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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메시의 월드컵 부진, 마라도나 전술 때문

 

리오넬 메시(23, FC 바르셀로나)는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선수지만 적어도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그 칭호에 걸맞지 않은 선수였습니다. '다득점 윙어'의 명성과 달리 월드컵 본선 5경기에서 무득점에 그쳤고, 팀 공격의 중심축으로서 아르헨티나의 우승을 이끌지 못했습니다.

메시가 속한 아르헨티나는 2010 남아공 월드컵 8강전에서 독일에게 0-4로 대패했습니다. 미로슬라프 클로제에게 2골을 허용했고, 토마스 뮬러와 아르네 프레드리히에게 골을 내주면서 대량 실점으로 무너졌죠. 막강한 공격 옵션들이 즐비했던 특징을 지녔지만 어느 누구도 독일의 견고한 수비를 넘지 못했고, 경기 내내 불안한 수비를 일관하는 무기력한 행보 끝에 전차군단의 벽을 허물지 못했습니다. 대량 실점도 문제였지만 세계적인 공격수들이 즐비함에도 불구하고 단 한 골도 넣지 못한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우선, 아르헨티나는 메시를 비롯해서 이과인-테베스-아궤로-밀리토 같은 세계적인 공격수들이 두루 포진했습니다. 마치 '아르헨티나판 독수리 5형제'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축구는 선수의 개인기량으로 승부하는 종목이 아닙니다. 선수들끼리의 전술적인 역량과 짜임새가 부족하면 실전에서 고전할 수 밖에 없습니다. 축구가 감독의 비중이 높은 이유가 이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르헨티나는 고질적으로 마라도나 감독의 지략 부족이 아킬레스건이자 목표 달성의 최대 장애물 이었습니다.

물론 마라도나 감독은 한국전 4-1 대승을 통해 허정무 감독과의 지략 대결에서 승리했기 때문에 그동안 국내 여론에서 지략가로서 부족하다는 비판을 덜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 경기는 마라도나 감독의 작전 보다는 허정무 감독의 전술 실패가 승부에 영향을 끼친 결정타 였습니다. 더욱이 아르헨티나의 월드컵 본선 4승 중에 3승은 심판의 오심으로 이득을 봤던 경기였습니다. 마라도나 감독의 문제는 월드컵 남미 예선 및 본선 8강 탈락 과정에서 두드러졌고 지도력에 문제가 있음이 여실하게 입증 됐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선수 개인의 능력을 팀의 역량 강화로 승화시킬 수 있는 지도력이 부족했고 그 중심에 메시가 있었습니다.

메시는 남아공 월드컵에서 공격형 미드필더로 뛰었습니다. 프리롤을 맡아 왼쪽과 오른쪽 측면을 오가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는 중앙에서 공격을 조율하여 패스를 밀어주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월드컵 직전 마라도나 감독과 직접 면담하여 4-4-2의 쉐도우로 뛰게 해줄 것을 요청했고 그것이 받아들여지면서 골보다는 조율에 무게감을 두었습니다. 기존에 4-4-2에서 최전방을 맡아 문전 앞에 고정된 형태의 역할을 맡았으나 상대 수비에 막혀 부진을 일관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역할 변화를 마라도나 감독에게 요청한 것입니다.

하지만 메시의 부진 탈출은 역할 변화만으로는 해결책을 찾지 못했습니다. 단순히 위치를 옮긴다고 해서, 스타일을 바꾼디고 해서 팀의 경기력까지 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르헨티나는 공격 옵션들의 유기적인 콤비 플레이보다는 개개인의 기량에 의존하는 색깔이 뚜렷하기 때문에 그 흐름이 남미 예선에 이어 본선에서도 이어졌습니다. 아무리 메시가 패스 연결에 주력하더라도 다른 누군가가 뒷받침하지 않으면 상대의 두꺼운 수비를 뚫지 못합니다.

그 한계는 독일전에서 두드러졌습니다. 아르헨티나는 메시를 공격형 미드필더로 놓는 4-3-1-2를 구사했는데, 좌우 인사이드 미드필더를 맡는 디 마리아-막시가 패스 공급 역할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팀의 공격 패턴이 메시에게 쏠리게 되었고 이과인-테베스 투톱이 돌파에 치중했지만, 오히려 독일의 협력 수비에 쉽게 읽히는 문제점이 드러났습니다. 독일은 전반 18분 공격 지역 볼 점유율에서 82-18(%)의 우세를 점할 정도로 경기 초반부터 공격적인 경기를 펼쳤고, 미드필더들의 적극적인 수비 가담 및 한 박자 빠른 커버 플레이 속에서 아르헨티나의 공격을 수월하게 차단했습니다. 아르헨티나의 공격이 메시에게 의존하고 있었기 때문이죠.

