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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베르바토프 5골 몰아치기, 예사롭지 않다

 

최근 10경기 연속 무득점 부진에 빠졌던 디미타르 베르바토프(29,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이하 맨유)가 한 경기에서 5골을 넣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28일 오전 0시(이하 한국시간) 올드 트래포드에서 열린 2010/11시즌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15라운드 블랙번전에서 전반 2분-27분-47분, 후반 17분-25분에 골을 기록하며 맨유의 7-1 대승을 이끌었습니다. 블랙번전 5골에 힘입어 프리미어리그 득점 단독 선두(11골)에 오르며 그동안의 부진을 해소했습니다.

베르바토프의 5골이 경이적인 이유는 프리미어리그에서 활약한 외국인 선수의 한 경기 최다득점 기록이기 때문입니다.(베르바토프는 불가리아 국적) 지금까지 프리미어리그에서는 5골을 기록한 선수가 베르바토프를 비롯해서 4명 있었으며, 그 이전에 5골을 작렬했던 앤디 콜-앨런 시어러-저메인 디포는 잉글랜드 국적의 공격수들 입니다. 아울러, 베르바토프는 경기 종료 후 <스카이스포츠><골닷컴 영문판><맨체스터 이브닝뉴스>로 부터 평점 10점 만점을 기록하는 진풍경을 연출했습니다.

베르바토프 5골, '쉐도우' 루니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우선, 맨유에게 7골을 허용했던 블랙번 수비는 매우 부실했습니다. 좌우 측면 풀백을 맡았던 심봉다-살가도가 맨유의 윙어였던 박지성-나니의 돌파에 의해 속수무책으로 무너지면서 팀의 수비 밸런스가 무너지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특히 심봉다는 전반 27분 왼쪽 측면에서 골키퍼를 향해 백패스를 연결한 것이 베르바토프의 골을 만들어주는 치명적 실수를 범했습니다. 또한 블랙번 선수들은 루니의 번뜩이는 움직임, 캐릭-안데르손의 허리 싸움에 밀리면서 수비수-미드필더 사이의 공간을 좁히는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 과정에서는 느슨한 협력 수비까지 더해지면서 맨유의 파상공세를 막지 못했죠.

블랙번의 수비 문제를 언급한 이유는 베르바토프 특성과 관련이 깊기 때문입니다. 상대 압박이 느슨하면 몸이 완전히 풀린 것 처럼 자신의 천부적인 공격 재능을 마음껏 발휘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부진에 빠집니다. 공간을 넓게 이용해서 패스를 연결하거나, 공격을 조율하거나, 골을 노리는 성향이기 때문에 상대의 강력한 압박 및 파워에 눌리면 제 힘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좁은 공간에서 골을 노리거나 유연한 볼 키핑을 자랑하는 특징이 있지만 상대의 끈끈한 협력 수비를 받으면 그 분위기를 반전시킬 아우라가 부족합니다. 빠른 순발력을 강점으로 삼는 선수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복이 심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특히 블랙번전에서는 경기 초반 '기선 제압'이 양팀의 희비를 엇갈리는 결정타가 됐습니다. 전반 2분 나니가 왼쪽에서 띄운 크로스를 문전에서 가볍게 발로 밀어넣어 선제골을 기록했습니다. 블랙번전 이전까지 10경기 연속 무득점으로 부진했기 때문에 경기 초반부터 의기양양한 모습을 나타낼 수 있었습니다. 선제골만으로는 길고 길었던 무득점을 만회하기가 부족했기 때문에 더 많은 골을 넣겠다는 의욕을 키우며 골문 이곳 저곳을 헤집고 다녔습니다. 그 과정에서 동료 선수들이 블랙번 선수들을 일방적으로 압도하는 공격력을 과시했고, 블랙번 수비가 끊임없이 흔들리면서 다득점의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부진을 극복하겠다는 자세에서 열정이 묻어났기 때문에 5골을 기록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베르바토프는 '역시' 수비가 약한 팀에게 강했습니다. 하지만 5골을 넣은 것은 과대한 칭찬도 어색하지 않습니다. 맨유는 블랙번전 이전까지 90분 동안 시원스럽게 공격을 퍼부었던 경기가 적으며, 답답한 공격 흐름 속에서 찝찝한 승리를 거둔 경우가 부지기수 입니다. 물론 무승부도 많았죠. 공격의 파괴력이 예년 만큼 강하지 못했기 때문에 다득점 승리가 가능한 분위기를 효과적으로 이용하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힘겨운 흐름을, 베르바토프는 블랙번전 5골의 대활약을 펼치며 맨유의 대승을 이끌었습니다. 프리미어리그에서 한 경기 5골 기록이 나오기 힘들다는 것을 상기하면 베르바토프의 득점력이 맨유의 블랙번전 승리에 큰 힘이 됐습니다.

