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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정성룡, 이운재의 미친 존재감을 재현하라

 

2007년 7월 28일 인도네시아 팔렘방의 자카바링 스타디움에서 진행되었던 2007 아시안컵 3~4위전. '영원한 맞수' 한국과 일본은 연장전까지 120분 동안 혈투를 펼쳤으나 무득점에 그치면서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을 펼치게 됐습니다. 두팀 키커 5명이 모두 골을 기록했고, 한국의 6번째 키커였던 김치우가 왼발슛으로 일본 골망을 갈랐습니다. 그리고 골키퍼 이운재가 한유 나오다케의 슈팅을 오른손으로 막아내며 한국의 3위 달성을 이끌었습니다.

한국은 아시안컵 6경기 동안 단 3골에 그쳤고, 고질적인 골 결정력 부족 및 단조로운 공격 패턴을 일관했습니다. 본선 2차전까지 1무1패에 그치면서 탈락 위기까지 몰렸죠. 이운재의 역량은 그때부터 빛을 발했습니다. 본선 3차전 인도네시아전 부터 3~4위전 일본전까지 4경기 연속 무실점 선방을 펼쳤습니다. 실점 위기 때마다 묵직한 선방으로 상대팀의 골 의지를 무너뜨리며 한국의 골문을 지탱했죠. 비록 4강 이라크전에서 승부차기 끝에 패했지만, 아시안컵 부진을 모면할 수 있었던 것은 이운재가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8강 이란전 및 3~4위전 일본전 승부차기에서는 이운재의 선방이 빛을 발했습니다.

당시 한국의 약점은 수비 불안 이었습니다. 스리백에 익숙했던 수비수들이 포백에 적응하는데 어려움을 겪으면서 상대팀 빠른 역습에 취약한 단점을 노출했죠. 더욱이 아시안컵에서는 포백의 평균 연령이 23세(김치우-김진규-강민수-오범석)였습니다. 경험 부족의 약점을 이겨야 하는 현실이었죠. 아시안컵에서 토너먼트에서 이러한 문제점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이운재가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젊은 수비수들을 뒤에서 리딩하며 상대 공격을 틀어막는데 주력하면서 실점을 허용하지 않으려 했죠. 그래서 한국이 이운재의 통솔력에 힘입어 수비 실수를 이겨냈고 포백이 성공적으로 정착했습니다.

하지만 이운재는 더 이상 대표팀 선수가 아닙니다. 지난 8월 11일 나이지리아전에서 마지막 A매치를 치르고 대표팀에서 은퇴했습니다. 남아공 월드컵을 앞두고 기량 노쇠화에 직면하면서 정성룡과의 경쟁에서 밀렸죠. 한국의 월드컵 16강 진출을 짊어지기에는 세월의 물리적인 힘을 이겨내지 못했습니다. 앞으로 며칠 뒤면 38세가 되면서 불혹에 가까워지기 때문에 후배 선수들에게 자리를 양보해야 했고, 결국 대표팀을 떠났습니다.

축구는 아무리 필드 플레이어들이 열심히 뛰어도 골키퍼가 치명적인 실수를 범하면 그 실점은 팀의 패배로 직결되는 무시못할 영향력이 있습니다. 잉글랜드가 남아공 월드컵 본선 1차전 미국전에서 로버트 그린의 '알까기' 때문에 승리할 수 있었던 경기를 놓쳤던 것 처럼(1-1 무승부), 골키퍼가 얼마만큼 실수를 줄이고 방지하느냐에 따라 그 팀의 성적이 좌우됩니다. 그래서 한국이 2011년 아시안컵 우승을 달성하려면 정성룡의 맹활약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정성룡이 얼마만큼 선방하고, 수비 라인을 능숙하게 컨트롤 하느냐에 따라 한국의 아시아 제패 여부가 가려집니다.