특히 디 마리아-막시의 선발 기용은 마라도나 감독의 독일전 패착 이었습니다. 디 마리아는 남아공 월드컵에서 컨디션이 떨어졌음에도 선발로 기용되었고 막시는 최근 1~2시즌 동안 내림세가 두드러졌던 선수였습니다. 그런데 두 선수는 아르헨티나의 4-3-1-2에서 수비적인 임무가 많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공격력이 저하된 상황에서 수비까지 짊어졌으니, 유일한 살림꾼인 마스체라노와의 커버 플레이가 매끄럽지 못했고 독일의 압박 수비에 밀려 공격이 뜻대로 풀리지 않는 어정쩡한 경기를 펼쳤습니다. 그래서 아르헨티나는 독일과의 허리 싸움에서 일방적으로 밀리면서 메시를 통한 경기력 반전을 노리지 못했습니다.

문제는 두 선수의 소극적인 공격 자세가 메시에게 공격 부담이 가중되는 원인으로 이어졌습니다. 아무리 혼자의 힘으로 경기 흐름을 바꿀 수 있는 메시라도 여러겹의 수비 벽을 구축한 독일을 넘을 수는 없는 법입니다. 독일의 포백은 골문 밖에서 라인 컨트롤을 하면서 이과인-테베스의 침투를 사전에 차단했고 슈바인슈타이거-케디라로 짜인 더블 볼란치가 메시 봉쇄에 주력하면서 상대팀의 공격 공간을 좁혔습니다. 디 마리아-막시-에인세 같은 미드필더 및 풀백 자원의 위치가 앞쪽으로 쏠리면 독일에게 역습을 허용당하고 말았죠.

더욱이 메시의 부진은 16강 멕시코전에서도 두드러졌습니다. 테베스의 골을 어시스트했지만 경기 내내 상대팀의 집중적인 수비에 시달리면서 공격의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했습니다. 멕시코가 유독 16강에서 힘을 쓰지 못하는 징크스가 있기 때문에 아르헨티나의 우세가 일찌감치 예상되었던 경기였지만, 오히려 메시는 상대팀의 집요한 견제에 의해 골문 안으로 접근하는데 어려움을 겪으면서 특유의 활발한 움직임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메시를 위험지역 밖으로 밀어내는 것이 멕시코의 작전이었고 독일도 그 전술을 펼쳤습니다. 멕시코-독일이 아르헨티나의 조별본선 3경기에서 메시의 활동 패턴을 제대로 파악한 결과 였습니다.

그런데 마라도나 감독은 메시의 멕시코전 부진을 독일전에서 극복할 수 있는 전술적인 포인트가 없었습니다. 아르헨티나와 상대하는 팀들이 '메시 봉쇄'에 주력할 것은 분명한 일인데, 오히려 독일전에서 멕시코전과 같은 전술을 구사했습니다. 메시가 바르셀로나에서 맹활약을 펼칠 수 있었던 것은 4-3-3의 오른쪽 윙 포워드로서 중앙에 비해 상대팀 압박을 덜 받는 측면을 맡기 때문이자 넓은 활동 공간을 좋아하는 성향입니다. 중앙으로 이동할 때는 다른 공격 자원들이 상대 수비 위치를 덜어내고 사비-이니에스타가 활발한 패스 플레이로 점유율을 장악했기 때문에 여러 형태의 전술을 구사했습니다. 하지만 마라도나 감독에게는 이러한 전술적인 유기성이 없었고 메시의 부진을 키웠습니다.

그리고 메시는 월드컵 본선 5경기에서 30개의 슈팅을 날렸으나 단 1개라도 골을 성공시키지 못했습니다. 2009/10시즌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에서 34골로 득점왕에 올랐고 두 시즌 연속 UEFA 챔피언스리그 득점왕에 이름을 새겼던 행보와 대조적입니다. 물론 메시는 공격형 미드필더지만 30개의 슈팅을 효과적으로 살리지 못한 것은 세계 최고의 선수 답지 못한 경기력입니다. 펠레-마라도나-호나우두-지단의 뒤를 잇는 축구황제로 거듭나기 위해 남아공 월드컵 맹활약을 꿈꾸어왔던 메시의 노력이 물거품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었던 이유입니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남아공 월드컵의 아쉬움을 만회하려면 앞으로 4년의 시간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