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축구

한국, 스페인전 잘싸웠지만 공격이 문제

 

허정무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 대표팀이 '무적함대' 스페인을 상대로 잘 싸웠지만 경기 막판 실점을 허용하는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하지만 스페인전을 통해 월드컵 16강 진출을 향한 좋은 경험을 한 것은 분명합니다.

한국은 4일 오전 1시(이하 한국시간)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 티볼리 누 스타디움에서 열린 스페인과의 평가전에서 0-1로 패했습니다. 84분 동안 철벽 같은 지역 방어를 유지하며 스페인의 공세를 끊었으나 후반 39분 헤수스 나바스에게 기습적인 오른발 중거리슛을 허용하면서 막판의 고비를 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남아공 월드컵의 강력한 우승후보 스페인을 상대로 수비적인 측면에서 선전한것은 의미있는 소득이었습니다. 문제는 역습이 날카롭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한국의 지역 방어는 탄탄했지만 공격이 문제

한국은 4-2-3-1 포메이션을 구사했습니다. 이운재가 골키퍼, 이영표-조용형-이정수-오범석이 4백, 김정우-기성용이 더블 볼란치, 염기훈-김재성-이청용이 2선 미드필더, 박주영이 원톱을 맡았습니다. 박지성이 허벅지 통증으로 결장한 공백을 김재성이 대체하게 됐습니다. 스페인은 4-1-4-1 포메이션으로 경기에 임했습니다. 레이나가 골키퍼, 카프데빌라-마르체나-알비올-라모스가 4백, 마르티네스가 홀딩맨, 마타-이니에스타-파브레가스-나바스가 2선 미드필더, 요렌테가 원톱으로 출전했습니다. 주전 선수들 대부분이 빠졌지만 백업 선수들의 개인 능력도 이에 못지 않습니다.

스페인전에 나선 한국은 경기 초반부터 지역방어를 체제를 구축했습니다. 특정 선수를 따라다니는 대인방어 보다는 모든 선수들이 공간을 분담하여 상대를 압박했습니다. 박주영이 최전방에서 몸싸움을 해주고, 김재성이 전방 압박을 펼치고, 김정우-기성용이 중원 장악을 위해 수비 밸런스를 탄탄히 다지는 움직임을 보였습니다. 상대의 빠른 공격 템포를 늦춰 박스 쪽으로 침투하는 타이밍을 놓치도록 유도하는 것이죠. 전반 9분에는 파브레가스의 프리킥을 오프사이드로 유도하면서 상대에게 골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였습니다.

초반 공격 흐름도 좋았습니다. 상대가 수비형 미드필더 한 명(마르티네스)를 두면서 그 옆쪽으로 빈 공간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박주영과 김재성이 그 공간에서 공을 잡아 한국의 공격 물 줄기를 확보했고 염기훈-김정우-기성용-이청용의 공수 전환이 빠르게 진행됐습니다. 전반 12분에는 염기훈의 왼쪽 스루패스가 박주영의 리턴패스에 이어 김정우의 오른발 중거리슛으로 이어졌고 3분 뒤에는 박주영-이청용으로 이어진 스루패스가 기성용의 문전 침투로 이어졌으나 오프사이드 처리 됐습니다. 하지만 상대의 빈 공간을 노리는 공격력은 인상적 이었습니다.

반면 스페인은 한국의 지역 방어에 막혀 공격의 활로를 찾지 못했습니다. 파브레가스-이니에스타의 뒷 공간이 한국 선수들의 침투에 간파당하면서 중앙 옵션들의 수비 부담이 커질 수 밖에 없었고 박스 안으로 전진하는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원톱 요렌테는 한국 수비수들에게 봉쇄되었고 나바스가 이영표의 악착같은 견제에 밀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스페인은 좌우 폭을 넓게 벌리는 패스를 통해 점유율을 늘리며(전반 24분 62-38%로 스페인 우세) 이니에스타의 킬패스를 활용한 공격 기회를 엿봤습니다. 이니에스타가 공을 잡으면 한국 선수들이 패스 예상 지점을 미리 선점하여 상대방을 압박하면서 스페인의 공격이 무위로 돌아갔습니다.   

한국은 전반 25분이 넘어서면서 견고한 수비망을 형성하면서 상대의 변화무쌍한 공격 패턴을 막았습니다. 스페인이 이니에스타의 패스가 한국에게 막히자 나바스의 오른쪽 돌파에 이은 크로스로 공격 패턴을 변화했는데, 이영표가 나바스를 끝까지 따라붙어 크로스의 타이밍을 빼앗고 센터백들이 크로스 낙하 지점에 미리 다가가 상대 문전 침투 기회를 끊었습니다. 30분에는 마타의 크로스까지 걷어냈습니다. 34분에는 파브레가스에게 노마크 기회가 열리면서 오른발 슈팅을 허용했으나 공은 크로스바를 강타 했습니다. 오범석이 커버 플레이 실수로 파브레가스 위치를 놓친 동작이 아쉬웠습니다.

문제는 한국의 공격이 스페인 박스 부근에서 자주 끊깁니다. 스페인 선수들이 공을 오랫동안 소유하며 공격 흐름을 유지하는 것에 비해 한국 선수들은 볼 키핑력이 떨어졌습니다. 상대 압박을 받으면 힘없이 공을 빼앗기는 모습들이 속출했는데, 박지성처럼 빠른 볼 처리를 할 수 있는 선수가 없었던 것이 아쉬운 대목입니다. 박주영의 고립도 짚고 넘어갈 부분입니다. 박주영이 못했다기 보다는 2선 미드필더들의 볼 처리 불안 및 소극적인 콤비 플레이 때문에 결정적인 슈팅 기회를 잡지 못한 것입니다. 모처럼 박주영에게 공격 기회가 열렸던 전반 44분에는 박주영-이청용이 2대1 패스를 통해 서로 슈팅을 날렸으나 골키퍼 레이나의 선방에 막혔습니다.

