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가 라이벌 리버풀에게 패하면서 프리미어리그 우승 레이스에 적신호가 켜졌습니다. 스코어를 비롯 경기 내용에서 상대팀에 일방적으로 끌려다니는 졸전을 펼쳤습니다. 원정 경기라는 부담감이 있었지만 애초 승리 가능성을 확신할 수 없었습니다.
맨유는 6일 저녁 10시 30분(이하 한국시간) 안필드에서 진행된 2010/11시즌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29라운드 리버풀 원정에서 1-3으로 패했습니다. 리버풀의 오른쪽 윙어로 출전했던 디르크 카위트에게 전반 33분, 전반 38분, 후반 19분에 해트트릭을 허용했죠. 세 번의 실점은 카위트가 박스 안에서 골 냄새를 잘 맡았던 장면 이었지만 맨유에게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후반 46분에는 하비에르 에르난데스가 만회골을 넣었지만 스코어를 뒤집기에는 발동이 늦었습니다.
이로써, 맨유는 리그 1위(17승9무3패, 승점 60)를 지켰지만 지난 2일 첼시전에 이어 리그 2연패에 빠졌습니다. 2위 아스날(17승6무5패, 승점 57)과의 승점은 4점에서 3점으로 좁혀졌습니다. 반면 리버풀은 볼턴을 제치고 6위(12승6무11패, 승점 42)에 오르며 빅4 재진입을 위한 희망의 끈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맨유, 중원 및 수비 불안에서 비롯된 리버풀전 1-3 패배
맨유는 리버풀 원정에서 4-4-2로 나섰습니다. 판 데르 사르가 골키퍼, 에브라-브라운-스몰링-하파엘이 수비수, 긱스-스콜스-캐릭-나니가 미드필더, 루니-베르바토프가 공격수로 출전했습니다. 비디치가 첼시전에서 경고 누적에 의해 퇴장 당하면서 브라운이 그 공백을 대신했죠. 이에 리버풀은 4-2-3-1로 맞섰습니다. 레이나가 골키퍼, 아우렐리우-스크르텔-캐러거-존슨이 수비수, 루카스-제라드가 더블 볼란치, 막시-메이렐레스-카위트가 2선 미드필더, 수아레스가 원톱을 담당했습니다. 현지 언론에서는 3백을 예상했지만 달글리시 감독 대행은 본래의 포메이션을 그대로 활용했습니다.
우선, 맨유의 리버풀전 졸전이 예견되었던 이유는 체력 때문입니다. 지난 첼시와의 전반전에서 1-0으로 앞서면서 경기 내용까지 긍정적인 분위기를 연출했지만 후반전에 내리 2실점을 허용하면서 패했습니다. 체력 저하가 문제였죠. 지난 2주 동안 마르세유-위건-첼시-리버풀전을 치르는 '원정 4연전'에 돌입했는데, 몇몇 선수들의 부상을 안고 스케줄을 소화하면서 기존 선수들의 체력이 떨어졌죠. 이미 첼시전에서 그 문제점에 직면했고 리버풀전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전개 될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맨유는 4일, 리버풀은 7일 만에 경기를 치르기 때문에 체력은 일찌감치 리버풀의 우세였습니다.
또한 맨유의 포메이션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그동안 강팀과의 경기에서 4-2-3-1 또는 4-3-3을 활용했지만 첼시전 및 리버풀전에서는 4-4-2를 활용했습니다. 미드필더들이 부상 및 컨디션 저하로 신음중이기 때문에 강팀과의 경기에 최적화된 포메이션을 쓸 수 없는 겁니다. 박지성-발렌시아-안데르손이 부상으로 빠지면서 긱스-스콜스 같은 노장들의 출전 시간이 많을 수 밖에 없었고, 슬럼프에 빠진 캐릭이 여전히 선발 출전하는 현실입니다. 그래서 플래쳐가 첼시전에서 오른쪽 윙어를 담당했죠. 하지만 플래쳐는 리버풀 원정에서 컨디션 저하에 시달리며 선발에서 제외 됐습니다. 그래서 긱스-스콜스가 동시에 선발 출전했습니다.
[사진=리버풀전에서 부진했던 마이클 캐릭 (C) 맨유 공식 홈페이지 프로필 사진(manutd.com)]
플래쳐 선발 제외는 맨유가 리버풀과의 허리 싸움에서 밀리는 결정타가 됐습니다. 스콜스-캐릭이 메이렐레스-루카스-제라드와 맞서야 하는 현실이죠. 리그 3연패를 이끌었던 시절의 스콜스-캐릭이라면 짜임새 넘치는 공수 완급 조절 및 농익은 경기력으로 상대 중원을 괴롭혔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두 선수는 지난 시즌부터 페이스가 떨어지면서 압박이 무뎌지고, 수비 활동 공간이 좁아지는 문제점을 남겼습니다. 그래서 맨유와 상대하는 팀들은 스콜스-캐릭의 뒷 공간을 겨냥하는 빠른 침투 패스를 구사하는데 여념 없었죠. 플래쳐가 중원에 있었다면 커버링을 통해 수비 쪽에서 활기가 넘쳐흐르면서 이러한 문제점을 차단할 수 있었죠. 하지만 플래쳐가 없는 맨유의 중원은 허약합니다.
