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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EPL 빅4의 조용한 이적시장 행보, 불안하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하면 떠오르는 키워드 중에 하나가 '세계 최정상급 선수'입니다. 몇년 전 부터 거대 자본이 유입되면서 세계적인 네임벨류 및 엄청난 잠재력을 지닌 축구 인재들이 잉글랜드 땅을 밟았습니다. 그래서 이적시장은 항상 프리미어리그가 주목을 끌었고, 잉글랜드에 눈길을 돌리는 축구팬들이 날이 갈수록 늘었습니다. 그 결과는 프리미어리그가 세계 최고의 리그로 발돋움하면서, 2006/07시즌 부터 2008/09시즌까지 3시즌 연속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4강에 3팀을 배출하는 쾌거로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프리미어리그는 지난 시즌 챔피언스리그 4강 진출 팀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습니다. 그나마 유로파리그에서 풀럼이 준결승, 리버풀이 4강 진출을 이룬 것이 '약간의 위안'이 되었지만 챔피언스리그에서의 전멸은 충격적 이었습니다. 특히 프리미어리그 흥행의 중심인 빅4가 유럽 무대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는데, 가장 대표적인 원인이 대형 선수 영입이 활발하지 못해 전력 강화에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와 리버풀은 구단의 재정난, 첼시는 긴축재정 선언, 아스날은 에미레이츠 스타디움 건립에 따른 빚 문제에 발목 잡혔죠. 그래서 이적 시장의 중심은 맨체스터 시티(이하 맨시티)와 스페인의 레알 마드리드(이하 레알)로 바뀌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조용한 흐름은 올 시즌에도 마찬가지 입니다. 맨유는 지난 4월 하비에르 에르난데스를 영입했을 뿐(크리스 스몰링은 지난 1월 맨유 이적 확정된 선수) 여름 이적시장에서 누구도 데려오지 못했고 일찌감치 '선수 영입 종료'를 선언했습니다. 아스날은 샤막-코시엘니, 첼시는 베나윤-델라치-칼라스-하미레스(거의 확정)를 영입했지만 리그 판도를 좌지우지할 선수인지는 검증이 필요하거나 혹은 미흡합니다. 'NEW 빅4' 토트넘은 유명 선수 영입설만 무성했을 뿐 실제로는 산드루 단 한 명만 보강했습니다.

대형 선수를 영입하지 않는다고 해서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하지 못한다는 법은 없습니다. 레알 같은 경우 그동안 세계 정상급 선수들을 영입하여 '갈락티코' 체제를 구축했지만 현실은 최근 6시즌 연속 챔피언스리그 16강 탈락 이었습니다. 선수보다는 팀이 중요시되고, 네임벨류보다 팀의 내실이 튼튼해야 원하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프리미어리그는 그동안 대형 선수 영입으로 많은 재미를 봤고 그들의 존재감에 힘입어 유럽 무대에서 뚜렷한 족적을 세웠습니다. 그 잔재는 지금도 남아있기 때문에 대형 선수 영입의 중요성을 간과해선 안됩니다.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프리미어리그 이적 시장의 중심이 빅4가 아닌 맨시티와 리버풀 같은 중상위권 팀들 입니다. 두 팀은 올 시즌 빅4 진입을 위해 이적시장에서 적극적인 선수 영입에 나섰습니다. 맨시티는 부자구단 답게 야야 투레-실바-보아텡-콜라로프 영입에 총 7300만 파운드(약 1346억원)를 투자했으며 강력한 네임벨류를 지닌 또 다른 대형 선수들을 데려올 것입니다. 리버풀은 재정난 속에서도 알차게 영입했습니다. 요바노비치-조 콜-윌슨 같은 알짜배기들을 영입했는데, 핵심 선수로 쓸 수 있는 요바노비치-조 콜을 자유계약 상태에서 이적료 없이 영입한 것은 최고의 성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더욱이 리버풀은 구단의 재정난을 해결하고 부자구단으로 도약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이했습니다. 홍콩의 스포츠재벌 케니 황이 CIC(중국 투자 공사, 중국 정부 운영회사)의 지원을 받아 리버풀 인수에 관심을 표명 했습니다. 잉글랜드 일간지 <타임스>가 4일 "로이 호지슨 리버풀 감독이 (케니 황 에게) 1억 5천만 파운드(약 2766억원)의 영입 자금을 받게 될 것이다"고 보도할 정도로 CIC의 인수가 어느 정도 근접했습니다. 만약 리버풀이 두 명의 무능력한 미국인 구단주(힉스-질레트)가 떠나고 CIC 인수를 받아들이면 맨시티 못지 않은 또 하나의 부자구단으로 거듭날 가능성이 큽니다.

