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 드래곤' 이청용(23, 볼턴)이 볼턴의 FA컵 8강(6라운드) 진출을 공헌하며 소속팀에 없어선 안 될 존재임을 입증했습니다. 최근에는 2경기 연속 풀타임 출전하면서 아시안컵 이후에 떨어졌던 컨디션을 회복했습니다. 시즌 후반기 맹활약을 위한 자신감을 얻게 됐습니다.
이청용은 21일 오전 0시(이하 한국시간) 크레이븐 커티지에서 진행된 2010/11시즌 잉글리시 FA컵 16강(5라운드) 풀럼 원정에서 볼턴의 1-0 승리를 이끌었습니다. 전반 19분 풀럼 박스 안쪽에서 이반 클라스니치와 2대1 패스를 주고 받아 정면으로 쇄도했는데 앞선에 있던 상대 수비수에게 2차 패스가 걸렸습니다. 파트리스 무암바가 박스 오른쪽에서 볼을 걷어내면서 논스톱 슈팅을 날렸던 것이 브레데 항겔란트가 재차 걷었지만, 박스 중앙쪽에 자리잡던 클라스니치가 왼발 발리 슈팅으로 결승골을 터뜨렸습니다. 이로써, 볼턴은 3월 둘째주 주말에 버밍엄과 8강에서 격돌합니다.
'컨디션 회복' 이청용, 후반기 자신감 얻었다
볼턴은 풀럼 원정에서 4-4-2로 나섰습니다. 보그단이 골키퍼, 알론소-케이힐-휠터-로빈슨이 수비수, 페트로프-홀든-무암바-이청용이 미드필더, 케빈 데이비스(K. 데이비스)-클라스니치가 공격수로 출전했습니다. 리케츠가 지난 17일 위건전에서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시즌 아웃 되면서 로빈슨이 오른쪽 풀백으로 전환했고, 벤치 선수였던 알론소가 왼쪽 자원으로 나섰습니다. 야스켈라이넨-테일러-마크 데이비스(M.데이비스)-엘만더는 풀럼전 선발 제외로 휴식을 취했고, 나이트는 부상으로 결장했습니다. 최근 3경기 연속골을 터뜨렸던 스터리지는 한달 전 첼시 소속으로서 FA컵 경기를 뛰었기 때문에 대회 규정상 잔여 FA컵 경기에 출전할 수 없습니다.
경기 내용에서는 볼턴이 풀럼에게 밀렸습니다. 슈팅 5-16(유효 슈팅 3-7, 개) 점유율 49-51(%)의 열세를 나타냈죠. 점유율에서는 서로 비슷했지만 풀럼에게 많은 슈팅을 허용한 것이 문제였습니다. M.데이비스가 선발에서 제외되면서 중원을 거치는 패스게임이 매끄럽게 풀리지 않았습니다. 홀든-무암바가 시드웰-머피와의 허리 싸움에서 밀리면서 수비시의 위치선정이 불안했고 커버 플레이가 살아나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미드필더 장악 실패에 의해 풀럼에게 수없이 중앙 공격을 허용하면서 고비를 맞이했죠. 경기 초반에는 페트로프의 왼쪽 측면 돌파 및 크로스로 돌파구를 찾았지만 공격의 완성도가 떨어졌습니다.
볼턴의 또 다른 불안 요소는 왼쪽 이었습니다. 홀든-무암바가 풀럼에게 수비 뒷 공간을 계속 내주더니, 알론소가 앞쪽으로 빠지면서 홀든-무암바를 돕기 위해 커버 플레이를 할 수 밖에 없었죠. 문제는 알론소가 중앙쪽에서 활동 반경을 잡으면서 풀럼 선수들이 오른쪽 측면을 파고드는 공격 과정이 잦았습니다. 알론소는 풀럼의 오른쪽 윙어로 뛰었던 게라의 공격을 차단하는데 실패할 수 밖에 없었죠. 그 과정에서 시드웰-머피가 홀든-무암바 뒷 공간을 활발히 넘나들고 다른 선수들과 연계 플레이를 펼치면서 여러차례 슈팅 기회를 연출했습니다.
그럼에도 볼턴이 무실점 승리를 했던 이유는 골키퍼 보그단의 '미친 존재감'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풀럼전에서 '무려' 9개의 슈퍼 세이브를 기록하는 신들린 선방쇼를 과시하며 위기의 볼턴을 구했습니다. 볼의 궤적을 읽는 시야 및 판단력, 위치선정, 안정적인 선방 등 골키퍼로서 흠잡을 것이 없는 경기 운영이 인상 깊었습니다. 주전 골키퍼 야스켈라이넨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출전 기회를 잡았는데 의외로 기대 이상의 활약을 펼쳤죠. 풀럼전 MVP로 치켜 세우는데 손색 없습니다. 또한 케이힐-휠터로 짜인 센터백은 빈틈없는 커버 플레이 및 대인 마크를 앞세워 풀럼의 투톱이었던 존슨-뎀벨레의 발을 묶었습니다. 얼마전 미들즈브러에서 볼턴으로 이적한 휠터가 팀 전력에 빠르게 적응했습니다.