문제는 정성룡이 조광래호 No.1 골키퍼로서 믿음감을 심어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소속팀 성남의 일원으로 출전했던 국제축구연맹(FIFA) 클럽 월드컵에서 부진했기 때문입니다. 4강 인터 밀란전 3실점, 3~4위전 인터나시오날전 4실점을 범한것도 문제였지만 골키퍼로서 선방할 수 있었던 장면을 놓쳤던 것이 아쉬웠습니다. 특히 인터나시오날전 4실점 장면의 공통점은 볼의 방향을 빠르게 읽지 못하면서 판단력이 늦은게 문제였습니다. 두번째 실점 장면은 위치선정 불안까지 겹쳤죠. 골키퍼는 과감하게 결단하는 능력이 요구되지만 정성룡은 아직까지 그런 부분이 부족했습니다.

물론 정성룡은 남아공 월드컵 본선에서 '실력으로' 이운재를 벤치로 밀어냈습니다. 이운재의 K리그 부진 여파가 대표팀 골키퍼 경쟁으로 직결된 흐름이 없지 않지만, 그 사이에 정성룡은 안정감 넘치는 선방 및 능숙한 수비 컨트롤을 선보이며 자신의 급성장을 과시했습니다. 한국이 본선 1차전 그리스전에서 무실점 승리(2-0 승) 할 수 있었던 원인은 정성룡이 이운재 존재감을 확실하게 메웠기 때문입니다. 비록 그 이후 경기에서 아쉬운 장면들이 있었지만, 이운재를 제치고 월드컵 본선에서 주전 골키퍼로 활약한 것 자체만으로 비범함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그 이전까지는 많은 사람들이 이운재가 월드컵에서 골키퍼로 활약할거라 예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정성룡의 클럽 월드컵 부진이 2011년 아시안컵에서 어떤 영향을 끼칠지는 알 수 없습니다. 클럽 월드컵에서 산전수전 겪었던 경험이 아시안컵 맹활약을 자극하거나 또는 그 반대가 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정성룡의 단점을 큰 경기 경험 부족을 꼽습니다. 하지만 정성룡은 2008 베이징 올림픽 및 2010 남아공 월드컵,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 및 클럽 월드컵 무대를 밟았으며 K리그 정상급 골키퍼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표팀 No.1 골키퍼 경험이 풍부하게 쌓이지 않은것은 분명하며, 그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서는 아시안컵이 중요한 척도로 작용합니다. 큰 무대에서 고비때마다 실점 위기를 막으며 한국의 사기를 끌어올리는 포스가 정성룡에게 필요합니다.

그럼에도 일부 여론에서는 정성룡 기량에 대한 의구심을 품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운재 이름까지 거론되고 있습니다.(내년이면 41세가 되는 김병지와 함께 말입니다.) 하지만 이운재는 더 이상 대표팀에 복귀할 수 없습니다. 남아공 월드컵 이후 소속팀 수원에서 하강진에게 주전 경쟁에서 밀렸기 때문이죠. 그러면서 수원에서의 출전을 보장받지 못하고 다른 팀으로 떠날 상황에 몰렸습니다. 기량까지 내림세에 빠졌기 때문에 대표팀 복귀 명분에 힘이 실리지 않습니다. 만약 정성룡이 아시안컵에 부진하면 이운재 공백에 대한 불안감은 최악의 경우 '트라우마'에 빠질지 모릅니다. 한국 축구는 이러한 시나리오에 직면해선 안됩니다.

현실적으로는, 김용대-김진현 같은 백업 골키퍼 자원들이 정성룡에게 긴장감을 심어야 합니다. 대표팀에서 이운재 후계자가 정성룡이 아니라는 각오로 말입니다. 다만, 김영광이 무릎 부상으로 아시안컵에 출전하지 못한 것은 흠입니다. 그런 정성룡은 대표팀 주전 경쟁에서 확고한 우세를 점하여 No.1 골키퍼임을 재입증해야 할 것입니다. 2007년 아시안컵에서 '미친 존재감'을 과시했던 이운재의 저력을 이제는 정성룡이 재현해야 합니다. 쉽지 않은 과정이겠지만, 한국 축구가 2014년 브라질 월드컵을 걱정하지 않으려면 정성룡의 분발이 필요한 시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