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국제축구연맹(FIFA) 클럽 월드컵 우승팀 인터 밀란(이하 인테르)이 라파엘 베니테즈 감독을 전격 경질했습니다. 23일 저녁(이하 한국시간) 구단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베니테즈 감독과의 상호 계약 해지 소식을 발표했죠. 최근 베니테즈 감독이 인테르를 떠날 것이라 발언하면서 사임으로 볼 수 있겠지만, 인테르도 베니테즈 감독을 안고 가는 의지를 포기했기 때문에 계약 해지라는 이름하에 경질을 택했습니다. 베니테즈 감독과 함께한 시간이 6개월에 불과함을 상기하면, 인테르는 베니테즈 감독을 잔류시킬 마음이 없었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베니테즈 감독이 팀을 떠나게 된 배경은 성적 부진 때문입니다. 세리에A 5연패를 비롯 지난 시즌 유로피언 트레블을 달성했던 인테르의 사령탑을 맡았으나 현재 팀의 세리에A 성적은 7위입니다. 몇몇 주축 선수들의 부상을 감안해도, 베니테즈 감독 부임 이후 팀의 경기력이 나빠진 것은 분명하기 때문에 그동안 현지 언론에서 경질설이 끊이지 않았죠. 그리고 베니테즈 감독은 클럽 월드컵 이후 자신이 원하는 선수를 영입하지 않으면 인테르를 떠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성적 부진에 시달리는 상황에서 구단에 감독 권한 확대를 요구했으니, 인테르가 곱게 바라보지 않았죠.
'성적 부진' 리버풀, 용단을 내릴때가 왔다
이러한 인테르의 행보는 리버풀이 눈여겨 봐야 합니다. 리버풀은 지난 6월 베니테즈 감독과 작별하면서 로이 호지슨 감독을 영입했지만 오히려 팀 성적이 떨어지고 경기력이 퇴보하는 역효과에 직면했습니다. 리버풀은 베니테즈 체제에서 2004/05시즌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 2006/07시즌 챔피언스리그 준우승, 2008/09시즌 프리미어리그 준우승을 달성했으며 2009/10시즌 총체적 성적 부진을 제외하면 잉글랜드 명문으로서의 이름값을 과시했습니다. 하지만 호지슨 감독 부임 이후 프리미어리그 성적은 9위(6승4무7패)이며 시즌 초반 강등권에 추락하는 굴욕을 당했습니다.
인테르가 베니테즈 감독을 떠나보낸 것은 더 이상의 성적 부진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유럽 및 세계 챔피언의 위용을 과시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침체를 막아야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베니테즈 감독을 내쳤습니다. 리버풀도 마찬가지 입니다. 한때 프리미어리그 최고의 명문 클럽이자 유럽 전역을 휩쓸었던 과거가 있기 때문에 중상위권 내지는 중위권의 클래스는 어색합니다. 지난 시즌 프리미어리그를 7위로 마감하여 토트넘에게 빅4를 빼앗기면서 베니테즈 감독을 해고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호지슨 체제는 지난 시즌의 베니테즈 시절보다 더 어렵습니다.
물론 감독이 바뀌면 그 초기에는 전술 적응 문제 때문에 경기력 최대화가 어렵습니다. 축구는 '감독 놀음'의 스포츠이기 때문에 그런 현상은 당연히 존재합니다. 하지만 프로는 적응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성적이 좋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으면 정리하는 것이 일반적인 흐름이기 때문이죠. 국내 K리그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감독 교체 현상이 잦아졌습니다. 감독은 성적에 목을 멜 수 밖에 없는 존재로서 구단의 운명을 좌지우지합니다. 그래서 인테르가 베니테즈 감독과 결별한 것은 현재까지 최고의 선택으로 보여집니다. 리버풀도 베니테즈 감독을 경질한 수순까지는 좋았습니다. 하지만 호지슨 감독을 영입한 것은 팀의 퇴보를 부추기는 최악의 선택이 됐습니다.