[사진=풀럼 원정 1-0 승리를 발표한 볼턴 공식 홈페이지 (C) bwfc.premiumtv.co.uk]
그리고 이청용은 다른 미드필더들에 비하면 충분히 제 몫을 해냈습니다. 페트로프가 연계 플레이에서 효율성에 아쉬움을 드러내면서 수비쪽에 대한 공헌도가 약했다면, 홀든-무암바는 경기 내내 시드웰-머피에게 끌려다니는 경기 운영을 펼쳤고 그나마 후반전에 폼을 회복했을 뿐입니다. 그래서 볼턴은 미드필더를 거치는 패스 플레이가 살아나지 못하면서 볼 배급의 간격이 길어지거나 개인 공격력에 의지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반면 이청용은 풀럼전에서 90분 동안 공수 양면에서 너른 활약을 펼치며 팀 승리의 숨은 MVP로 꼽을만 했죠.
풀럼전 결승골의 주인공은 클라스니치 였습니다. 그 발판을 열어준 것은 이청용 이었습니다. 서두에서 골 장면을 설명했지만, 전반 19분 클라스니치와의 2대1 패스를 전개하면서 풀럼 박스쪽을 공략했던 것이 볼턴 승리의 쐐기를 박는 발판이 됐죠. 전반 27분에는 오른쪽 측면 구석에서 상대 수비수를 달고 드리블 돌파를 했는데 그 과정에서 볼 컨트롤이 깔끔했습니다. 전반 44분에는 풀럼의 슈팅 기회가 무산될 때 볼턴 오른쪽 진영에서 직접 볼을 따내며 드리블 돌파로 역습을 전개했죠. 풀럼전에서 많은 볼 터치를 기록하지 않았지만 한 번 주어진 공격 기회를 놓치지 않고 상대 수비 조직을 위협하는 아우라를 발휘했습니다. 볼을 유연하게 다루면서 스스로의 힘으로 예측 불가능한 공격 상황을 전개했기 때문이죠.
후반 23분에는 도움을 기록할 뻔했습니다. 오른쪽 측면에서 얼리 크로스를 띄웠던 것을 클라스니치가 박스 정면에서 왼발 슈팅을 날렸는데 풀럼 골키퍼 슈워처 선방에 막혔습니다. 클라스니치의 슈팅 궤적은 추가골이 가능했기 때문에 이청용의 도움을 기대할 수 있었죠. 그럼에도 이청용의 얼리 크로스가 반가운 이유는 자신의 주무기를 가다듬었기 때문입니다. 지난 시즌보다 공격력이 좋아진 배경에는 얼리 크로스의 정확성 및 타이밍이 향상되면서 볼턴 공격의 새로운 루트를 개척했습니다. 이번 풀럼전에서는 그 감각을 유지하면서 앞으로 양질의 크로스를 올릴 수 있는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이청용은 적극적인 수비 가담에 의한 커버링을 강화하며 풀럼의 왼쪽 공격 의지를 꺾었습니다. 그 과정에서는 풀럼의 패스를 직접 끊거나 상대팀 선수가 소유한 볼을 빼앗으며 볼턴의 공격 기회를 되찾게 했죠. 풀럼이 중앙 및 오른쪽에서 공격 빈도가 많았던 것도 '페트로프-알론소 불안함과 맞물려' 이청용의 맹활약과 밀접했습니다. 잦은 수비 가담은 때로는 공격에 힘을 쏟을 기회가 줄어들면서 자신의 장점을 키우지 못하는 단점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청용은 풀럼전에서 경기 상황에 맞는 공간 선점을 통해서 경기 흐름을 조절하는 효율성을 키웠습니다. 영리하게 경기를 펼치면서 볼 배급의 정확성을 기를 수 있었죠.
또한 풀럼전을 비롯 최근 2경기 연속 선발 출전하면서 컨디션이 올라왔습니다. 불과 며칠전까지 아시안컵 참가 및 터키 원정 합류(부상으로 결장) 때문에 90분을 충분히 뛸 수 있는 몸 상태가 아니었지만 풀럼전을 계기로 어두운 기운을 떨쳤죠. 시즌 후반기 맹활약을 기대할 수 있는 이유입니다. 국내에서 열리는 3월 A매치 2경기 소집이 앞날 행보의 변수로 작용하지만(조광래 감독은 K리그 선수들의 차출 폭을 늘릴 것이라고 언급했습니다.) 볼턴의 에이스로서 구김살 없는 활약을 펼칠거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