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이끄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가 라이벌 첼시를 제압하고 커뮤니티 실드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지난 시즌 첼시에게 프리미어리그 4연패를 저지당했던 아쉬움을 만회한 것과 동시에 올 시즌을 앞두고 첼시를 물리친 것은 의미가 남다릅니다.
맨유는 8일 저녁 11시(이하 한국시간) 런던 웸블리에서 열린 2010 잉글리시 커뮤니티 실드에서 첼시를 3-1로 꺾었습니다. 전반 41분 안토니오 발렌시아가 선제골을 넣으며 기분좋은 출발을 했고, 후반 31분에는 하비에르 에르난데스의 슈팅이 자신의 발에 이어 얼굴을 맞고 첼시 골망을 흔들었습니다. 39분 살로몬 칼루에게 추격골을 허용했지만 47분 디미타르 베르바토프가 루이스 나니의 로빙패스를 받아 감각적인 로빙슛으로 피니시를 지은 끝에 3-1 승리를 결정 지었습니다. '산소탱크' 박지성은 전반 45분을 소화하며 생애 첫 커뮤니티 실드 우승의 기쁨을 누렸습니다.
박지성의 헌신, 발렌시아의 파괴력 강화...'1+1=2 이상의 시너지'
사실, 맨유의 첼시전 선발 라인업은 다소 의외 였습니다. 하파엘과 더불어 식중독에 걸렸던 파비우, 3일 전 아일랜드 올스타전에서 부상 당했던 캐릭이 첼시전에 선발 출전한 것입니다. 그리고 지난 시즌 주전 확보에 실패했던 오언, 유독 첼시에 약한 모습을 보였던 발렌시아까지 선발로 출격했습니다. 파비우-캐릭의 선발 출전은 에브라-플래쳐를 아끼겠다는 의도이며, 베르바토프가 프리 시즌 내내 몸 놀림이 무거웠고 에르난데스가 조커로 적합하다는 점에서 오언이 선발 출전했습니다. 그런데 발렌시아의 선발 출전은 경기 시작 휘슬이 울리기 전까지 납득하기 힘든 부분이 있었습니다.
발렌시아의 지난 시즌 문제점은 드리블 패턴이 단조롭고 왼발을 이용하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의 맨유 데뷔전이었던 지난 시즌 첼시와의 커뮤니티 실드에서 애슐리 콜에게 일방적으로 봉쇄당했던 경험이 있었고, 그 이후 첼시전 2경기에서 부진했던 여파가 이번 경기에서 이어질 것이라는 불안 요소가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애슐리 콜이 상대팀 드리블러의 패턴을 읽으며 공을 빼앗는 성향이기 때문에(호날두 킬러로 불렸던 것 처럼) 발렌시아도 호날두에 이어 속수무책이 될 것 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발렌시아는 이번 첼시전에서 애슐리 콜과의 경합에서 일방적인 우세를 나타냈습니다. 지난 시즌처럼 애슐리 콜 정면에서 드리블 돌파를 시도하기 보다는 프리롤에 가까운 움직임을 과시했습니다. 애슐리 콜과 가까이 붙기 보다는 일정 간격을 두고 전방으로 침투하거나 동료 선수와 연계 플레이를 노렸습니다. 그 과정에서 오셰이가 공격 진영에서 활동 폭을 넓히면서 애슐리 콜의 시선을 흐트러놓도록 유도했고, 루니가 테리-애슐리 콜 사이를 파고드는 움직임을 펼치면서 발렌시아가 자신의 공격력을 끌어올릴 수 있는 유리한 이점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맨유의 전술은 과거 '호날두 시프트'로 짭짤한 재미를 봤을때와 유사합니다.(2006/07시즌과 가깝다고 보면 될 듯) 루니를 비롯한 동료 선수들이 호날두가 문전쪽으로 침투하여 골 기회를 노릴 수 있도록 상대 수비의 시선을 자신쪽으로 끌고 다니거나, 드리블 돌파 활로를 대신 개척했던 이타적인 모습을 보여줬죠. 그래서 발렌시아는 첼시 진영에서 자연스럽게 빈 공간에서 공을 터치하여 맨유의 공격 기회를 엮어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지난 시즌 같았으면 애슐리 콜이나 지르코프의 밀착 견제를 받는 어려움에 시달렸겠지만 이번 첼시전에서는 정반대의 현상이 벌어졌습니다.
