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과의 전반전, 사실상 패배 확정 분위기 입니다. 철저한 졸전인데요.(한국 0-2 이란) 지금의 경기력으로는 한국이 후반전에 3골을 넣으며 '극적인 역전승'을 거둘지 의문입니다. 결승 진출 실패 충격 때문인지 동기부여를 잃은 것 같은 분위기입니다. 한마디로 맥이 빠지는 전반전 경기를 펼쳤죠"
제가 어제 오후 트위터에 남겼던 글입니다. 한국 축구 대표팀이 광저우 아시안게임 3~4위전 이란전에서 경기 초반부터 무기력한 모습을 일관했기 때문에 패배가 유력했다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전반전에는 0-2로 밀렸던 것을 비롯해서, 경기 집중력 및 공수 양면에 걸쳐 열심히 뛰겠다는 의지가 결여되면서 일찌감치 패배를 예감했습니다. 그 흐름은 후반 중반까지 변함 없었습니다. 후반 2분 구자철이 날카로운 왼발 중거리슛으로 만회골을 넣었지만 1분 뒤 이란에게 추가골을 내줬고 그 이후 답답한 경기를 펼쳤기 때문에 '이란전은 결국 패배'라고 마음속으로 체념했습니다.
하지만 한국이 그 이후 극적인 드라마를 연출할 줄은 예상 못했습니다. 저를 비롯해서 경기를 지켜보는 많은 사람들도 같은 입장이었겠죠. 후반 30분 박주영 발끝에서 이란 골망이 출렁하며 한국의 본격적인 추격이 시작됐습니다. 3-1 리드에 여유를 부리며 소위 '침대축구'를 펼쳤던 이란의 방심이 한국에게 절호의 기회로 이어지면서 박주영이 추격골을 터뜨렸습니다. 이 골은 한국 선수들에게 포기하지 않는 투지와 승리욕을 자극했고, 결국 지동원이 후반 42분과 44분에 두 번의 헤딩골로 상대 골망을 가르며 4-3 대역전승 쾌거를 이루었습니다. 지동원이 역전골을 넣을 때 소리를 지르며 환호했지만 그 이후에는 한 남자의 눈물에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그 선수는 박주영 이었습니다. 이란전 종료 후 홍명보 감독을 품에 안으며 한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붉은색 상의 유니폼으로 눈물을 닦았습니다. 적어도 그라운드에서 만큼은 무뚝뚝하게 느껴졌던 박주영이 눈물을 흘리는 모습은 의외였습니다. 자신이 원했던 금메달을 목에 걸지 못했지만 후배 선수들과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면서 역전승을 거둔 감동과 전율을 느꼈기 때문에 눈물이 떨어졌죠. 경기 종료 후 공식 기자회견에서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했던 소중한 것을 깨우치게 됐다.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았다"고 말했던 박주영은 이란전에서 자신의 인생을 긍정적으로 살찌우는 소중한 경험을 얻었습니다.
박주영의 눈물은 우리들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이란전에서 벼랑 끝에 몰렸던 한국을 구했던 선수가 박주영 이었기 때문입니다. 지동원의 동점골 및 역전골도 귀중했지만, 두 골이 터질 수 있도록 발판을 열어준 선수가 박주영 이었습니다. 물론 박주영의 골 과정을 도왔던 윤빛가람-서정진의 패스를 간과할 수 없겠지만, 박주영이 골문 가까이에서 침착하게 골을 겨냥했기 때문에 상대 수비의 허를 찌르는 강렬한 임펙트를 과시했습니다. 이란의 수비 집중력이 저하되었음을 동료 선수들에게 확인시켰죠. 그 골이 있었기에 후배 선수들은 이길 수 있다는 용기와 자신감을 얻으며 이란 진영을 거침없이 공략했고 지동원이 두 번의 헤딩슛으로 상대 골망을 갈랐습니다.