84분 동안 잘싸웠던 한국, 나바스에게 결승골 허용

한국은 후반 시작과 함께 이운재-김재성을 교체하고 정성룡-김남일을 투입했으며 기성용이 공격형 미드필더로 올라왔습니다. 스페인은 레이나가 교체되고 발데스가 투입되어 A매치 데뷔전을 치렀습니다. 특히 한국은 후반 1분 결정적인 공격 기회를 잡았습니다. 염기훈의 피딩 패스가 최전방에 있던 박주영에게 향했는데, 박주영은 골키퍼 발데스가 앞으로 나온 것을 틈타 논스톱슛을 날렸으나 발 부위가 공에 빗맞아 땅볼이 되고 말았습니다. 3분 뒤에는 이청용이 박스 왼쪽에서 상대 수비 뒷 공간을 뚫고 크로스 기회를 잡았으나 라모스에게 공을 빼앗겼습니다.

전반전에 선전했던 한국의 지역 방어는 후반전에 중대한 고비를 맞게 됐습니다. 스페인 미드필더들이 전반전에 좌우 폭을 넓게 벌리는 패스를 주고 받았다면 후반전에는 박스 부근으로 넘어오면서 김정우-김남일의 뒷 공간을 파고들기 위한 패스 작업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여기에 라모스까지 활발한 오버래핑으로 한국 진영을 넘어오면서 공격적인 경기 흐름을 유도하려 했습니다. 이것은 스페인이 반드시 한국을 이기겠다는 의도입니다. 한국전에서 0-0으로 비기는 것은 스페인 입장에서 당혹스럽기 때문에 후반전에 골이 필요했습니다.

스페인은 후반 11분 무려 4명의 선수를 교체했습니다. 이니에스타-마타-파브레가스-요렌테를 빼고 사비-알론소-페드로-비야를 투입해 4-2-3-1로 전환했는데 6명의 공격수와 미드필더 중에 4명이나 교체했습니다. 비야를 원톱으로 놓고 페드로-사비-나바스를 2선 미드필더, 알론소-마르티네스를 더블 볼란치로 놓으면서 알론소가 강약을 조절하는 패스를 통해 경기를 운영하는 전술로 뒤바뀌었습니다. 그래서 스페인의 공격 전술 및 선수 구성이 바뀌면서 한국의 지역 방어가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습니다. 다행히 수비 옵션들의 집중력은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이에 한국은 후반 20분 염기훈을 빼고 안정환을 투입하는 승부수를 꺼내 들었습니다. 염기훈이 볼 키핑 및 순발력에서 문제점을 드러내면서 한국이 효과적인 공격 기회를 살리지 못했던 아쉬움을 만회하려는 허정무 감독의 의도였습니다. 무엇보다 안정환이 왼쪽 윙어로 자리잡은 것이 눈에 띄었습니다. 하지만 1분 뒤 기성용의 강력한 논스톱 슈팅이 박주영의 머리를 강타하면서 결정적인 골 기회가 날아갔습니다. 박주영이 공에 맞아 고통스러워 했을 정도로 슈팅이 위력적 이었지만 공의 궤적을 놓고 보면 상대 골망을 흔들었을지 모릅니다.

한국은 스페인 공격을 끊으면 미드필더 진영에서 짧은 패스를 주고 받으며 경기를 풀어갔습니다. 특히 안정환과 박주영이 서로 위치를 바꾸고, 기성용이 최전방으로 넘어오고, 이청용이 중앙쪽으로 움직이는 스위칭을 하면서 상대 수비를 교란하기 위한 움직임을 펼쳤습니다. 안정환을 왼쪽에 놓은 것은 스위칭을 통해 라모스의 수비 부담을 키우며 스페인의 공격 물줄기를 차단하면서 상대 수비 뒷 공간을 노리는 허정무 감독의 의도가 엿보였습니다. 후반 28분에는 스페인의 전방 압박을 받았지만 수비 옵션들이 좁은 공간에서 공을 잘 지켜내면서 패스 기회를 노리는 움직임이 좋았습니다.

경기 막판에 다다른 두 팀은 선수 교체를 통해 1골 싸움에서 이기겠다는 기세를 보였습니다. 스페인은 후반 34분 마르티네스를 빼고 실바를 투입했고 1분 뒤에는 오범석이 벤치로 들어가고 차두리가 그라운드를 밟았습니다. 무엇보다 스페인이 후반 35분 점유율에서 75-25(%)로 우세를 점하고 비야가 과감한 문전 침투를 통해 슈팅 기회를 노리는 모습이 위협적 이었습니다. 한국은 37분 기성용의 오른쪽 프리킥이 이정수의 헤딩슛으로 이어졌으나 공이 골대 바깥으로 향했습니다.

하지만 39분 나바스에게 기습적인 오른발 중거리 결승골을 허용하고 말았습니다. 역습 과정에서 미드필더끼리의 사인미스가 벌어지면서 스페인 허리에 공을 빼앗긴 것이 실점의 화근이 됐습니다. 84분 동안 잘싸웠으나 단 한 번의 결정적인 실수가 아쉬웠던 대목입니다. 결국 한국은 스페인에 0-1로 패했지만 전반적인 경기 내용에서는 선전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박스 안쪽으로 접근하면서 유기적인 콤비 플레이를 엮어내는 공격력을 기르면 월드컵 본선에서 강팀을 상대로 이길 수 있는 역량을 과시할 것입니다.