전반 41분 발렌시아의 선제골 장면 또한 마찬가지 입니다. 애슐리 콜을 비롯한 첼시 수비수들은 맨유의 '발렌시아 시프트'에 고전하면서 여러차례 뒷 공간 돌파를 허용하여 전반 막판에 집중력이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그 틈을 노린 발렌시아는 루니가 아크 오른쪽에서 골문 쪽으로 땅볼 크로스를 올리는 상황에서 빠르게 문전으로 침투하여 선제골을 밀어 넣었습니다. 전반 내내 첼시와 치열한 탐색전을 펼쳤던 맨유가 승리에 탄력을 얻는 결정적 계기로 작용 했습니다.
발렌시아가 맹활약을 펼칠 수 있었던 또 하나의 원인은 박지성과의 상호작용이 원활하게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박지성은 지난 5일 아일랜드 올스타전에서 2골 1도움을 기록했던 포스와는 달리 이타적인 경기를 펼치면서 팀의 수비에 힘을 실어줬습니다. 공격 과정에서의 과감한 돌파 및 송곳같은 패싱력이 매끄럽지 못했던 것이 국내 팬들에게 아쉬울지 모르겠지만, 그 역할은 박지성이 아닌 발렌시아가 해야 할 몫 이었습니다. 박지성의 본래 역할은 팀을 위해 헌신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박지성은 첼시의 오른쪽 풀백 페레이라의 오버래핑을 저지하는데 성공했습니다. 맨유가 공격력 강화를 위해 오른쪽에서 발렌시아 시프트를 내걸었다면, 왼쪽에서는 박지성이 페레이라를 꽁꽁 묶으면서 맨유가 첼시의 좌우 측면 뒷 공간을 공략하는 결정타 역할을 하게 됐죠. 왼쪽 공간에서의 적극적인 수비 가담 및 빈틈없는 견제를 통해 페레이라의 활동량 부담을 키운 것 뿐만 아니라 미켈의 전진까지 차단하면서 상대의 옆구리를 괴롭혔습니다. 첼시가 전반 41분, 후반 31분-47분 같은 막판에 수비 집중력 저하로 맨유에게 골을 허용한 것은 박지성-발렌시아 공략을 소홀히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박지성이 2008/09시즌 맨유의 주전으로 도약할 수 있었던 것은 호날두의 공격력을 최대화 시키고 수비 부담을 줄일 수 있는 최적의 옵션 이었기 때문입니다. 이타적이고 수비적인 역량에 힘을 쏟으면서 공격 성향의 호날두와 측면에서 균형을 맞출 수 있었던 것이죠. 이번 첼시전에서는 박지성이 그때의 패턴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발렌시아가 호날두처럼 공격에 전념했던 것입니다. 한 가지 두드러진 차이점이 있다면, 발렌시아는 호날두와 달리 꾸준하고 이타적인 윙어라는 특징이 있습니다. 맨유는 루니 이외에는 공격진에서 파괴력을 내뿜을 옵션의 부재를 안고 있었는데, 발렌시아가 첼시전을 계기로 공격의 키 플레이어로 떠올랐고 그 도우미가 박지성 이었습니다.
물론 박지성-발렌시아 콤비는 지난 시즌에 파괴력에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습니다. 박지성이 파괴력과 거리감이 있는데다 발렌시아가 왼발이 약하기 때문에, 두 선수와의 스위칭이 이루어지지 않는 약점이 있었죠. 그래서 박지성-발렌시아 콤비 보다는 박지성-나니, 나니-발렌시아 콤비가 매끄러운 경기력을 과시하는 경향이 짙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첼시전에서는 그동안의 양상을 뒤덮었습니다. 박지성이 왼쪽에서 헌신적인 경기를 펼치고 발렌시아가 오른쪽에서 동료 선수들의 도움을 받아 돌파 및 연계 플레이를 섞어가며 경기 흐름을 끌고가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상호작용이 있었기에 맨유가 첼시를 제치고 커뮤니티 실드에서 우승할 수 있었습니다. 1+1=2 이상의 시너지를 나타냈듯, 올 시즌 '대박 가능성'이 예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