그리고 박주영 눈물을 수긍할 수 있는 이유는 홍명보호에 합류하기까지 우여곡절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박주영의 소속팀 AS모나코가 아시안게임 차출을 돌연 거부한것에서 비롯됐죠. 당시 모나코가 프랑스 리게 앙(=리그1) 11경기 1승7무3패로 리그 18위 강등권에 빠졌기 때문에(현재 2승8무4패로 17위) 박주영의 대표팀 소집을 막으려 했죠. 아시안게임은 국제축구연맹(FIFA)이 지정한 A매치가 아니기 때문에 모나코가 차출을 막을 권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박주영은 병역혜택이 절실했기 때문에 아시안게임이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박주영의 에이전트측과 모나코측이 대표팀 차출을 놓고 대립각을 세우면서 고성까지 오갔다고 합니다. 결국 모나코가 차출 거부를 번복하며 박주영이 광저우행 비행기에 탑승했죠.
하지만 모나코 일정을 포기하고 광저우에서 한국의 금메달을 위해 땀을 흘렸던 박주영의 노력은 끝내 좋은 결실로 이어지지 못했습니다. 한국이 4강 아랍에미리트 연합(이하 UAE)전에서 연장 종료 직전 통한의 실점을 허용하면서 그동안의 노력이 헛수고가 되고 말았습니다. 결정적인 골 기회에서 힐킥을 날리며 마무리를 지으려던 것이 엉뚱하게 상대 수비수쪽으로 향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UAE전 패배에 따른 질타를 받았습니다. UAE 선수와의 유니폼 교환 거부를 둘러싼 비매너 논란과 더불어 말입니다.
그럼에도 박주영 없었으면 한국의 4강 진출은 장담 못했습니다. 박주영이 8강 우즈베키스탄전 결승골을 비롯해서 그 경기까지 4경기 3골 2도움의 맹활약을 펼쳤기 때문입니다. 그런 박주영의 존재감이 부각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기존 한국 공격진이 불안했습니다. 지동원은 혹사 후유증 때문에 평소보다 폼이 떨어졌고(끝내 이란전에서 2골 넣었지만) 박희성은 경기 운영 능력 및 전술 이해도 불안이 아쉬웠습니다. 축구팬들이 발탁을 원했던 'K리그 득점왕' 유병수는 예비 엔트리 조차 포함되지 못했고 '피터팬' 이승렬은 원톱 경험이 전무합니다. 만약 모나코가 박주영의 차출을 허락하지 않았다면 홍명보호는 지동원-박희성을 원톱으로 번갈아 운영했을지 모릅니다. 한국 축구의 대형 공격수 부족 및 활용 문제에 아쉬움을 느낄 수 밖에 없는 이유죠.
그리고 박주영은 3~4위전 이란전 출전이 불투명했던 선수였습니다. 모나코가 박주영의 이란전 출전을 포기하고 소속팀으로 복귀할 것을 대한축구협회에 요청했죠. 그러나 박주영은 이란전 출전을 원했습니다. 아시안게임 금메달 및 병역 혜택이라는 목표를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3~4위전을 치를 명분이 떨어졌던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박주영은 한국 대표팀 주전 공격수라는 체면이 있었습니다. UAE전 패배 후 소속팀으로 돌아가는 모양새가 좋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한 한국 대표팀의 일원이기 때문에 끝까지 경기 일정을 소화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을 것입니다. 후배 선수들의 사기를 떨어뜨리지 않고 팀의 일원으로서 솔선수범하기 위해서는 이란전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을 하나의 도리로 생각했겠죠.
박주영은 이란전 종료 후 눈물을 흘리며 사람들의 마음을 숙연케 했습니다. 후배들과 함께 이란전에서 멋진 명승부를 연출하면서 눈물의 의미가 값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포기하지 않으며 승리의 집념을 잃지 않았던 감동에 젖었지만, 홍명보호의 원톱으로서 맡은 역할을 끝내기까지 순탄치 않은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눈물이 떨어질 수 밖에 없었죠. 금메달의 꿈을 이루지 못해 여전히 병역 문제를 짊어져야하는 현실은 아쉽습니다. 하지만 그 눈물은 많은 사람들에게 잊혀지지 않을 '명장면'으로 남게 될 것입니다. 박주영의 눈물은 금메달보다 더 아름다웠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