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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첼시 토레스, 맨유 오언을 닮아서는 안된다

 

첼시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를 2-1로 제압했지만, '맨유 킬러'였던 페르난도 토레스의 골은 터지지 않았습니다. 첼시 이적 후 4경기에서 무득점에 빠졌죠. 그 이전 리버풀 소속으로 몸담았던 4경기에서 3골을 기록했음을 상기하면, 팀을 옮기면서 폼이 안좋아졌음을 뜻합니다. 새로운 팀의 분위기 및 전술에 적응하는 단계가 있음을 감안하더라도 5000만 파운드(약 910억원)의 프리미어리그 최고 이적료 값어치를 해내야 하는 숙명에 있죠. 토레스에게 필요한 것은 골입니다.

우선, 토레스의 맨유전 경기 내용은 나쁘지 않았습니다. 지난달 23일 코펜하겐전에서도 나타났던 특징이지만, 동료 선수들과 공존하기 위해 이타적인 플레이에 의욕을 나타냈죠. 때로는 오른쪽 측면이나 2선에서 볼을 터치하면서 패스를 밀어주는 형태의 공격을 취했습니다. 그 과정에서는 아넬카-드록바 같은 공격 자원들이 최전방에 올라가 원톱 역할을 대신하는 스위칭을 시도했죠. 토레스의 최전방 고립을 피하기 위한 첼시의 공격 패턴 입니다.

[사진=페르난도 토레스-마이클 오언 (C) 유럽축구연맹 공식 홈페이지 프로필 사진(uefa.com)]

하지만 토레스는 패스의 완성도가 부족했습니다. 코펜하겐전에서 패스 정확도 52%(16/31개)에 그쳤다면 맨유전에서는 박스 근처 및 안쪽에서 6개의 패스미스를 범했습니다.(16/25개) 비디치-스몰링으로 짜인 맨유 센터백들의 집중 견제를 받으면서 볼 배급의 정확성이 떨어졌던 것이죠. 박스 바깥에서 이타적인 패턴에 자신감을 얻었지만 그렇다고 경기력이 완전히 달라진 것은 아닙니다. 빠른 스피드를 주무기로 상대 수비 뒷 공간을 파고들며 골을 터뜨리는 습관이 여전히 몸에 베였습니다. 골을 터뜨리는 패턴이 단순합니다. 문제는 그 특징이 상대 수비수들에게 읽혔고 특히 첼시 이적 이후 완전히 각인됐습니다. 토레스의 첼시 데뷔전 상대였던 리버풀이 3백으로 나선 것이 그 예죠.

토레스는 첼시 이적 후 4경기를 치렀습니다. 그 중에 프리미어리그에서는 리버풀-풀럼-맨유와 상대했죠. 공교롭게도 세 팀은 '토레스 봉쇄'에 주력했던 팀들입니다. 리버풀은 토레스에게 뒷 공간을 허용하지 않기 위해 3백으로 변형했고, 풀럼은 수비진과 미드필더진의 폭을 좁히는 집단적인 존 디펜스 형태를 유지하면서 토레스에게 향하는 볼 배급을 차단하는데 주력했습니다. 맨유는 비디치가 토레스를 밀착 마크하고 스몰링이 커버링을 펼치는 수비 전술을 취했죠. 앞으로 첼시와 상대하는 팀들도 토레스를 바짝 경계할 것입니다. 토레스가 골을 노리는 패턴은 단순하지만 골 기회를 허용하면 그때는 여지없이 흔들립니다. '한 방'이 무서운 골잡이라는 것이죠.

그래서 안첼로티 감독은 코펜하겐전 부터 토레스에게 연계 플레이를 주문하고 있습니다. 토레스가 최전방에서 골 냄새를 맡기에는 상대 수비진에 고립되면서 첼시의 공격 밸런스가 무너지고, 다른 동료 선수와의 호흡이 맞지 않기 때문에 토레스의 희생이 불가피 했습니다. 토레스가 그 패턴에 열심히 노력했던 것은 분명하지만 문제는 최전방에서 자신만의 임펙트(골)를 키우는 면모가 떨어졌습니다. 오히려 다른 선수들(코펜하겐전 아넬카, 맨유전 루이스)이 상대 박스쪽에서 필드 골을 터뜨렸죠. 어쩌면 토레스의 첼시 데뷔골은 축구팬들의 기대치에 비해 타이밍이 늦거나 또는 올 시즌 잔여 경기까지 많은 골을 터뜨리는데 어려움을 겪을지 모릅니다.