베르바토프가 5골을 넣을 수 있었던 이유는 루니와의 공존이 성공적이었음을 뜻합니다. 루니가 쉐도우로 내려가면서 이타적인 역량에 힘을 실어줬기 때문에 타겟맨으로서 많은 골을 작렬하는 원동력을 마련했습니다. 공교롭게도 지난 9월 19일 리버풀전까지 리그 5경기에서 6골을 기록할 수 있었던 배경은 루니의 쉐도우 전환이 크게 작용했습니다. 루니가 2선과 최전방 사이의 공간에서 상대 수비를 달고 다니며 연계 플레이를 펼치고, 공간을 창출하고, 부지런히 움직였기 때문에 베르바토프가 타겟맨으로서 압박 부담을 덜게 됐습니다. 그 흐름이 블랙번전에서 재현되면서 5골의 값진 결과를 거두게 됐죠.

물론 베르바토프-루니 콤비는 프리미어리그에서 가장 파괴적인 공격 조합이라고 보기에는 결과물이 부족합니다. 지난 시즌 '베르바토프 쉐도우-루니 타겟맨' 체제가 양날의 칼이었기 때문입니다. 베르바토프 본인이 선호하는 공격 조율을 마음껏 시도하고 루니가 거의 매 경기에서 골을 넣는 장점이 작용했지만, 베르바토프가 상대의 거센 압박에 밀리면 루니가 최전방에서 고립되어 맨유 공격이 끊어지는 단점이 두드러졌습니다. 그래서 퍼거슨 감독은 맨유 공격의 체질 개선을 위해 올 시즌 두 선수의 위치를 바꿨습니다. 루니 같은 경우에는 남아공 월드컵 부진 때문에 골 생산에 따른 부담감에서 자유롭지 못했죠. 결국, 배르바토프는 루니의 이타적인 역량에 힘을 얻으며 '물 만난 물고기처럼' 거침없이 골을 넣었습니다.

그런 베르바토프가 리버풀전 이후 골이 없었던 이유는 루니가 부침에 시달렸기 때문입니다. 스캔들 및 이혼 위기, 발목 부상, 이적 문제와 시름하면서 부진했고 지난달 중순 부터 부상 회복을 위해 한달 동안 결장했습니다. 베르바토프가 10경기 연속 부진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입니다. 아무리 루니가 지난 시즌처럼 많은 골을 넣을 수 없었지만 적어도 팀 플레이에서는 열정적인 자세로 임했고 퀄리티 높은 공격 전개를 펼쳤습니다. 에르난데스-마케다-오베르탕 같은 젊은 공격수들이 루니를 대체하기에는 역부족 이었습니다. 여기에 베르바토프도 부진에 빠지면서 윙어 오베르탕의 공격수 전환이 불가피했죠.

하지만 베르바토프는 루니가 부상에서 복귀하면서 블랙번전 5골을 통해 펄펄 날았습니다. 지난 시즌 '베르바토프 쉐도우-루니 타겟맨' 체제는 호흡 불안이 아쉬웠지만, 올 시즌 '베르바토프 타겟맨-루니 쉐도우' 체제는 서로 윈윈 효과를 거두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루니가 상대 수비를 흔들어야 베르바토프가 골을 기록할 수 있는 공식이 생긴 것이죠. 베르바토프는 공격 조율을 즐기는 선수지만, 타겟맨으로서의 지능적인 위치선정 및 다재다능한 슈팅 기술을 앞세워 다득점을 기록할 수 있는 역량이 풍부했습니다. 그 기질이 그동안 팀 전술에서 빛을 발하지 못했지만 이제는 타겟맨으로서의 새로운 가치를 인정받게 됐습니다.

베르바토프의 5골 몰아치기가 예사롭지 않은 이유는 루니가 부활에 탄력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스캔들 문제가 정리되었고, 맨유와 2015년까지 재계약 맺었고(형식적 관점에 의하면), 부상 회복에 따른 휴식을 취했기 때문에 기분 좋게 오름세를 타는 시나리오만 남았습니다. 이러한 루니의 행보를 놓고 보면, 베르바토프의 거침없는 골 생산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물론 베르바토프가 수비력이 강한 팀을 상대로 제 몫을 다할지, 기복이 심한 단점을 이겨내고 꾸준히 맹활약을 펼칠지는 장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루니가 있기에 그런 문제를 이겨낼 수 있는 희망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블랙번전 5골은 그동안의 부진을 만회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맨유의 앞날 행보가 탄력을 얻게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