특히 캐릭의 부진이 문제였습니다. 캐릭은 경기 종료 후 <스카이스포츠>를 통해 양팀 최저 평점(4점)을 받을 정도로 활약상이 저조했습니다. 양팀 미드필더들 중에서 가장 많은 패스를 시도했지만(85개) 패스 미스 횟수는 19개 였죠. 더욱이 맨유는 경기 초반부터 리버풀과의 허리 싸움에서 밀렸습니다. 캐릭의 패스 대부분이 군더더기가 많았고 상대 중원 뒷 공간을 겨냥하는 연계 플레이가 효율적이지 못했음을 뜻합니다. 과거의 캐릭이었다면 빠른 원 터치 패스를 통해 경기를 컨트롤 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폼 자체가 떨어졌죠. 리버풀전에서도 그 흐름이 반영되면서 볼 키핑까지 저조했습니다.
(한 가지 납득이 되지 않는 것은, 캐릭이 얼마전 맨유와 3년 재계약을 맺었습니다. 지난 두 시즌 동안의 폼을 바라보면 과연 3년 재계약을 맺을 가치가 있는지 의문입니다. 맨유가 대형 선수 영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반증)
맨유의 긱스-스콜스 동시 선발 출전은 실전에 투입할 자원이 없다는 것을 뜻합니다. 30대 후반의 두 선수는 최근에 출전 시간이 늘어나면서 많은 체력을 소모했고, 상대 압박을 이겨내거나 촌철살인의 공격력을 과시할 힘이 떨어졌습니다. 캐릭이 슬럼프에 빠졌고 나니의 경기 당일 폼이 정상적이지 못했던 아쉬움과 맞물리면, 맨유는 미드필더들의 취약함을 안고 리버풀 원정을 치렀습니다. 더욱이 지난 2주 동안 4번의 원정을 치르면서 선수들의 체력이 고갈되었기 때문에 경기 내내 정상적인 폼을 발휘하기 어려웠습니다.
리버풀전 패인의 또 다른 원인은 비디치 결장 이었습니다. 퍼디난드-에반스까지 부상으로 결장했기 때문에 브라운의 선발 출전이 불가피했지만 그동안 경기 출전 횟수가 부족했습니다. 스몰링은 첼시전 페널티킥 허용처럼 경험 부족이 문제였죠. 두 명의 센터백이 모두 불안했고 스콜스-캐릭이 버텼던 중앙 미드필더까지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면서 맨유 선수들의 무게 중심이 후방쪽으로 밀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미드필더들이 자주 내려와서 경기를 펼치다보니 루니-베르바토프 투톱과의 간격이 벌어지면서 끝내 최전방이 고립되었죠. 후방이 튼튼하지 못했기 때문에 공격수가 부진했던 것은 당연한 현상입니다. 막시와 매치업을 펼쳤던 하파엘의 수비력도 만족스럽지 못했습니다.
맨유의 수비 불안은 리버풀의 포어 체킹에 흔들리는 장면으로 이어졌습니다. 수아레스-카위트가 맨유 진영 깊숙한 곳까지 압박을 펼치고 공을 따내기 위해 몸을 날리면서 맨유 후방의 빌드업이 늦어졌습니다. 그 상황에서 미드필더들이 뒷쪽으로 빠질 수 밖에 없었고 공격수와의 공존이 어려워졌죠. 리버풀의 전술적 입장에서는 포어 체킹이 3-1 승리의 원동력이 됐습니다. 쉴새없이 압박을 펼치면서 맨유 수비수들을 괴롭혔죠. 달글리시 감독 대행이 지난 첼시전에서 토레스 봉쇄를 위해 3백을 구사하는 맞춤형 전술로 재미를 봤다면, 이번 맨유전에서는 상대 수비 및 중원의 약점을 간파하는 포어 체킹으로 귀중한 승리를 올렸죠.
특히 전반 33분 카위트에게 선제골을 허용했던 장면은 맨유 수비가 얼마만큼 불안했는지를 여실히 증명했습니다. 수아레스가 박스 왼쪽 구석에서 개인기를 활용한 드리블 돌파로 골문을 공략할 때, 스몰링-하파엘-캐릭-브라운이 수아레스 개인기에 농락 당했고 이것이 카위트의 골로 연결됐습니다. 전반 38분에는 나니가 헤딩을 통해 공중볼을 맨유 골문 쪽으로 걷어낸 것이 카위트의 추가골로 이어지는 실책과 직결됐죠. 후반 19분 카위트의 세 번째 골 장면은 골키퍼 판 데르 사르가 수아레스의 프리킥을 완벽히 잡아내지 못한 것을 문제삼을 수 있죠. 수아레스의 슈팅 파워가 강했긴 하지만요. 그런데 그 장면도 수비 실수가 있었습니다. 카위트가 빠른 순발력으로 골문쪽을 파고 들 때 에브라가 뒷쪽을 놓쳤죠.
맨유가 걱정해야 할 또 다른 문제는 나니의 부상 입니다. 전반 46분 캐러거 태클에 의해 오른쪽 무릎쪽을 가격 당하면서 부상으로 교체 됐습니다. 통곡하여 눈물을 흘릴 정도로 부상 장면이 아찔했죠. 만약 부상이 심하면 오는 13일 FA컵 8강 아스날전에 어떤 선수가 윙어를 맡을지 의문입니다. 박지성-발렌시아의 부상 회복이 늦어지면 오베르탕-베베의 투입이 불가피합니다. 올 시즌 9골 15도움을 기록했던 나니의 결장이 길어지면 맨유가 공격력 불안에 시달릴 가능성이 큽니다. 복귀를 앞둔 박지성은 맨유가 리버풀전 졸전의 무거운 분위기를 떨칠 수 있도록 그라운드에서 산소탱크 특유의 활력을 발휘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