득점력 향상을 위한 해법은 있습니다. 이타적인 역량이 늘어난 현 시점에서는, 동료 선수들과 꾸준한 호흡을 맞추면서 볼 터치를 늘려야 합니다. 연계 플레이를 펼칠 수 있는 기회 및 시간이 많아지면서 슈팅 횟수를 키울 수 있는 이점이 작용하죠. 맨유전을 포함한 지난 두 경기에서 아넬카와 호흡이 무르익는 효과를 얻었지만, 좀 더 발을 맞추면서 골 욕심을 낼 수 있는 스스로의 돌파구를 찾아야 합니다. 어쩌면 올 시즌 잔여 경기가 자신의 공격력 업그레이드를 위한 '적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상대 수비수들에게 읽힌 현 시점에서는 공격력 변화가 절실합니다. 현대 축구는 '만능형' 공격수를 선호하는 것을 토레스가 인지해야죠.

그런 토레스가 교훈삼아야 할 대상은 맨유의 오언 입니다. 빠른 순발력으로 상대 수비를 개인기로 벗겨내거나 뒷 공간을 노리는 골 패턴이 서로 닮았기 때문이죠. 한때 리버풀을 대표했던 간판 골잡이, 잘생긴 외모, 잦은 부상,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위해 리버풀과 작별하고 다른 빅 클럽에 둥지를 틀었던 과정에서 공통점이 있습니다. 특히 오언은 2004/05시즌 리버풀에서 레알 마드리드(이하 레알)로 이적하여 39경기 14골을 기록했지만, 호나우두-라울과의 주전 경쟁에서 밀리면서 조커로 출전하거나 왼쪽 윙어로 좌천되는 불안한 팀 내 입지를 나타냈습니다. 이듬해 시즌에 뉴캐슬로 떠났지만 그때를 기점으로 끝없이 몰락했습니다.

토레스가 첼시에서 어떤 운명을 맞이할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첼시에서의 실패는 본인의 커리어에 결코 반갑지 않습니다. 5000만 파운드의 이적료 가치를 못했다는 이유로 '먹튀'라는 비아냥에 시달릴 수 있죠. 오언이 레알에서 성공하지 못한 것을 반면교사 삼아야 하는 이유는 공격력 업그레이드가 절실하기 때문입니다. 오언이 라울-호나우두에게 주전 경쟁에서 밀렸던 것은 자신의 장점이 특정 스타일에 국한된 것과 밀접했죠. 그나마 리버풀 시절에는 에밀 헤스키와 '빅&스몰' 형태의 투톱을 유지하면서, 헤스키가 공중에서 떨궈준 볼을 슈팅으로 받아내는 또 다른 형태의 공격 시도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레알은 리버풀과 엄연히 다른 팀이죠.

그나마 토레스가 당시의 오언보다 나은 점이 있다면, 앞으로 첼시에서 주전 공격수로 출전할 기회가 많다는 점입니다. 드록바의 대체자가 토레스이기 때문이죠. 첼시는 노령화된 스쿼드를 극복하기 위해 젊은 선수들의 수혈이 불가피하며 지난 1년 동안 토레스-루이스-하미레스 같은 선수들을 주력 선수로 활용했습니다.(첼시 자체에서 육성했던 영건들의 선발 출전 기회가 극히 적었지만) 오언이 호나우두-라울이라는 당대 최정상급 공격수와 경쟁했다면, 토레스는 '33세+슬럼프' 드록바와의 주전 경쟁에서 우위를 점했습니다. 토레스가 잘했다기 보다는 드록바의 올 시즌 폼이 안좋았죠. 그리고 로만 아브라모비치 첼시 구단주가 오래전부터 토레스를 좋아했던 것도 되짚어 볼 대목입니다.

또한 토레스는 첼시의 주연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리버풀에서 간판 골잡이로 활약했지만, 첼시에서는 그동안 자신과 인연이 멀었던 우승을 위해 심기일전이 불가피하죠. 드록바가 오늘날 첼시의 영광을 이끈 스타중에 한 명 이었다면, 토레스는 첼시의 미래를 짊어질 아이콘 입니다. 5000만 파운드의 이적료가 증명하죠. 지금의 행보가 순탄치 않은 것은 분명하지만, 다른 관점에서는 먼 훗날 세계 축구의 패권을 장악할 수 있는 성장통으로 볼 수 있습니다. 오언과의 닮은 꼴 행보에서 벗어나야 하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