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첼시가 FA컵 32강에서 탈락하는 수모를 겪었습니다. 19일 저녁 9시 30분(이하 한국시간) 스탬포드 브릿지에서 진행된 2010/11시즌 잉글리시 FA컵 32강(4라운드) 재경기에서 에버턴과 1-1로 비겼으나 승부차기에서 3-4로 패했습니다. 지난달 29일 에버턴 원정에서 1-1 무승부를 기록하면서 한달만에 홈에서 재경기를 치렀으나 끝내 16강 진출에 실패했습니다. 특히 홈 경기에서는 연장 전반 11분 프랭크 램퍼드가 선제골을 터뜨렸으나 연장 후반 14분 레이턴 베인스에게 동점골을 허용하면서 뒷심 부족을 면치 못했습니다.
첼시의 에버턴전 패배는 타이밍이 좋지 않습니다. 오는 23일 덴마크 원정에서 코펜하겐과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16강 1차전을 치르기 때문입니다. 코펜하겐이 16강 진출 팀들 중에서 최약체로 꼽히지만, 에버턴전 120분 연장 접전 및 승부차기 패배라는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덴마크 원정에 나서기 때문에 선수들의 체력 부담이 커질 것으로 보입니다. 스쿼드 노령화를 비롯 몇몇 주축 선수들의 부진에 시달리는 첼시로서는 버거운 일 입니다. 더 큰 문제는, 카를로 안첼로티 감독의 경질 여부가 에버턴전 패배를 계기로 수면 위에 떠올랐습니다.
첼시의 위기 탈출 해법은 안첼로티 경질? 그러나...!!!
첼시는 에버턴전을 이겼어야 했습니다. 지난 7일 리버풀전 0-1 패배, 15일 풀럼전 0-0 무승부로 프리미어리그 2경기 연속 승리가 없었기 때문에 분위기 전환 차원에서 에버턴을 제압할 필요가 있었죠. 하지만 첼시는 승부 근성이 부족했습니다. 120분 동안 슈팅 24개(에버턴 10개)를 날렸음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골 기회를 날렸습니다. 에버턴 골키퍼 하워드의 슈퍼 세이브 8개를 감안하더라도 1골에 그친 경기력이 매끄럽지 못했습니다. 불운을 탓하기에는 슈팅을 놓친 횟수가 많았던 것은 분명하며, 램퍼드의 골 이후 경기 집중력 및 체력 저하에 시달리면서 동점골을 허용했던 것도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분명한 것은, 첼시가 FA컵 32강 재경기에서 패했다는 사실입니다. 그 자체만으로 첼시에게 충격적입니다. 지난 시즌 프리미어리그 및 FA컵 우승을 달성했던 팀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올 시즌 FA컵에서는 디팬딩 챔피언의 저력을 발휘하지 못했죠. 칼링컵에서는 3라운드(32강)에서 뉴캐슬에거 3-4로 패하면서 조기 탈락했고, 프리미어리그에서는 토트넘에 밀려 5위를 기록중입니다. 현실적으로 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을 노려야 할 처지입니다. 하지만 리버풀-풀럼-에버턴전에서의 경기력을 놓고 보면 챔피언스리그에서 긍정적인 결과를 거둘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첼시에게 최악의 시나리오는 코펜하겐에 의해 이변의 희생양이 되는 일입니다.
특히 안첼로티 감독의 경질 가능성이 고조된 이유는 첼시의 감독 교체가 잦았기 때문입니다. '조만장자' 아브라모비치 구단주가 팀을 인수한 이후 2003/04시즌 부터 지금까지 8시즌 동안 6명의 감독(라니에리-무리뉴-그랜트-스콜라리-히딩크-안첼로티)이 번갈아갔기 때문입니다. 라니에리-무리뉴-그랜트-스콜라리는 아브라모비치 구단주에 의해 경질된 인물들이며 히딩크 감독은 3개월 임시직 이었습니다. 안첼로티 감독이 현직을 맡고 있지만 2012년까지 계약 기간을 채울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지금까지의 첼시 성적을 놓고 보면 경질 가능성이 충분하기 때문이죠. '천하의' 무리뉴 감독도 전술 충돌 등과 맞물려 아브라모비치 구단주에 의해 축출된 이력이 있죠.
[사진=에버턴전 승부차기 패배를 발표한 첼시 공식 홈페이지 (C) chelseafc.com]
안첼로티 감독의 경질설은 2~3개월 전 부터 불거졌습니다. 지난해 11월 14일 선덜랜드와의 홈 경기에서 0-3으로 패한 것이 첼시 부진의 신호탄이 되었고 그 이후에 답답한 경기를 일관하며 안첼로티 감독의 입지가 어두워지기 시작했죠. 당시에는 윌킨슨 전 수석코치의 경질, 선수층이 엷고 평균 나이가 많은 스쿼드, 드록바의 말라리아 감염, 말루다-아넬카 부진, 램퍼드 부상 및 하미레스 부진 등 여러가지 부진 이유들이 거론됐습니다. 안첼로티 감독의 로테이션 운용이 소극적이었던 단점이 있었지만, 당시의 첼시 부진은 다른쪽에 눈초리를 보내는 눈치였죠. 하지만 첼시는 그 이후에도 팀이 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못하면서 안첼로티 감독의 입지가 좌불안석이 됐습니다.
