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 대표팀이 광저우 아시안게임 마지막 경기에서 극적인 역전승을 거두고 동메달을 획득했습니다. 이란과의 후반 중반까지 경기력 저하로 고전을 면치 못했으나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저력을 과시하며 단숨에 역전했습니다.
한국은 25일 오후 4시 30분 중국 광저우 티앤허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동메달 결정전 이란전에서 4-3으로 승리했습니다. 전반 4분 레자에이 고람레자, 전반 47분 아슈리 메렌자니에게 실점을 내줬지만 후반 2분 구자철이 왼발 중거리슛으로 추격골을 넣으며 1-2로 추격했습니다. 후반 3분 안사리 사드에게 추가골을 허용했으나 후반 30분 박주영이 골을 기록하며 한국의 불꽃같은 공격력이 발동했습니다. 그리고 후반 42분과 44분에 지동원이 두 번의 헤딩골로 이란 골망을 가르며 4-3의 짜릿한 역전 드라마를 썼습니다.
전반전, 공수 양면에 걸친 '철저한 졸전'...2골 허용
한국은 이란전에서 4-2-3-1 포메이션을 구사했습니다. 김승규가 골키퍼, 윤석영-김영권-홍정호-신광훈이 포백, 구자철-김정우가 더블 볼란치, 홍철-김보경-조영철이 2선 미드필더, 박주영이 원톱을 맡았습니다. 0-1로 패했던 지난 23일 아랍에미리트 연합(UAE)과의 4강전 선발 스쿼드를 동일하게 운영했습니다. 동메달 결정전이기 때문에 그동안 아시안게임에서 많은 출전 기회를 부여받지 못했던 백업 선수들을 위주로 이란전에 나설것으로 보였지만, 홍명보호는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유종의 미'를 위해 주전 선수들을 총동원했습니다.
하지만 한국의 시작은 좋지 못했습니다. 전반 4분 홍정호가 볼 컨트롤 실수로 아프신에게 공을 빼앗겼고, 아프신의 돌파 및 대각선 패스에 이은 레자에이의 선제골로 이어졌습니다. 홍철-박주영의 전방 침투를 앞세워 이란 진영을 두드렸던 한국이 예상치 못했던 실점을 허용했습니다. 오히려 이란의 빠른 역습에 흔들리면서 미드필더들의 활동 반경이 뒷쪽으로 쏠렸고 이란 진영에서 상대 수비 빈 공간을 노리는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한국의 옵션들은 이란의 두꺼운 수비 조직력에 이렇다할 대응을 펼치지 못하면서 고전을 면치 못했죠.
한국과 상대했던 이란은 선 수비-후 역습 전술을 구사했습니다. 홍명보호에게 패배를 안겨줬던 북한-UAE와 같은 작전을 활용했습니다. 한국 축구가 그동안 아시아 무대에서 공격적인 팀 컬러가 뚜렷했으나 선 수비-후 역습, 혹은 밀집수비에 취약했기 때문에 상대팀 입장에서 그 전술을 꺼내드는데 주저함이 없었습니다. 이란과의 전반전 또한 마찬가지 였습니다. 한국이 풀백-미드필더-원톱을 이란 진영쪽으로 올리면서 공격적인 경기를 펼치기 위해 애를 썼지만, 이란 미드필더 뒷 공간을 노리는 연계 플레이가 매끄럽지 못했고 공격 템포도 느렸습니다. 그 과정에서 패스 미스, 불안한 볼 터치를 일관하며 공격이 끊어지기 일쑤였죠.
전반 27분에는 김정우가 수비쪽으로 내려와 롱볼을 시도하는 모션을 취했습니다. 하지만 패스를 날릴 목표점을 찾지 못하면서 롱볼을 포기하고 볼을 끌다가 수비수에게 횡패스를 날렸죠. 그 이후 미드필더진에서 여러차례 패스를 주고 받았지만 선수들의 움직임이 느리다보니 볼 템포가 아무런 위력이 없었고, 박스 안으로 침투패스가 연결되었으나 조영철이 오프사이드를 범했습니다. 이란 수비가 한국 공격 패턴을 완전히 읽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죠. 한국의 지공이 아무런 위력이 없기 때문에 미드필더진에서 강하게 압박하기 보다는, 수비 공간을 타이트하게 좁히면서 오프사이드를 유도했습니다. 경기 흐름에서 한국을 압도했기 때문에 굳이 무리하게 체력을 소모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한국 입장에서는 좋은 현상이 아닙니다.
한국은 전반 32분에 부상당했던 홍철을 빼고 지동원을 교체 투입하면서 4-4-2로 변경했습니다. 이란이 수비에 치중했기 때문에 더 이상 4-2-3-1을 밀고 나가는데 무리였습니다. 박주영을 타겟맨, 지동원을 쉐도우로 활용하며 공격 변화를 시도했습니다. 하지만 한국은 40분이 경과하자 선수들의 경기 집중력이 떨어지면서 이란의 역습을 허용하는 불안한 경기를 펼쳤습니다. 특히 수비진 및 더블 볼란치에서 상대 공격 옵션을 놓치거나 패스 미스로 이란에게 공격을 허용하는 불안한 장면들이 속출됐습니다. 전반 종료 직전에는 이란의 왼쪽 프리킥 상황에서 아슈리에게 문전 정면에서 헤딩골을 허용하며 0-2로 밀렸습니다. 전반전 경기력은 철저한 '졸전' 이었습니다.