호지슨 감독은 리버풀에서 '풀럼 축구'를 하고 있습니다. 지난 시즌까지 풀럼을 성공적으로 이끌며 지난 여름 안필드에 입성했지만, 문제는 풀럼에서의 전술을 리버풀에 그대로 적용하고 있습니다. 풀럼은 엄연히 약팀이기 때문에 호지슨 감독이 그에 맞는 롱볼 축구 전략을 내세웠지만, 베니테즈 체제에서 패스 축구에 익숙했던 리버풀에서 그 스타일을 고집하는 바람에 팀 성적까지 중위권(한때 강등권)으로 곤두박질 쳤습니다. 리버풀은 비록 지난 시즌 부진했지만 강팀의 클래스가 남아있기 때문에 호지슨 감독이 그것을 끄집어야 했지만, 자신이 선호하는 전술을 일관하면서 경기력 혼란을 부추겼습니다.
더욱이, 롱볼 축구는 프리미어리그에서 외면받고 있습니다. 잉글랜드 축구하면 떠오르는 스타일은 '킥 앤 러시(Kick & Rush)'이며 호지슨 감독도 그러한 전술을 선호합니다. 하지만 최근 세계 축구의 대세는 패스 축구입니다. 프리미어리그가 양적, 질적으로 팽창하면서 축구 전술의 퀄리티가 높아졌고 현지 축구팬들이 화려한 축구를 선호하게 됐죠. 게리 멕슨 전 감독, 샘 앨러다이스 전 감독이 각각 볼턴과 블랙번에서 경질된 원인은 롱볼 축구와 밀접합니다. 패스 축구를 구사했던 리버풀이라면 경기력의 연속성을 키우면서 베니테즈 감독의 문제점을 보완하는 감독을 영입했어야 하는데, 호지슨 감독을 데려오면서 패착에 빠지게 됐습니다.
그런 호지슨 감독은 1월 이적시장에서 경질을 면하기 위한 돌파구를 마련할 것입니다. 자신이 원하는 선수들을 보강하여 성적 향상을 노리겠다는 의도입니다. 현재 리버풀의 영입 관심을 받는 선수들은 앤디 캐롤(뉴캐슬) 애슐리 영(애스턴 빌라) 메튜 자비스(울버햄턴) 데이비드 벤틀리(토트넘) 라사나 디아라(=라스, 레알 마드리드) 아딜 라미(릴, BUT 발렌시아 이적에 합의한 것으로 알려짐) 등이 거론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좋은 선수들을 보강하더라도 감독의 전술 능력이 뒷받침되지 못하면 아무 소용 없습니다. 호지슨 감독이 리버풀 간판 공격수 페르난도 토레스의 장점을 팀 전술에 활용하지 못하는 것 처럼 말입니다.
만약 리버풀이 현 시점에서 호지슨 감독을 경질하면 새로운 감독 구미에 맞는 선수를 1월 이적시장에서 보강할 수 있습니다. 지금의 성적 부진에서 벗어날 수 있는 시간적 기회을 마련하면서 말입니다. 물론 시즌 중의 감독 교체는 성적 향상의 능사가 아닙니다. 감독이 새로 바뀌기 때문에 팀 조직력에 혼란이 따를 수 있는 단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리버풀에게는 자극이 필요합니다. 더 이상의 성적 부진은 결과적으로 팀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리버풀의 현 스쿼드라면 중위권에 속할 이유가 없습니다.
하지만 리버풀을 인수한 뉴 잉글랜드 스포츠 벤처(NESV)는 호지슨 감독을 안고 가겠다는 입장을 지키고 있습니다. 아직까지 호지슨 감독 경질을 염두하는 움직임이 감지되지 않았으며, 지난 21일에는 리버풀 현지 뉴스 사이트 <안필드 온라인>이 트위터를 통해 호지슨 감독의 경질을 부정하는 멘션을 올렸습니다. 그러나 인테르가 베니테즈 감독을 경질한 사례는 리버풀이 반면교사 삼아야 합니다. 리버풀의 최근 행보도 인테르와 똑같지는 않아도 큰 틀에서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리버풀이 용단을 내릴 시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