문인지, 이청용 입지에 대한 의견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어떤 측면에서는 이청용은 볼턴의 주전 경쟁에서 밀렸을지 모릅니다. 리그 4경기 연속 선발 출전 제외가 결정적 이유죠. 그 사실 하나만으로 입지를 가늠할 수 있습니다. 스터리지-데이비스 투톱이 완성되었고 엘만더가 오른쪽 윙어로서 나름 준수한 활약을 펼치면서, 볼턴 입장에서는 이청용 공백을 최소화 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했습니다. 아시안컵 기간 중에는 리그 1무4패 및 5경기 1골에 그치는 빈약한 득점력에 시달렸지만 1월 이적시장 마감 당일에 스터리지를 임대 하면서 득점력 부담을 덜었습니다. 이청용의 영향력이 팀 내에서 줄어든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역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볼턴은 스터리지를 임대하면서 이청용을 무리하게 기용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체력 저하로 고생했던 선수를 시즌 끝까지 고생시키는 것은 선수를 보호해야 하는 책임감에서 자유롭지 못하죠. 당장의 성적도 중요하지만, 소속팀 선수가 오랫동안 그라운드를 누빌 수 있도록 배려할 수 있어야 합니다. 볼턴도 마찬가지 입니다. 이청용이라는 젊은 선수를 팀의 핵심 자원으로 키우면서 지금보다 업그레이드 된 선수로 거듭날 수 있도록 환경을 다듬었습니다. 코일 감독은 이청용에 대해서 눈앞의 이익(성적, 선발 출전)을 생각하지 않고 큰 틀(체력 안배)에서 접근했죠. '덕장'의 기질이 넘쳐 흐릅니다.
만약 볼턴이 아시안컵 이후 이청용 선발 출전을 강행했다면 성적이 좋아졌을지 의문입니다. 물론 이청용이 아시안컵 일정을 마치고 돌아온 뒤에는 무승의 늪에서 벗어났죠. 하지만 이청용 선발 출전 빈도가 끊임없이 늘었다면 또 다시 체력 저하에 시달렸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오히려 아시안컵에서 누적되었던 체력 문제까지 포함해서 엄청난 과부하를 안고 경기를 치렀을지 모릅니다. 경기력이 떨어지거나 부상 위험성이 커지는 것을 감수하며 뛰어야 합니다. 이청용 혹사를 걱정하는 여론의 우려는 점점 커졌겠죠. 더욱이 볼턴은 FA컵을 병행하며 8강에 진출했습니다. 이청용은 힘든 일정 속에서 시즌 후반기를 보냈겠죠.
이청용이 지난달 16일 위건전, 20일 풀럼전 같은 FA컵 경기에 풀타임 출전한 이유는 세 가지 측면이 있습니다. 첫째는 스터리지가 첼시 소속으로 FA컵 64강전을 뛰었기 때문에 규정상 잔여 경기까지 출전할 수 없으며, 둘째는 리그에서 선발 제외되면서 컨디션이 올라왔던 것, 세번째는 볼턴의 FA컵 우승 의지를 읽을 수 있습니다. 볼턴이 다음 시즌 유로파리그에 진출하려면 FA컵 우승이 필요합니다. 리버풀-선덜랜드와 중상위권을 유지중이기 때문에 리그 성적 만으로는 유로파리그 진출을 장담할 수 없죠. 얼마전 버밍엄이 칼링컵 결승전에서 아스날을 제치고 우승한 것은 볼턴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이청용이 FA컵에서 선발로 중용 받는 것은 팀 내 입지 하락과 관련 없습니다.
지금도 이청용 존재 여부 따라 볼턴 경기력이 좌우됩니다. 볼턴은 이청용처럼 예측 불가능한 경기를 전개하며 정교한 기교를 발휘할 공격 옵션이 없죠. 선수들의 무게 중심이 높으면서 피지컬이 발달되었기 때문에 여전히 롱볼에 습관을 들였고, 이청용이 가세하는 패스 게임에 의해 공격의 다양성이 늘어났습니다. 올 시즌 '볼턴 극장'이 잦았던 것도 이 때문입니다. 또한 엘만더는 이청용 처럼 오른쪽에서 임펙트 넘치는 공격을 전개하는 성향이 아닙니다. 볼을 따내는 움직임에 능동적이지만 경기 흐름을 조절하거나 공격의 창의성을 키우는 기질이 부족하죠. 측면보다는 중앙에 익숙한 선수입니다. 그래서 볼턴 공격이 때때로 답답할 때가 있죠. 이청용이 주전 경쟁에서 밀렸다고 볼 수 없는 이유입니다.
이청용은 선발 출전보다 휴식이 더 필요했던 선수입니다. 최상의 컨디션을 되찾으며 경기 감각을 회복하고, 본래의 장점을 발휘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잠재력 및 재능을 놓고 보면 지금보다 더 성장할 선수이기 때문에 코일 감독 입장에서 아낄 필요가 있습니다. 그동안 많이 뛰었기 때문에 더 이상 무리하게 기용되어서는 안되죠. 박지성 위기론에서 배웠던 교훈처럼, 여론에서는 이청용의 현 상황을 인지하여 선수 보호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청용 입지를 흔드는 것은 자칫 선수 본인에게 부담을 줄지 모릅니다. 박지성 위기론이 그랬던 것 처럼, 이청용 위기론은 비건설적이고 그저 무의미한 논란에 불과할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