하지만 리버풀은 지난 시즌 프리미어리그 7위 추락으로 빅4에서 밀려난 팀입니다. 맨시티와 더불어 이적 시장에서 화제를 몰고 다녔지만 엄연히 챔피언스리그 진출팀이 아닙니다. 빅4가 이적시장에서 조용한 행보를 거듭하는 것과 대조적인 행보죠. 지금까지 정황을 놓고 보면, 맨유는 대형 선수 영입에 여전한 침묵을 나타낼 것이고 아스날은 선수 보강이 아닌 세스크 파브레가스 잔류에 총력을 기울일 겁니다. 첼시와 토트넘은 대형 선수 영입의 필요성이 있지만 그 의지가 확고하지 못합니다.

물론 빅4가 침묵을 지키는 것은 일종의 전략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레알과 맨시티가 이적시장에서 많은 돈을 쏟아부으면서 이적 대상자들의 몸값이 부풀려 졌습니다. 특히 맨시티 같은 경우에는 지난 시즌에만 호비뉴-산타 크루즈-레스콧 같은 먹튀들을 양산했습니다. 그래서 선수들의 몸값 폭등을 막기 위해 조용한 탐색전을 벌이면서 이적 시장 막판에 몰아칠 가능성이 없지 않습니다. 최근에는 레알과 맨시티의 선수 영입 '리듬'이 무뎌진 상태여서(맨시티는 발로텔리 영입 난항) 빅4가 이적 시장에서 주도권을 잡을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습니다. 하지만 리버풀이 CIC에게 인수되면 빅4의 이적 시장 전략이 틀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분명한 것은, 빅4는 올 시즌 챔피언스리그에서 선전해야 하는 숙명을 안고 있습니다. 지난 시즌 챔피언스리그에서 4강 진출 팀을 배출하지 못했기 때문에 올 시즌 반드시 명예회복 해야 합니다. 그런데 최근 세 시즌 동안 유럽을 제패했던 2007/08시즌의 맨유, 2008/09시즌의 FC 바르셀로나, 2009/10시즌의 인터 밀란은 그 시즌 여름 이적시장에서 선수 영입에 많은 돈을 들였거나 스쿼드에 내실을 더하는 주축 선수들이 여럿 포진했습니다. 그리고 자국리그에서 똑같이 우승했던 공통점이 있습니다. 자국리그 우승과 유럽 제패의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면 대형 선수 영입이 '필수요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빅4의 조용한 이적시장 행보는 불안할 수 밖에 없습니다. 선수 보강을 통한 전력 강화를 통해 유럽 무대에서 우승에 도전할 수 있는 탄력을 얻어야 하지만 아직까지 그런 기회를 맞이하지 못했습니다. 맨유-아스날은 영건들의 포텐 폭발, 첼시는 노장들의 연륜 및 특급 영건 배출, 토트넘은 챔피언스리그 진출이라는 동기부여 자극에 의의를 두고 있지만 그것이 유럽 제패로 귀결되기에는 무게감이 부족합니다. 과연 빅4가 이적시장 종료까지 침묵을 지킬지 아니면 '뜬금없는' 대형 선수 영입으로 무거웠던 탐색전 분위기를 종료할지 앞으로의 행보가 주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