특히 유망주 육성 실패는 안첼로티 감독의 대표적인 문제점으로 꼽힙니다. 그동안 스쿼드에 젊은 선수들이 즐비했지만, 꾸준히 선발 출전 기회를 얻은 영건은 없었습니다. 일각에서는 유망주들이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했다는 이유를 거론합니다. 하지만 유망주가 성장하려면 감독의 믿음이 필요합니다. 꾸준한 실전 투입을 통해 경기력 향상에 대한 자신감을 키워야 하며 그 몫은 감독의 선택에 달렸습니다. 하지만 안첼로티 감독은 스터리지(볼턴 임대, 13경기 교체)-카쿠타(풀럼 임대, 1경기 선발-4경기 교체)-맥키크란(6경기 교체, 프리미어리그 기준)은 영건들에게 많은 기회를 주지 못했습니다. '출전 시간 확보가 잘 되지 않는' 교체 출전이 많았을 뿐이죠.
'첼시 라이벌' 맨유가 세대교체에 성공했던 원인은 긱스-스콜스 같은 노장 선수들이 스쿼드에서 무게 중심을 잡아줬기 때문입니다. 젊은 선수들은 시행착오에도 불구하고 적정한 선발 출전 기회를 얻으면서 점진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얻었죠. 문제는 첼시에게 이러한 면모를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첼시에 노장선수들이 즐비함을 상기하면 영건 육성이 문제가 있음을 뜻하죠. 안첼로티 감독이 검증된 옵션 위주로 스쿼드를 운영하기 때문입니다. 그 여파는 주축 선수들의 체력 저하 및 기복이 심한 행보로 이어졌고 첼시가 시즌 중반부터 끝없이 부진했던 원인과 맥락을 같이 합니다. 한 가지 주목할 것은, 첼시에서 영건 육성을 강조했던 사람은 다름 아닌 안첼로티 감독 이었습니다. 결국,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괴리감에 빠졌죠.
그렇다고 첼시가 현 시점에서 유망주 발굴에 집중할 수는 없는 노릇 입니다. 1월 이적시장을 통해 다른 팀으로 임대된 영건만 6명이기 때문입니다. 기존 스쿼드를 그대로 끌고 가면서 토레스-루이스 같은 이적생들이 팀 전술에 적응해야 합니다. 서로 힘을 합하여 최고의 경기력을 과시해야 하며, 프리미어리그 빅4 수성 및 챔피언스리그 우승에 사력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늦은 감이 있지만, 다음 시즌이 세대교체의 적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과연 안첼로티 감독이 그때도 첼시 사령탑을 맡으면 자신의 뜻대로 영건을 확실하게 키우며 팀의 신성으로 발돋움시킬 의지가 있는지 말입니다.
문제는 첼시가 좋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최근 3경기에서 승리가 없었기 때문이죠. 아직 시즌이 끝나지 않았지만, 올 시즌 까지의 성적을 놓고 보면 아브라모비치 구단주의 인수 이후 가장 성적이 나쁩니다. 2월에 리그 4위권 밑에서 시즌을 보낸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스콜라리 체제에서는 4위까지 떨어졌죠. 더 이상 프리미어리그 성적이 좋아지지 않으면 안첼로티 감독의 경질을 고려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모비치 구단주는 감독에 대한 인내심이 부족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가능한 시나리오죠.
그러나 현 시점에서는 안첼로티 감독을 대신할 인물이 없습니다. 첼시가 2008/09시즌 도중에 히딩크 감독, 리버풀이 지난 1월 달글리시 감독 대행을 임시로 선임한 사례는 있었습니다.(달글리시 감독 대행의 계약 기간은 올 시즌까지) 하지만 히딩크 감독은 아브라모비치 구단주와 친분이 있으며, 달글리시 감독 대행은 유스 아카데미에서 몸담고 있었습니다. 내부적으로 영입하기가 쉬웠죠. 하지만 지금의 첼시가 새로운 감독을 영입할 여건이 충족한지는 의문입니다. 지금의 히딩크 감독 같은 경우에는 현 터키 대표팀 사령탑을 맡고 있으며, 안첼로티 감독을 뛰어넘는 지도력을 가진 인물도 마땅치 않죠. 또한 안첼로티 감독 경질시 900만 파운드(약 162억원)의 보상금을 지불해야 합니다.
결국, 안첼로티 감독의 운명은 오는 23일 코펜하겐 원정, 다음달 2일 맨유전에서 좌우 될 것으로 보입니다. 첼시로서는 반드시 승리해야 하는 중요한 경기이기 때문이죠. 안첼로티 감독이 첼시에서 '생명 연장' 하려면 승리 이외에는 마땅한 방법이 없습니다. 토레스와 기존 공격 옵션들이 서로 융합해서 공격의 시너지를 끌어올리는데 주력하는 것이 키 포인트죠. 분명한 것은, 안첼로티 감독에게 '첼시 경질'이라는 커리어는 반갑지 않습니다.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명장중에 한 명이기 때문이죠. 감독으로서 팀의 승리를 이끄는 본분에 충실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