후반전에 4골 몰아친 한국, 통쾌한 역전승
한국은 후반 시작과 함께 김정우를 빼고 윤빛가람을 교체 투입 했습니다. 이란전에서 컨디션이 좋지 못했던 김정우가 더 이상 경기를 지속하는데 무리가 있음을 판단하여 윤빛가람 카드로 변화를 시도했죠. 후반 2분에는 구자철이 이란 오른쪽 진영에서 왼발 중거리슛을 날렸던 것이 날카로운 궤적을 그리며 이란 골문 왼쪽을 가르는 추격골을 넣었습니다. 후반 초반에 골을 기록했기 때문에 이란을 따라잡아 역전할 수 있을 것으로 보였습니다. 하지만 1분 뒤 박스 바깥 정면에서 안사리에게 오른발 슈팅으로 추가골을 허용하며 경기 스코어는 1-3이 되고 말았습니다. 홍정호가 안사리의 문전 쇄도를 순간적으로 놓쳤던 것이 실점의 빌미가 됐죠.
두 골 차이로 뒤진 한국은 전반전보다 경기 템포를 끌어 올리고 여러 방면에 걸친 움직임을 늘리며 추격골 기회를 노렸습니다. 하지만 공격 과정에서 패스 미스가 빈번해지면서 공격을 주도하는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후방에서 전방쪽으로 롱볼을 띄우며 어떻게든 골 기회를 마련하려고 했으나 공격 옵션들이 이란의 거친 수비에 맥을 못추면서 공을 따내지 못했죠. 한국이 경기 흐름에서 우세를 점할 것 같은 분위기는 이란의 압박 수비에 의해 금새 가라앉으면서 이렇다할 골 기회를 마련하지 못했죠. 후반 15분에는 조영철을 벤치로 불러들이고 서정진을 투입하여 조커를 활용한 마지막 승부수를 꺼냈지만 경기 상황은 여전히 힘겨고 그 분위기가 후반 중반까지 이어졌습니다.
한국의 문제점은 이란전에 임하는 동기부여가 부족했습니다. 금메달을 목표로 광저우에서 땀을 흘렸지만 4강 UAE전에서 연장 120분 접전 끝에 패하면서 사기가 저하된 것이 이란전에서 영향을 끼쳤죠. 후반전에는 이란에게 지고 있는 상황을 만회하기 위해 열심히 뛰었지만, 전반전에 무기력한 몸 놀림을 일관하며 졸전을 펼쳤던 것이 오히려 이란에게 플러스가 됐습니다. 경기 초반부터 수비 실수로 실점을 허용했고 공격 옵션들이 이란 수비에 눌리면서 기선 제압 당했던 어려움이 후반전까지 영향을 끼쳤습니다. 잦은 패스 미스, 볼 키핑 및 컨트롤 불안, 수비 실수까지 겹치며 맥이 빠진 경기를 펼쳤죠. 경기 시작부터 나사 풀린 경기를 펼쳤던 것이 아쉬웠습니다.
하지만 한국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후반 30분 박주영이 추가골을 넣으며 경기 분위기가 순식간에 한국의 우세로 기울어졌습니다. 윤빛가람이 이란 박스 정면에서 오른쪽으로 대각선 패스를 연결했고, 서정진이 오른쪽에서 볼을 터치하며 골문 가까이에 논스톱 패스를 이어준 것을 박주영이 오른발로 강하게 밀어차며 골을 기록했습니다. 3분 뒤에는 이란의 역습 및 슈팅 상황에서 김승규가 선방했고, 상대가 세컨슛을 노렸던 것을 홍정호가 머리로 걷어내며 실점 위기를 넘겼습니다. 이란이 순간적으로 방심한 상황에서 윤빛가람-서정진-박주영으로 이어진 패스의 물 줄기가 한국에게 전화위복이 됐습니다.
후반 42분에는 지동원이 동점골을 넣으며 이란을 3-3으로 따라 잡았습니다. 서정진이 박스 오른쪽에서 크로스를 연결한 것을 지동원이 문전 쇄도 후 헤딩골을 넣었습니다. 경기 내내 이란에게 일방적으로 밀리는 경기를 펼쳤지만 후반 막판부터 상대 수비 집중력이 떨어지면서 전세가 역전됐습니다. 그리고 후반 44분에는 지동원이 윤석영의 왼쪽 크로스를 또 한 번의 헤딩골로 역전을 성공시켜 한국이 4-3으로 앞섰습니다. 전반전에 0-2로 부진했지만 후반전에 무려 4골이나 몰아치는 저력을 과시한 끝에 극적인 역전승으로 경기를 마무리 했습니다. 비록 금메달 획득에 실패했지만 이란전에서 끝까지 승리를 포기하지 않는 투지를 발휘했던 것이 좋은 결과를 거두는 계기가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